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6) 스웨덴에서...왕비시절

엘아라 2012. 1.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마지막이군요.

루이즈 이야기를 읽으면 늘 남편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화목한 부부인것이 떠오릅니다.

둘은 다정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많은 이야기들에서 부부가 행복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죠. 부부사이에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구요.

 

사실 앨리스 책을 읽을때는 잘 몰랐는데 루이즈 이야기를 쓰는데 죽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왠지 기분이 묘해지네요. 아하하...(흑 전 겨울에는 너무 감성적으로 변해요..ㅠ.ㅠ)

 

[새해특집]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6) 스웨덴에서...왕비시절

 

1950년 루이즈의 시아버지인 구스타프 5세가 92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이에 따라 루이즈의 남편인 구스타프 아돌프가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로 즉위합니다. 그가 즉위했을때 직계 왕위계승자인 손자 칼 구스타프 왕자(현 스웨덴 국왕)은 겨우 4살이었기때문에 거의 70살에 가까웠던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건강을 우려했죠. 하지만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매우 건강했고 손자가 성인이 될때까지 살았습니다.

 

 

루이즈의 시아버지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

 

 

장례식때 상복을 입은 루이즈와 시빌라 왕자비

가운데 아이가 현 스웨덴 국왕

 

남편이 국왕이 되면서 루이즈는 왕비가 됩니다. 하지만 루이즈가 왕비가 된다고 루이즈 삶은 특별히 달라질것은 없었습니다. 왜냐면 이미 20년전부터 루이즈는 스웨덴 왕실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왕비가 했던 일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왕비"라는 지위가 된것에 루이즈는 매우 어색해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폐하(Her Majesty)"라고 불리는것에 익숙하지 않았했으며 스웨덴의 왕비라는 호칭또한 어색해합니다. 이를테면 조지 6세의 장례식때 장례식에 참석한 스웨덴의 왕비를 위한 의전용 차량을 마련했지만, 정작 루이즈는 그 차가 자신을 위한 차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혼란에 대해 루이즈는 이에 대해 "나는 어제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건만 오늘 사람들은 나를 주시한다"라면서 불평합니다.

 

루이즈는 답답할 정도로 엄격했던 스웨덴 왕실의 궁정 예법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예법을 바꿉니다. 루이즈는 귀족이나 왕족들의 여성들이 공식적으로 알현하던 것을 없애고 대신 전문직 여성들의 모임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후에 시빌라 왕자비가 이어갑니다.  또 스톡홀름의 왕궁도 새롭게 꾸미기도 했죠.

 

루이즈 왕비

브리간사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쓰고 있군요

 

루이즈는 기이하고 짜증을 자주 낸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랬을것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좋아하지 않지만 성실히 수행하는 좀 이상한 면을 보여줬지만, 매우 선량하며 유머감각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루이즈 왕비를 선량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루이즈에 대해서 궁정에서는 "왕비는 좋은 분이시다. 그분은 절대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으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루이즈는 자신의 새로운 조국인 스웨덴을 무척이나 사랑했으며, 스웨덴 사람들에 대해 무척이나 경애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특히 루이즈는 스웨덴 여성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루이즈의 유머 감각은 매우 뛰어났는데, 그중에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의 만남은 유명합니다. 1963년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루이즈는 드골 대통령에게 "내가 저속한 프랑스어를 써서 미안합니다. 내 프랑스어는 1914년 참호에서 쓰던 말이랍니다."라고 말해서 드골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드골대통령은 루이즈 왕비를 매우 좋아해서 후에 루이즈 왕비가 죽은후에 두번이나 조문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번은 프랑스 대통령으로 했고 다른 한번은 사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자주 여러곳을 여행다녔는데 많은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서 다녔습니다. 이때 루이즈는 자신의 신분이 아니라 "그립스홀름 백작부인"내지 "미스 올슨"이라는 가명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매년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냈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보다 먼저 영국에 들러서 가족들을 만나고 스웨덴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이때 루이즈에 대해서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져오는데 하루는 루이즈가 길을 가다가 버스에 치일뻔 했다고 합니다. 이때 아무도 루이즈가 누군지 못알아봤었나 봅니다. 이후 루이즈는 지갑에 "나는 스웨덴의 왕비입니다."라는 조그만한 쪽지를 넣어다녔는데 혹시나 길에서 사고를 당했을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까봐였다고 합니다.

 

 

루이즈 왕비와 구스타프 6세 아돌프

 

 

루이즈와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소탈한 부부였고 둘은 매우 행복했습니다. 루이즈는 남편의 취미인 고고학에 흥미를 가지고 남편과 취미를 함께 했습니다. 또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미술사학이나 식물학 책을 읽는 동안 루이즈는 연애소설이나 전기등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런 취미는 루이즈가 이모 엘라 대공비의 전기를 집필하는데 후원하도록 하기도 했죠.

국왕부부는 자주 왕궁 주변을 산책했는데 이때 경호원없이 단둘이서 산책을 했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사하면 그 인사를 받아서 답례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루이즈는 왕궁 근처 상점에서 혼자 쇼핑을 즐기기도 했는데 가끔 사람들은 왕비가 혼자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부부가 매우 행복했던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먼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빈 방문때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은 루이즈의 조카이기도 했죠. 여왕이 국왕부부와 함께 차를 탔을때 구스타프6세 아돌프가 "창문좀 열어주겠소"라고 하니까 루이즈가 "Please라고 하면 열어드릴께요"라고 대답하는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또 루이즈의 언니인 앨리스도 가끔 동생한테 찾아갔는데 그때마다 루이즈가 국왕인 남편을 심부름 시키거나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하는것을 내버려두는것에 대해서 잔소리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산책중인 국왕 부부

길 가다 사람들이 인사하면 저렇게 답례를 하고는 했다고 합니다. 

 

루이즈의 건강은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가 되면서 매우 안 좋아집니다. 1965년초 루이즈는 급격하게 병세가 나빠졌고 수술을 합니다. 수술을 견뎌내긴 했지만 수술후에 결국 사망하죠. 임종 자리에는 남편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붓딸인 덴마크의 잉리드 왕비, 의붓아들인 벨틸 왕자와 시그바르드 왕자, 며느리인 시빌라 왕자비와 언니인 앨리스 왕자비가 함께 했습니다. 특히 잉리드 왕비는 루이즈가 임종한뒤 루이즈의 동생인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에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루이즈의 임종을 지킨것을 보면 잉리드도 어린 시절 사춘기 소녀였을때 감정과 루이즈가 임종할때 감정이 매우 달랐을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루이즈는 늘 노력했을듯한데 이를테면 루이즈는 남편의 전처인 코넛의 마거릿의 보석들을 다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루이즈는 이 보석들을 스스로는 절대 하지 않았고 후에 마거릿의 자녀와 손자손녀들이 성장하자 이를 물려줬죠.)

 

 

장례식때 루이즈의 관

 

현재 루이즈는 왕실 묘지에 남편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남편의 첫번째 아내인 코넛의 마거릿과 나란히 묻혀있습니다.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Alice: Princess Andrew of Greece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