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스웨덴의 소피아 왕비 (오스카르 2세의 왕비)

엘아라 2011. 1. 21. 02:46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랫만에 팬서비스 시간을 가져볼까합니다.--;;

왠 팬...--;;이냐고 생각하시겠지만, 가끔 블로그에 없는 내용인데 검색으로 들어오시는분들이 있으시거든요. 그런분들을 위해서 특별히 아는거면 적어드리는 시간을 가지고는 한답니다.--;;

최근에는 그냥 베르사유 특별전에 집중하느라 팬서비스 안했는데, 오랫만에 스웨덴 왕비님 검색이 열심히 올라오는군요.

그래서 그냥 잠깐 써볼까합니다.

 

 

 

 

 

 

스웨덴의 소피아 왕비

나사우의 소피아

Sophia of Nassau

(full name: Sophia Wilhelmine Marianne Henriette zu Nassau-Weilburg/zu Nassau;

(9 July 1836 – 30 December 1913)

 

스웨덴의 소피아 왕비는 오스카르2세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나사우 공작인 빌헬름과 그의 두번째 부인인 파울리네의 따롤 태어났습니다. 이 집안이 엄청 잘 된 집안으로 여기저기 대가문들과 통혼을 통해서 연결이 됩니다. (사실 소피아 왕비의 집안은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으로 수많은 나사우 백작가문의 분가중 하나였습니다. 이가문이 엄청 복잡한데, 나사우 가문은 11세기던가 12세기던가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의 유서깊은 왕가중 하나입니다. 이 가문은 두개로 나뉘는데 장자계열은 독일쪽 영지를 상속받았고, 차자계열은 네덜란드와 나사우 외 영지를 물려받았습니다. 결국 이 두가문은 룩셈부르크 대공가와 네덜란드 왕가가 되죠.)

 

막내딸이었던 소피아는 아버지가 일찍 사망했기에, 주로 이복오빠였던 아돌프의 보호아래 있었으며, 이복언니인 비트 공비와도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스웨덴 왕가에서는 당시 왕태자였던 칼의 만행(프로이센의 공주인 루이제 - 독일의 빌헬름1세의 딸-를 차버린 사건)때문에 둘째아들인 오스카르 마저 혼담이 오간 공주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거절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이때문에 당시 정략결혼이 보편적이었지만, 특별히  왕자가 신부감과 만나서 대화를 해본후 결혼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오스카르 왕자와 소피아는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

 

 

오스카르 왕자와 소피아

약혼때

오스카르2세도 젊은 시절에는 좀 많이 말라서 풍채가 별로입니다.

형인 칼 15세는 젊은 시절부터 미남으로 유명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나이들어서 풍채가 좋아지면서 좀더 위엄있는 모습으로 변합니다.

 

 

오스카르 왕자는 소피아의 고향인 비스바덴에서 결혼식을 했고, 스톡홀름으로 갔습니다. 오스카르 왕자가 결혼할 당시 이미 왕태자였던 칼과 그의 부인인 로비사 왕태자비사이에서는 후계자를 기대할수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오스카르 왕자 부부는 왕위계승자 부부같은 환영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식 왕태자부부가 된것은 시아주버니인 칼 15세가 즉위한 후였습니다.

 

 

오스카르1세와 가족들

여자들이 헷갈렸는데 뒤에 서있는 여자가 유셰니 공주고, 로비사 공주 옆에 있는 사람이 로비사 왕비인듯합니다.

가운데 제일 키큰 남자가 오스카르 2세이고 그옆의 키작은 여자가 소피아 왕비입니다. (이것 맞을겁니다)

 

칼 15세가 즉위한후 소피아는 칼 15세의 궁정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 도덕률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이때문에 연애사건으로 바람잘날 없었던 칼 15세의 궁정을 좋아하지 않았죠. 대신 그녀는 스웨덴이 원하던 왕자들을 낳았습니다. 구스타프,오스카르,칼,유셴 이렇게 네명의 아들들을 낳았고 스웨덴 왕가에서 위치가 확고해지죠.

 

 

남편이 즉위한후 소피아 역시 왕비가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스웨덴 왕실 여성들 처럼 자선사업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특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에 감명을 받았다고 알려진 소피아 왕비는 간호사 양성에 무척이나 열성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의사들은 왕비의 너무나 과한 간호사에 대한 열성적 반응에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오스카르2세와 소피아 왕비

 

오스카르 2세에게 친 독일 성향을 가지도록 영향을 줬으며,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분리 될때 전쟁을 피하도록 설득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스스로는 왕비가 강하게 정치에 개입하는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꼈고, 며느리인 바덴의 빅토리아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에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소피아 왕비는 스스로도 이런 칭호에 만족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영국의 도덕률을 동경했으며, 이때문에 아들과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과의 결혼을 바랄정도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물론 빅토리아 여왕이 허락했을리 절대 없지만요..ㅎㅎㅎ 베아트리스 공주 전기를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공주가 참 안됐어요--;;;)

 

 

오스카르2세와 소피아 왕비 그리고 가족들

앉아있는 사람들은 왼쪽에서 잉에보리 왕자비와 큰딸 마르가레타(오스카르2세의 며느리,칼 왕자 부인), 유셰니 공주 (오스카르2세의 동생).소피아 왕비, 오스카르2세

서있는 사람은 오스카르2세의 옆은 손자인 에릭 왕자(구스타프 5세 막내아들)

그 뒷편 왼쪽으로는 오스카르 베르나도트 왕자와 에바 베르나도트 왕자비 (둘은 귀천상혼했습니다. 둘의 후손들은 모두 비스보리의 백작/백작영애 칭호를 씁니다.), 칼 왕자(벨기에의 아스트리드 왕비와 노르웨이의 매르타 왕태자비의 아버지).빌헬름 왕자(구스타프 5세의 둘째아들),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구스타프 6세 아돌프, 구스타프 5세의 큰아들), 구스타프 왕태자(구스타프5세), 빅토리아 왕태자비(바덴의 빅토리아), 유셴왕자(오스카르2세의 막내아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