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프랑스 혁명전쟁이야기를 좀더 써볼까 싶었거든요.
이제 맘잡고 요크공작이 쌩고생하는 이야기를 읽어볼까 싶었는데 지금 살짝 기분이 나빠져서 그 전쟁이야기를 읽고 싶어지지 않아졌습니다. --;;;;
그래서 있던글을 하나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읽다만 전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크리스티나 여왕 전기라죠. 전기는 세권을 찾아서 읽고 있었는데 편집증 엄마 이야기 나오면서 안 읽었다죠. 그런데 베아트리스 공주 전기를 좀 읽었더니, 뭐 크리스티나 여왕 이야기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더라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 : 어머니와의 관계
구스타프2세 아돌프가 사망했을때, 그의 왕비였던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큰 충격에 빠졌다. 우울증을 앓았으며 감정기복이 심했던 그녀는 자신만의 기사였던 남편이 사망하자 큰 슬픔에 빠졌고 늘 울었다. 하지만 남편이 죽은후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갑자기 그동안 등한시했던 자신의 딸 크리스티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크리스티나의 일생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까지 크리스티나를 돌보던 사람들은 구스타프2세 아돌프가 지정한 사람들이었다. 양육을 책임지던 이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으며, 유일한 여성이었던 고모 팔츠-츠바이브뤽켄 공작부인 카타리나는 당시 평범한 여성들과 달리 매우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거의 교류가 없던 어머니 마리아 엘레노라는 이런 사람들과 달랐다.
남편이 죽자 왕비는 딸을 자신이 양육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구스타프2세 아돌프는 딸의 양육에 아내를 뺐다.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상태는 딸을 돌볼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왕은 죽었으며, 권력을 장악했던 국왕의 신하들은 아직 대부분 독일의 전장에 있었고 스웨덴에 있던 신하들은 감히 전 왕비이자 여왕의 어머니에게 반대하지 못했다.
크리스티나의 어머니
브란덴부르크의 마리아 엘레오노라
스웨덴의 구스타프2세 아돌프의 왕비
결국 크리스티나는 악셀 옥센셰르나가 독일에서 돌아올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남편이 죽은후 방에 검은색 천과 거튼을 드리우고, 어두컴컴하게 살았다. 상복을 입고 희미한 불빛아래서 죽은 남편을 생각하면서 매일 울었다.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방에는 구스타프2세 아돌프의 심장이 놓여있었으며, 크리스티나는 어머니와 함께 그 곁에서 잠을 잤으며 늘 어머니 곁에 머물러 있어야했다. (...왜 갑자기 베아트리스 공주가 떠오르는것인지..-0-;;)
이런 어머니 곁에 머물렀던 크리스티나는 점점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 여성이었음에도 평범한 여성들의 관점을 경멸하게 된다. 크리스티나는 남성들이 좋은 이유가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할정도였다.
크리스티나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수업을 받으러 가는 시간이었다.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딸의 교육을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딸을 자신의 곁에서 보내줘야했으며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때만이 크리스티나에게는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머니와의 우울한 삶은 2년간이나 지속되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악셀 옥센셰르나가 돌아오면서 달라진다. 섭정단은 이런 상황을 두고보지 않았다. 여왕의 교육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크리스티나는 어머니에게서 떨어져서 고모가족인 팔츠-츠바이브뤽켄 공작가문의 성으로 보내진다. 마리아 엘레노라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악셀 옥센셰르나와 싸울수는 없었다. 왕비는 그립스홀름 성으로 갔으며 더이상 크리스티나에 대해 관여하지 못하게 된다.
어머니와의 이런 생활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크리스티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크리스티나는 후에 자신이 여성임에도 여성의 스타일로 살기 보다는 남성적 스타일로 살았다. 몸단장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치마를 입긴 했지만, 윗옷은 남성들이 입던 셔츠를 입었다. 심지어는 그런 옷차림으로 외국 대사까지 만났는데, 이때 크리스티나를 만났던 잉글랜드 대사는 경악스러워햇다고 한다. 옷뿐만 아니라 행동도 역시 남성과 비슷했다. 이런 크리스티나의 행동은 어린시절 감정에 휘둘려 살던 어머니와의 안좋은 기억이 한 원인일 것이다.
그립스홀름 성
그립스홀름 성은 호숫가(호수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군요)에 위치한 성으로 에릭14세등이 유폐되었던 성입니다. 한동안 감옥으로 쓰이다가, 구스타프3세의 부인이자 우울한 삶을 살았단 소피아 마그달레나가 이곳에서 거주했습니다.여전히 왕실 소유긴하지만,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의 앞쪽 포스트인 한국에서 찾아보는 스웨덴 관광정보...3.그립스홀름성 을 참조해주세요
자료출처
sibyl of the north (1931,F.C.Makenzie)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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