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새해특집으로 글을 미친듯이 쓰고 있긴한데 솔직히 새해 같지 않아요
네..저 나이 먹기 싫구요...ㅠ.ㅠ
사실 살빼는것이 귀찮아서 그런듯도 해요....
..작년에 맨날 "내년부터 살 뺄꺼야"라고 외쳤던 엘...-0-;;;
[새해특집]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5) 스웨덴에서-왕태자비 시절
결혼초기 루이즈는 스웨덴에서 적응하는것에 힘들어합니다. 왜냐면 루이즈는 기본적으로 소심한 성격에 대중앞에 나서는것을 꺼리는 성격이었죠. 이런 성격은 늘 대중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야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하는 왕실의 여성에게는 맞지 않는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루이즈는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자란 다른 많은 왕족들처럼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것을 알았고, 자신의 의무에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현실적 상황이 루이즈를 어떻게든 스웨덴 왕실에서 왕족으로 살게 만들죠.
사실 루이즈는 스웨덴에 도착하자마자 궁정에서의 의무를 이행해야만 했습니다. 궁정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은 시어머니인 빅토리아 왕비였지만 왕비는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일년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지내고 있었죠. 이때문에 왕실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은 사실상 루이즈였으며 또 1930년 시어머니가 사망한 뒤에는 실제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여러가지 의무를 수행해야했습니다.
스웨덴 왕실 여성의 주된 의무는 많은 자선사업 단체들을 돕는 일이었는데, 그전까지 세워진 수많은 단체들이 있었으며 특히 루이즈의 시할머니인 소피아 왕비가 의료사업에 중점을 둔 이후로 의료사업에도 매우 중요한 후원자가 되었죠. 루이즈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나는 결혼전 평범한 일을 하던 평범한 여성이었기에 매우 힘들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루이즈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듯이 1차대전 당시 간호사로 오래 일을 했으며 이런 전문적 경험은 루이즈가 의무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스웨덴 궁정예복을입고
왕태자비 시절
티아라는 시할머니인 소피아 왕비의 티아라네요
또 루이즈는 스웨덴어를 매우 빨리 배웠는데 이것은 루이즈가 스웨덴에 적응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줬습니다. 루이즈는 결혼후 왕비 대신 참석한 후원 모임에서 스웨덴어로 연설을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루이즈의 친가인 바텐베르크 가문은 어학에 매우 뛰어난 소질이 있었는데 이것은 할머니 바텐베르크 공비의 재능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바텐베르크 공비는 러시아어,폴란드어,독일어,프랑스어를 했으며 셰익스피어를 영어로 읽고, 단테를 이탈리아어로 읽고 이해할수 있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루이즈의 아버지 역시 몇개국어를 했으며 루이즈의 사촌이자 스페인의 왕비였던 에나는 따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1년만에 스페인어를 익혔습니다. 루이즈의 언니 앨리스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입술 읽는것으로 영어,독일어,프랑스어,그리스어를 할줄 알았습니다.
루이즈가 스웨덴어를 빨리 배웠기 때문에 스웨덴 사회에서 루이즈에게 더 호감을 가졌을듯합니다. 현 국왕의 어머니이자 루이즈의 며느리였던 작센-코부르크-코타의 시빌라는 결혼한후 스웨덴을 벗어난적이 없었지만 평생 스웨덴어에 서툴렀습니다. 이때문에 시빌라 왕자비의 사교 생활을 매우 제한되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지 못했죠. 이때문에 시빌라 왕자비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대중들은 왕자비에 대해 무관했습니다. 반면 루이즈에 대해서는 남편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함께 매우 사랑받는 왕족이 됩니다.
1930년대 행사에 참석중인 구스타프 아돌프와 루이즈
..ㅠ.ㅠ 루이즈 너무 무서워요...ㅠㅠ
...여기도 사진사가 공화주의자일꺼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음냐 구스타프 아돌프는 원래 저 얼굴이라 별로 변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루이즈는 남편과 함께 많은 곳을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구스타프 아돌프는 아내와 함께 세계 여러곳을 다니면서 스웨덴의 국익을 위해 여러가지 활동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경제적인 분야도 포함됐습니다. 1926년에서 1920년대에는 미국과 극동아시아를 방문했으며 1930년대 초에는 그리스와 중동, 아프리카지역을 방문하기도 했죠.
