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마지막인 요한나의 죽음이군요.
이글로 헤센 대공가의 비극 이야기는 끝입니다. 더이상 헤센 대공가의 남성 직계후손은 없거든요.(마운트배튼가 제외) 그리고 번외편으로 루이스 마운트배튼경(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의 죽음을 다룰겁니다. 바텐베르크 가문도 헤센대공가의 방계가문이니까요.
헤센 대공가의 비극...6. 요한나 대공녀의 죽음
요한나가 부모인 게오르그 도나투스와 세실을 잃은것은 겨우 태어난지 1년이 조금 지났을때였다. 온가족을 잃은 비행기 사고에서 요한나가 무사할수 있었던것은 영국까지 데려가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요한나의 숙부였던 루드비히 공은 고아가 된 조카를 입양했고 부인인 마르가레타 공비와 함께 친자식처럼 사랑했다. 아이는 양부모의 사랑속에 밝게 성장해갔다.
하지만 곧 슬픈일이 일어난다. 부모가 죽은지 2년도 지나지 않아서 요한나 역시 부모 곁으로 간것이었다.
1939년 요한나는 독감에 걸렸고, 이후 수막염에 걸린다. 아이는 심하게 아팠는데, 6월6일 요한나의 외할머니인 앨리스 왕자비는 프랑스에서 외손녀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자비가 서둘러 요한나에게 갔을때 아이는 혼수 상태였고, 의사들은 할수 있는 일이 없다. 요한나는 뇌에 염증으로 고통받았지만, 튼튼한 심장덕분에 계속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939년 6월 24일 요한나는 사망했다.
외손녀의 죽음에 대해 앨리스 왕자비는 아들인 필리포스 왕자(필립공)에게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곱슬머리 금발의 아이가 사랑스럽게 잠든 모습은 우리가 본 광경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단다. 이것은 내게는 세실의 어렸을때와 너무나 흡사해보였고, 나는 내 아이를 두번 잃는 느낌이었단다. 나는 네 아버지께서 멀리 떠나있어서 이 광경을 볼수 없었던것에 안도한단다...
요한나는 로젠회에에 묻힌 부모 곁에 묻혔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Princessjohana.jpg
요한나
...사진이 저작권이 걸려있네요..ㅠ.ㅠ
전 요한나 사진을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양부모였던 루와 페그가 많이 사랑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죠.
헤센 대공가의 직계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이제 루드비히밖에 없었다. 루드비히의 사촌들인 바텐베르크 가문 사람들이 있었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독일 타이틀을 버렸으며, 영국 귀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루드비히와 마르가레타 사이에는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다.
헤센대공가의 후계자가 되는 루드비히
그는 헤센 대공가의 직계로 마지막 후손입니다.
2차대전이 일어나자 헤센 역시 다른 독일 지방들처럼 폭격을 당했다. 루드비히(루)와 마르가레타(페그)는 부모와 조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친 영국파였다. 그들은 전쟁기간동안 스위스에 머물렀으며, 미군이 헤센으로 들어가자 다름슈타트로 돌아갔다.
전쟁기간동안 다름슈타트는 폐허가 되었고, 대공가의 수많은 저택들은 잿더미가 되었다. 메리 왕비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에르니가 그렇게나 꾸몄던곳이 사라졌단다."라고 언급하면서 섬세하지 못한 미국 공군을 탓했다. 루와 페그는 다름슈타트 근처에 있던 가문의 사냥터에 있는 집인 슐로스 볼프스가르텐에 머물면서 난민이 된 친척들과 친구들,옛신하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루의 형수 세실의 동생이자 루의 오촌 조카였던 그리스의 소피아 공주는 헤센-카셀의 공비였다. 미군이 소피와 아이들 그리고 시어머니가 살던 크론베르크 성에서 나가라고 했을때 소피는 아이들을 데리고 갈곳이 막막했다. 그녀는 결국 오촌이었던 루와 페그의 곁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소피아는 전쟁중 남편을 잃었지만, 혼자 몸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이 다섯명과 시아주버니의 아이들 네명을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름슈타트로 가는 길이 위험할까봐 아이들을 짚더미에 숨겨서 가야만했다.
루와 페그는 소피아와 아이들을 환영했고 함께 머물렀다. 이때 소피아와 페그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리고 루와 페그는 부모없이 숙모의 손에 맡겨졌던 헤센-카셀가문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소피아의 시아주버니였던 헤센-카셀의 필리프는 나치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후에 미군이 들어오면서 전범으로 몰렸다. 헤센-카셀가는 대표적인 친 나치였으며 필리프와 소피아의 남편 크리스토프는 SS친위대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어머니인 이탈리아의 마팔다 공주는 이탈리아가 전쟁에서 발을 빼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게쉬타포에 의해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리고 연합군의 폭격때 상처를 입고 사망했다. 하지만 공주의 죽음은 전쟁이 끝난후에야 알려지게 된다.
어머니를 잃었으며, 아버지 역시 전후 전범으로 2년동안이나 갇혀있었기에, 아이들을 돌본 이들은 루와 페그였다. 그리고 이때 아이들과 가까워진 둘은 결국 필리프의 장남이자 후계자가 될 모리츠를 자신의 후계자로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헤센의 란트그라프 모리츠
크론베르크 성에서
결국 루가 죽은후 헤센 대공의 직계는 끊어졌으며, 이후 가계는 헤센-카셀의 모리츠가 잇게 된다.
13세기 성립된 헤센의 란트그라프 가문은 16세기 네개의 분가로 나뉘었고 이중 두개의 분가인 헤센-카셀과 헤센-다름슈타트만이 명백을 이어갔었다. 그리고 루에서 헤센-다름슈타트 분가가 단절되고 이를 헤센-카셀가의 후계자가 이어받게 되면서 현재 모리츠가 헤센 가문 전체의 수장으로 헤센의 란트그라프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결국 이분이 슐로스 볼프스가르텐을 소유하고 계신다죠.흑...일년에 삼일 개방하는 볼프스가르텐...ㅠ.ㅠ)
자료출처
1.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2001,Hugo Vickers)
2.위키피디어
3. 텔레그라프의 기사 HRH Princess George of Hanover
http://www.telegraph.co.uk/news/obituaries/1507978/HRH-Prince-George-of-Hanover.html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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