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헤센

헤센대공가의 비극...4.러시아 황실가족의 죽음

엘아라 2010. 12. 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유명한 러시아 황실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봐야하겠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중 두명이었던 엘라와 알릭스는 러시아로 시집갑니다.

먼저 결혼한 사람은 엘라였는데 자신의 오촌이자 신앙심 깊고 잘생겼던 세르게이 대공과 결혼합니다. 둘의 약혼은 빅토리아 여왕의 승인없이 이루어져서 여왕이 살짝 삐졌습니다.--;;; 여왕은 러시아 정치 상황이 불안정한것과 외손녀가 러시아로 시집가면 영국으로 오기 힘든것에 반대했던것이죠.

황홀한 분위기로 사람을 사로 잡았던 엘라는 수많은 청혼자가 있었지만 거절하고 러시아로 시집갔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독일의 빌헬름2세죠. 그의 책상위에 엘라의 사진이 놓여있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그리고 엘라가 러시아로 시집간후, 러시아의 황태자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숙모의 동생이자 육촌관계였던 알릭스와 사랑에 빠집니다. 이것도 빅토리아 여왕이 살짝 삐지는데, 여왕의 손자였던 웨일즈의 앨버트 빅터 왕자가 알릭스를 좋아했고, 여왕 역시 알릭스가 이 손자와 결혼하길 바랬던것이죠. 하지만 알릭스는 오빠가 결혼하는것을 계기로 러시아 황태자와 약혼합니다. 물론 이땐 빅토리아 여왕이 허락했다고 합니다만, 뭐 대충 약혼하기로 하고 여왕한테 허락맡으러 간것같다죠.-0-;;;

 

헤센대공가의 비극 ...4.러시아 황실 가족의 죽음

 

 러시아로 시집간 두 헤센 대공녀는 러시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삽니다. 엘라의 결혼생활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아이가 없었던 엘라는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했기에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조카들에게 열광하는 세르게이의 모습이나, 친척중 누군가 엘라에 대해 "부모가 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할것이다"라는 편지를 썼기 때문에 아마 세르게이쪽에 문제가 있는것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야 알수 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엘라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척 따뜻한 사람으로 인식됩니다만, 오직 양녀였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만이 엘라에 대해서 차가웠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이 살짝 모순되는것이 마리야의 동생인 드미트리 대공은 엘라를 무척이나 따랐다고 하더라구요. 게다가 마리야가 좀 "이기적"이라는 평가라서 말입니다.^^*)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엘라의 결혼생활은 불행하게 끝납니다. 엘라의 남편이었던 세르게이 대공은 모스크바의 통치자였는데 그는 매우 인기가 없었으며 아버지 알렉산드르2세처럼 테러의 위협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처럼 폭탄테러로 사망합니다. 엘라는 남편의 소식을 들었을때 바로 달려갔는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세르게이가 이런 모습을 보면 화낼거야"라면서  주변의 피를 옷으로 닦았으며,집으로 돌아와 입양한 두 아이들을 껴안고 "세르게이가 이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했었지"라고 되뇌었다고 합니다.이 이야기를 적은 마리야는 그때 양어머니의 소매에 피가 묻어있는것을 봤다고 합니다.

어쨌든 반항아 양딸을 시집보내고, 착한 양아들을 군대에 보낸후 엘라는 정교회 수녀가 되었고 집을 수도원으로 만들어서 수녀로 살아갑니다.

 

 

테러후의 세르게이가 탔던 마차의 모습

 

수녀복장의 엘라 대공비

 

반면 알릭스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합니다. 니콜라이2세는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으며, 아이들도 사랑했죠. 하지만 알릭스는 러시아 궁정에 적응하는데 실패합니다. 수줍음 많고 빅토리아식 도덕률에 충실하던 알릭스에게 러시아 궁정은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죠. 게다가 알렉산드르3세가 결혼전 사망했기에 니콜라이2세는 즉위하자마자 결혼했는데 궁정에서는 이에 대해 "관이 지나간후 황후가 왔다"라고 쑥덕댔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후계자를 낳아야했는데 딸만 내리 넷을 낳아서 스트레스 극심하게 받은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들이 혈우병을 가지고 있었기에 후계자 문제는 여전히 불안했고 황후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습니다. 이때문에 황후는 알렉세이의 혈우병을 낫게 해주리라 확신했던 수도사 "라스푸틴"을 등용했고 짜르 부부는 그의 영향력아래 들게 됩니다.