1920년대의 여행에서 루이즈와 구스타프의 극동아시아 방문은 아마도 구스타프 아돌프의 주장이 강하게 들어갔으리라 추정됩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아린시절 중국에 대한 책을 읽고 중국과 그주변 나라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이때문에 중국 도자기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아마 이때문에 우선적으로 스웨덴과 아주 멀리 떨어진 극동아시아쪽을 방문 한것이 아닌가합니다. 이때 루이즈와 구스타프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를 방문했으며 "서봉총"발굴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미국에 갔을때 루이즈와 구스타프는 소탈한 모습을 보였는데 백만장자들이 초대한 식사 자리에서 호화스러운 좌석이 마련된것을 보고 그 좌석에 앉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솔트레이크에 갔을때 루이즈는 남녀 평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합니다. 루이즈는 여성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전문직에 종사해야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거의 한세기 앞서간 여성정책을 벌였던 스웨덴의 왕위계승자 부인 다운 발언이기도 했죠.
미국 순방때 쯤의 루이즈
1930년대 루이즈는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왕실의 최고 지위여성으로 스웨덴에서 여러 활동을 해야했으며 엄격한 의전을 지키던 스웨덴 왕실 행사에도 참석해야했죠. 왕위계승자의 부인으로 남편과 함께 여러곳을 공식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또 가족들을 돌보는 일도 열심히했습니다. 루이즈의언니 앨리스는 1930년경 정신적 문제로 요양원에 들어가야했습니다. 앨리스의 딸들은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간 직후 서둘러 결혼식을 했죠. 앨리스는 딸들의 결혼식에 갈수 없었습니다. 루이즈는 언니 앨리스를 대신해서 조카들의 결혼식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1940년대는 전쟁의 시기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스웨덴은 여전히 중립국으로 남았습니다. 스웨덴의 중립국 정책은 "무장중립"이었으며 비록 외교적 협상도 진행되긴 했지만 중립국으로 남을수 있는 군사력도 필요했죠. 스웨덴은 전시 체제에 들어갔으며 루이즈의 시아버지,남편,의붓아들등이 모두 군에 나가야했고 루이즈 역시 여러 활동을 합니다.
2차대전때의 스웨덴 왕실 가족들
구스타프 5세,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 벨틸 왕자
전쟁 직후 핀란드가 소련의 공격을 받았을때 루이즈는 전쟁때문에 고아가 된 핀란드 어린이들이 스웨덴으로 피난왔을때 그 아이들을 위해 울릭스달 궁전을 내줍니다. 그녀는 이 아이들과의 인연을 오래 간직했으며 죽을때까지 이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2차대전때는 늘 그랬던것처럼 적십자사를 통한 군인들을 돕는 운동을 합니다. 루이즈는 스웨덴 군인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보내는 사업을 했으며 이를 위해 직접 물품을 포장하는 것을 방송으로 내보냈고 국민들에게 연설을 하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언제든지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루이즈는 스웨덴의 중립국 지위를 활용해서 양 진영의 사람들이 정볼르 전달하도록 돕왔고, 역시 전쟁 포로들을 돕는데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루이즈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를테면 2차대전 초기 루이즈의 언니 앨리스가 기아에 시달리던 아테네에서 구호사업을 했을때 이것을 지원한것이 스웨덴 적십자사였습니다.
군인들에게 보낼 물품을 포장하고 있는 모습의 루이즈
아마 연설은 루이즈가 연설하는 것입니다.
내용은...패스입니다. (스웨덴어 아는 분은 알아서 해석을...--;;)
1940년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루이즈가 많은 일을 하게 했습니다만 그 끝은 스웨덴 왕실의 비극으로 끝납니다. 전쟁이 끝난후인 1947년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장남인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합니다. 이때 그는 다섯아이의 아버지였으며, 막내이자 후에 현 스웨덴 국왕이 되는 칼 구스타프 왕자는 태어난지 1년밖에 되지 않았었습니다. 루이즈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며느리가 있던 하가 궁전(현 스웨덴의 빅토리아 공주와 그 남편이 사는 궁전)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좋아했던 루이즈는 특별히 이 손자손녀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왕위계승자가 될 칼 구스타프의 교육에 매우 신경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중에 보면 왕자와 왕자의누나인 크리스티나가 있는 학교에서 체육대회하는데 거기 루이즈와 구스타프가 참석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와 시빌라 왕자비
그리고 둘의 다섯 아이들
왕자비가 안고 있는 아이가 현 스웨덴 국왕입니다.
자료출처
1.위피 피디어
2.Alice : Princess Andrew of Greece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영상출처
스웨덴의 STV
'새해특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특집]데지레 클라리 : 스웨덴의 데시데리아왕비...(1) 들어가면서 (0) | 2012.12.31 |
---|---|
[새해특집]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6) 스웨덴에서...왕비시절 (0) | 2012.01.07 |
[새해특집]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4) 결혼 (0) | 2012.01.05 |
[새해특집]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3) 혼담 (0) | 2012.01.04 |
[새해 특집]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2) 젊은 시절 (0) | 2012.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