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째 글이 점점 길어지는군요.
뒷부분에 별로 쓸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아마 여섯편정도에서 끝내야할텐데 말입니다...--;;
원래 계획은 다섯편으로 끝이었는데 음...ㅠ.ㅠ
[새해특집]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4) 결혼
루이즈가 결혼하기로 한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는 스웨덴의 국왕인 구스타프 5세와 그의 부인인 바덴의 빅토리아의 큰아들이었습니다. 그의 밑으로 두 남동생 빌헬름과 에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릭은 어머니인 바덴의 빅토리아가 임신중 약을 잘못먹어서 지적장애를 앓았습니다.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부모
바덴의 빅토리아와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
왼쪽의 남자는 빅토리아의 사촌이던가 육촌이던가인 바덴의 막스(바덴의 막시밀리안, 루이즈의 조카인 그리스의 테오도라의 시아버지)입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1905년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인 코넛의 마거릿과 결혼했고 둘 사이에는 다섯아이가 있었죠. 마거릿이 여섯번째 아이를 임신했던 1920년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구스타프 아돌프는 홀아비가 되죠.
구스타프 아돌프는 "의무가 모든것에 우선한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살았으며 왕위계승자로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아 매우 지적이었으며 그는 식물학과 고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고고학에서는 중국 자기에서는 "전문가"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추운지방 출신 답지 않게 술을 절대 마시지 않았으며, 절대 비속어를 쓰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 루이즈는 가끔 프랑스 군병원에서 일할때 배웠던 비속어를 쓰기도 했습니다.)
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구스타프 아돌프와 코넛의 마거릿
구스타프 아돌프에게는 결혼해야만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 스웨덴 궁정에서는 궁정을 이끌 여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스타프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왕비는 건강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이탈리아에서 지냈습니다. 동생은 이혼했고 세명의 숙부중 한명은 귀천상혼했고 다른 숙부는 미혼이었죠. 그리고 덴마크 공주와 결혼했던 숙부 칼 왕자는 궁정과 떨어져 지내는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구스타프와 루이즈의 결혼에는 두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는데 먼저 구스타프의 아이들이 아버지의 재혼에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었죠. 특히 고명딸인 잉리드는 아버지가 재혼하는 것을 이해할수 없어했고, 새어머니를 받아들이려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법적인 문제로 루이즈의 신분이 귀족인지 왕족인지 애매한것이었습니다. 당시 스웨덴은 엄격한 귀천상혼제를 적용하고 있었기에 루이즈가 왕족이 아니라면 구스타프가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할수도 있는 문제였죠. 결국 이 문제는 영국의 조지 5세가 루이즈가 왕실 가족의 일원임을 인정했고 이에 대해 구스타프 5세와 조지 5세가 외교 협정서를 체결하면서 해결합니다. 이 외교 협정서에는 루이즈의 신분 뿐만 아니라 결혼후 재산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명시하고 있는 일종의 "혼전 계약서"와 같은것이었죠.
루이즈와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이게 약혼사진이던가 결혼직후 사진이던가 그렇습니다.
루이즈는 구스타프의 아이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합니다만, 위의 다큰 아이들과는 많이 서먹해하는 상태가 됩니다. 특히 잉리드는 오래도록 루이즈를 인정하기 거부합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어렸던 벨틸왕자나 칼 요한 왕자와는 잘지냈고 특히 벨틸과는 매우 잘 지내게 됩니다.
1923년 11월 루이즈와 구스타프는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신부 들러리들은 신부의 조카들인 그리스의 공주 네명이었고 화동들 역시 루이즈의 조카들인 조지 마운트배튼경의 두 아이들이었습니다. 베스트맨은 신랑의 동생인 빌헬름 왕자였죠.
결혼후 루이즈는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갔었고 12월에 스웨덴으로 갑니다.
결혼식때의 루이즈와 구스타프 아돌프
....이 사진은 주름 편것입니다.
다른 사진을 봤는데 신랑 신부 얼굴에 주름이 장난이 아니더라는..ㅠ.ㅠ
루이즈가 스웨덴에 도착했을때 많은 이들이 루이즈에게 환대를 했는데 이 반응은 당시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깬것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스웨덴 인들이 루이즈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며, 빅토리아 여왕의 매부리코를 빼 닮은 루이즈는 구스타프의 전처인 마거릿에 비해 아름답다고 할수 없었기에 신문에서 루이즈의 사진을 봤던 스웨덴인들은 어느정도 실망스러워했었죠. 하지만 실물은 사진보다 나았으며 상냥하고온화한 루이즈를 실제로 만나고서는 많은 이들이 루이즈에게 대해 좋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25년 루이즈는 임신합니다만 딸을 사산합니다. 그리고 더이상 아이를 가질수 없었죠. 하지만 구스타프에게는 이미 아이들이 많이 있었기에 왕위계승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만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루이즈에게는 어느정도 가슴아픈 일이었을듯합니다.
1924년의 잉리드
14살
사춘기 소녀였기 때문에 새어머니와의 사이가 매우 안 좋았습니다.
루이즈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으며, 또 금방 영국 외가로 가서 교육을 받았기에 서로에 대해 알 시간도 없었습니다. 잉리드는 결혼 후에도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루이즈 왕비가 아니라 "코넛의 마거릿"이라고 이야기했고 큰딸에게 어머니 이름과 애칭을 붙여줍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후 잉리드와 루이즈의 관계는 좋아진듯보입니다. 루이즈의 임종을 지킨 사람중 한명이 바로 잉리드였습니다. 아마도 스스로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기에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이해할수 있었던듯합니다.
루이즈와 구스타프6세 아돌프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특히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성실한 성격에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온화한 사람이었고, 결혼후 결혼생활에 최선을 다하죠. 소심했던 루이즈는 이런 남편을 의지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자료출처
1.Alice : Princess Andrew of Greece
2.위키 피디어
3.스웨덴 왕실 홈페이지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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