 

 

알렉산드라 황후와 기다리고 기다렸던 후계자 알렉세이

알렉세이는 혈우병환자였고 아들이 태어났지만 후계자 문제가 딱히 바로 해결된것은 아니었죠.

 

라스푸틴은 짜르 부부와 나머니 황실 가족 사이를 갈라놓는 원인이 되었는데, 언니인 엘라 대공비마저도 라스푸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때 알릭스의 올케였으며, 이후 러시아의 대공비가 된 더키(빅토리아 멜리타)는 의사가 아닌 라스푸틴에 의존하는 황후에게 이야기를 했다가 황후의 차가운 반응을 보았고, 아픈 아이를 의사에게 보여야지 왜 저런 사람에게 의존하는지 이해할수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라스푸틴

그가 정확히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적어도 라스푸틴이 알렉세이의 병을 완화시키는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짜르 부부는 그를 더욱더 신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는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는데, 알렉산드르2세의 개혁정치가 실패한후 러시아 사회는 무척이나 혼란했습니다. 알렉산드르2세는 입헌 군주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마련하고 있었지만, 그는 헌법을 승인하기 직전 폭탄테러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뒤를 이은 아들 알렉산드르3세는 아버지와 달리 보수주의자였으며, 아버지의 죽음이 자유주의와 연결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때문에 그는 할아버지 니콜라이1세 방식의 통치 스타일로 통치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시대상황과는 맞지 않았죠. 이 정책들은 러시아 사회를 잠시 지탱해주지만 불만은 쌓여갔으며, 결정적으로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뒤 러시아 사회에서는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결국 니콜라이2세는 헌법을 승인하는수 밖에 없었죠.

 

 1차대전은 모든것을 바뀌어 놓습니다. 러시아는 독일과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고, 수많은 난민과 포로,탈영병등이 넘쳐나게 됩니다. 이들은 짜르를 비난하게 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군대의 지지를 받던 총 사령관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을 해임하고 니콜라이2세 스스로가 총사령관으로 전선으로 가면서 문제는 더 커집니다. 황제는 황후와 라스푸틴에게 정부를 맡겼고, 황후는 라스푸틴을 전적으로 신뢰했기에 라스푸틴이 전권을 장악합니다. 그의 행위를 이전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황실 가족들은 결국 그를 암살하기에 이르죠. 그의 암살에 가담한 사람은 엘라의 양아들이자 짜르의 사촌이었던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짜르의 조카 사위였던 펠릭스 유스포프공이었습니다.

라스푸틴의 죽음에 짜르 부부는 충격을 받았지만 다른 가족들은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 없어져서 안도했죠. 황후의 언니였던 빅토리아는 라스푸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황후와 다른 사람들을 이간질 시키던 이가 죽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황실가족들 모두는 드미트리 대공과 유스포프 공을 사면해달라고 탄원을 했고 결국 짜르는 둘을 추방하는선에서 일을 마무리합니다.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부인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 공녀와 함께 있는 펠릭스 유스포프공

드미트리의 아버지인 파벨대공은 귀천상혼으로 러시아에서 추방당햇고, 그는 누나와 함께 백부였던 세르게이 대공에게 입양됩니다. 누나와 달리 엘라를 무척이나 따랐다고 합니다.

