역사이야기/스웨덴

스웨덴의 요세피나 왕비 (로이히텐베르크의 요세피나)

엘아라 2011. 6. 20. 08:37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흑...과하면 아니한만 못하다는 옛말이 틀린거 하나 없습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살 금방 빠지겠는걸..."이라고 생각했더니 토요일 일요일 내내 앓아누웠습니다.

아부지께서 "너 요양해야하는거 아니냐"라는 발언까지 하셨다죠..흑

 

스웨덴의 요세피나 왕비 : 로이히텐베르크의 조제핀, 오스카르1세의 왕비

 

조제핀 드 보아르네는 나폴레옹의 첫번째 부인으로 유명한 여성입니다.  그녀의 이름을 물려받은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의 왕비가 되죠.

 

 

 

조제핀 드 보아르네

나폴레옹의 첫번째 황후

요세피나 왕비의 할머니

조제핀 막시밀리안느 외제니 나폴레오느 드 보아르네는 외젠 드 보아르네와 바이에른의 아우구스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조제핀의 아이들을 입양했던 나폴레옹에게는 첫 손녀인 셈이었죠. 이때문에 나폴레옹은 조제핀에게 많은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볼로냐와 갈리에라를 이 조제핀의 영지로 부여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외젠 드 보아르네는 양아버지였던 나폴레옹에게 매우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으며, 나폴레옹은 이런 양 아들은 다른 많은 친척들처럼 유럽의 공주와 결혼시켰습니다. 바로 유서깊은 비텔스바흐 가문의 공주였죠. 아우구스테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1세는 나폴레옹과 동맹을 위해 큰 딸을 외젠에게 시집보냈죠. 비록 정략결혼이었지만 둘은 매우 행복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도 아우구스테는 남편곁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1세는 사위에게 로이히텐베르크 공작 칭호와 영지를 부여합니다. 이후 외젠과 아우구스테는 바이에른의 수도인 뮌헨에서 살았습니다.

 

조제핀은 부계로는 비록 프랑스 하급 귀족이었지만, 모계로는 비텔스바흐 출신이었기에 수많은 유럽 왕가의 후손이었으며, 가계를 따져가면 스웨덴의 위대한 왕가였던 바사가문의 후손이기도 했습니다.

 

요세피나의 부모

외젠 드 보아르네와 바이에른의 아우구스테 

 

결혼할 나이에 이르자 조제핀은 스웨덴 왕위계승자인 오스카를 왕태자의 신부 후보로 이야기 됩니다. 그녀의 부모는 재산이 아주 많았을뿐만 아니라, 이모들은 유럽의 여러 왕가로 시집갔었죠. 사실 칼 14세 요한은 아들을 위해 여러 공주들과의 혼담을 주선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럽 왕가들이 "벼락부자"가문인 베르나도테 가문에 딸을 시집보내길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통치가문"이었던 베르나도테 가문과의 결혼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였고 정략결혼을 고려한 왕가도 몇군데 있었습니다.

 

 

요세피나의 남편 오스카르 1세

오스카르는 결국 조제핀과 결혼하기로 합니다. 조제핀은 카톨릭이었고 오스카르는 루터파였기 때문에 결혼식은 일단 뮌헨에서 대리 결혼을 치른후 스웨덴으로 와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결혼식은 1823년 6월 19일 거행됐는데 이후 6월 19일에 베르나도테 왕가의 결혼식이 자주 거행됩니다.

 

 

약혼때 쯤의 요세피나

 

조제핀은 결혼후 스웨덴식으로 요세피나 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스웨덴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었는데 특히 나폴레옹과 연관된 그녀의 가계때문에 더욱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결혼 얼마후 자신의 세례명에서 나폴레오느라는 이름을 빼야할정도였습니다.하지만 아름다웠으며 자선사업을 많이 했고 예술에 대한 지원을 많이 했기에 점차 스웨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죠.

 

 

요세피나 왕비

 

요세피나 왕비는 예술에 재능이 있었으며 그림그리는 것을 즐겼고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고명딸인 유셰니 공주가 예술에 재능이 있는것을 알자 적극적으로 지원해줬기에 공주는 훌륭한 아마추어 조각가가 됩니다.

또 요세피나 왕비는 정치적으로 매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를테면 종교의 자유에 대한 법안에 대해서 왕비는 영향력을 행사해서 모든 종교에 대한 자유 허용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는 루터파가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금지되었었습니다.

 

 

요세피나의 딸 유셰니 공주

 

요세피나 왕비와 오스카르 1세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지만, 둘은 매우 행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세피나가 막내아들을 낳은 얼마후 그녀는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남편 오스카르 1세가 자신과 결혼하기 전부터 결혼한 후 내내 정부가 있었다는 것이죠. 이후 그녀는 더이상 남편을 믿지 못하게 되고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든후에는 남편과의 관계가 좀 개선되긴 했지만,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었습니다.

 

 

나이든 후의 요세피나 왕비

요세피나의 두 아들인 칼 15세와 오스카르 2세는 각각 스웨덴의 국왕이 됩니다. 그리고 손녀이자 칼 15세의 딸인 로비사 공주는 덴마크의 왕비가 되죠. 이 로비사 공주를 통해서 노르웨이와 덴마크 왕가는 요세피나의 후손이 됩니다.  또 오스카르 2세의 손녀들인 매르타와 아스트리드를 통해서 역시 노르웨이와 벨기에 왕가의 선조가되기도 하죠.

 

 

시부모와 남편 다섯아이들과 함께

 

남편과 자녀들과 며느리들과 함께

저기 어린 소녀가 후에 덴마크 왕비가 되는 로비사 공주입니다.서있는 키작은 여성은 소피아 왕비구요

 

요세피나 왕비가 혼수로 해온 수많은 보석들은 현재 스웨덴 왕가의 보석 콜렉션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녀의 보석들은 대부분 역사적 의미가 깊은것으로 할머니 조제핀 황후가 나폴레옹에게서 받은 보석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보석들중 하나는 노르웨이 왕가에 전해지기도 하죠.

 

 

결혼식때 요세피나 왕비의 카메오 티아라를 쓰고 있는 빅토리아 공주

이 티아라 외에도 보석들 많습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나중에 적을께요..지금은 영어 철자치기가 귀찮아요..ㅠ.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