펠릭스 유스포프공은 러시아의 갑부 집안이었던 유스포프가문의 후계자로 그의 어머니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부인인 이리나는 니콜라이2세의 여동생이었던 크세니아 여대공의 딸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나는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결국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으며, 황실가족 대부분은 체포됩니다. 그중 짜르와 그 가족들은 시베리아로 이송되었고, 다른 황실가족들 역시 혁명을 지지하는 세력에게 붙잡히거나 간신히 탈출하게 됩니다.

 

혁명이 일어나면서 수녀로 모스크바에서 살던 엘라 역시 체포됩니다.  엘라는 다른 황족들과 함께 억류되었고 적군에 의해 다른 여섯명의 황족들과 함께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엘라가 처형당한 다음날 짜르의 가족들 역시 처형당합니다. 짜르 일가의 죽음은 유명해서 그냥 넘어가고, 엘라의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서는 저의 앞쪽 포스트인 엘라대공비의 죽음과 그 이후 http://blog.daum.net/elara1020/8036658 를 참조해주세요.

 

 

니콜라이2세와 가족들

 

이 사건은 헤센 대공가 가족들이 겪은 가장 큰 비극으로 인식됩니다. 영국에 있던 엘라와 알릭스의 큰언니 빅토리아는 짜르 가족이 죽은지 얼마 안되어서 짜르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만 엘라에 대해서는 전쟁이 끝날때쯤에야 겨우 죽음을 확인했으며 묘를 찾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짜르가족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죠. 빅토리아는 이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고 겉으로 괜찮은척 했지만 동생들의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하루에 몇시간씩 고된 정원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생들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는것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전쟁이 끝난후 엘라의 죽음에 대해서 잘 모르던 동생 에른스트 루드비히를 만나는것 조차 꺼릴정도였다고 합니다. 동생을 만난다면, 자기 입으로 동생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지도 몰라서였습니다. 이 문제는 평생 빅토리아의 마음속 슬픔으로 남았는데, 빅토리아가 죽어갈때 빅토리아는 엘라와 알릭스, 니키(니콜라이2세)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고, 빅토리아의 성격상 러시아 사람들을 미워하지는 않았지만, 볼셰비키는 용서할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가 죽기전 늘 생각했다는 엘라와 알릭키와 니키

 

이 문제는 후에 안나 앤더슨 이야기까지 이어집니다. 안나 앤더슨이 나타났을때 여러 사람들이 그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해서 말이 많았습니다. 이때 헤센 대공가는 안나 앤더슨이 가짜라고 주장합니다. 빅토리아는 안나 앤더슨의 귀가 아나스타샤와 전혀 닮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아나스타샤의 귀는 자신의 숙부와 똑같이 생겼었기에 늘 신기해서 기억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빅토리아의 다른 동생인 이레네는 아들이 안나 앤더슨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으며, 결국 이레네의 집안에서는 안나 앤더슨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에른스트 루드비히 역시 안나 앤더슨이 조카가 아니라고 주장하죠. 다른 많은 황실 가족들 역시 안나 앤더슨이 가짜라고 주장하고 성명을 발표합니다. 특히나 당시 가문의 수장이었던 황태후는 안나 앤더슨에 대해 들으려하지 조차 않았습니다. 황태후는 아들이 죽지 않았을것이라 굳게 믿었고, 이때문에 "학살"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나 앤더슨의 존재는 아들의 죽음을 확인시키는 일이었죠. 이때문에 황태후는 안나 앤더슨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안나 앤더슨

"아나스타샤"의 사칭자

 오래도록 이어진 소송에서 헤센 대공가 사람들은 일관되게 그녀가 가짜라고 주장합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 다음 카페 "로얄 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의 율리아님의 글 "리틀 마더 오브 러시아"(러시아의 마지막 황태후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의 전기)

3. Alice Princess Andrew of Greece (2001)

4.어디선가 읽었던 빅토리아 멜리타에 대한 글 (아마 Grandmother of Europe이던가 그 사이트였는것 같은데 주소가 기억이 안나네요..ㅠ.ㅠ)

그림출처

위키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