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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1.시작

엘아라 2010. 8. 1. 14:24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개인적으로 흑사병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페스트"가 원인이라고 알려진 이 병은 14세기 유럽의 혼란한 상황의 결정타였습니다. 이후 페스트는 간헐적으로 여전히 유럽에서 일어나는 전염병으로 자리잡았지만, "흑사병"이라고 이름이 붙은 14세기때가 가장 끔찍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14세기의 흑사병은 전 유럽인구의 1/3 심지어 영국 같은곳에는 절반이상의 사망자를 냈고,질별으로 인한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전사회와 이후사회를 크게 양분하게 되죠. (귀족이나 평민, 권력자나 죄수 가리지 않고 죽었기에 "죽음의 무도"와 같은 이미지가 형성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재미난것은 흑사병이나 또는 14세기에 대한 책들중 몇몇은 현재와 14세기를 비교하며 경고하고 있다는것입니다. ^^*

 

어쨌든 흑사병에 대한 책들은 아주아주 많은데, 아하하... 스트레스 받을때는 글쓰는것이 최고가 아닐까해서 이렇게 글을 또 시작합니다. --;;;;;;;;;(그런데 적당한 제목이 안떠오르는군요..ㅎㅎㅎ 이건 진짜 계획없이 글을 쓰니까 제목이 안떠오르는듯해요..-0-;;)

 

흑사병...1.시작

 

흑사병(the Black Death)는 14세기 처음 유럽에 들어온 이래 공포의 대상이었다. 1340년대 후반 이년간 유럽인구의 1/3정도가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여겨진다. 14세기는 13세기와 다른 시기였다. 13세기까지의 유럽은 빛나는 발전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14세기는 그 발전의 폐해가 드러나던 시기였다. 과도한 인구밀도, 급작스러운 자연재해, 그리고 끝임없는 전쟁등 하지만 이 모든 힘든 과정은 오직 하나 "흑사병"의 이름아래 빛을 잃었다. 그만큼 흑사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흑사병의 기원으로 알려진 병은 페스트이다. 하지만 특별히 14세기 (1340년대)에 만연했던 페스트에 대해서 "흑사병"이라고 이야기한다. 흑사병이라는 말이 처음 기록된것은 1555년의 스웨덴에서였다. 흑사병이라는 자체는 1340년대에는 쓰지 않았던 말이다. 이때문에 이 말의 기원이 당시 상황에서 기인된다고 이야기할수는 없을것이다. 어원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은 라틴어를 영어나 스웨덴어등으로 직역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흑사병에 대한 출발은 거의 대부분 동일한 기록으로 시작한다. 1347년 카파(현제 페도시야)의 항구가 그 출발점이다. 제노바사람들이 건설한 이 항구는 당시 동서양의 교류의 중심지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때 킵차크 한국의 칸이었던 자니벡은 이곳을 포위공격중이었다. 수많은 몽골병사의 포위에 카파에 있던 제노바 사람들은 끝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행해졌다. 멀리서 오고있던 무서운 질병이 자니벡의 군대를 덮친것이었다. 제노바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하나님이 천국의 전사들을 보낸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병은 자니벡의 군대만 덮친것이 아니었다.

 

데시무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당시 카파의 포위공격에 대한 연대기를 남긴인물이었다.데시무스는 자니벡이 병으로 죽은 병사의 시신을 성안으로 던져넣으라고 명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기록을 통해 자니벡이 생물학전의 시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몇몇견해는 자니벡이 시신을 성안으로 던져넣었다는데 회의적이다. 시신을 던져넣었다는것은 신학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작이라는 것이다. "천국의 전사"가 왜 이교도가 아닌 기독교도들도 공격했냐는 의문에 대한 해결책이라는것이다. 시신을 성안으로 던져넣었다면, 기독교도들이 감염된것이 이상하지 않다는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시신을 통해서 전염병이 감염이 된것이 아니라 자니벡의 군대에서 카파의 성벽안으로 쥐들이 넘어왔기때문에 병이 발생한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게다가 오랫동안 데시무스가 실제 포위된 카파에 있었다고 여겨졌으나, 19세기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그는 카파에 있지 않았고, 그의 기록은 카파 공성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나 선원들의 이야기를 취합한것으로 알려진다.)

 

끔찍한 병과 오랜 전쟁으로 지친 양쪽은 물러났다. 자니벡은 포위를 풀었고, 제노바인들은 고향을 향해 도망쳤다. 그리고 이 병은 고향을 향하는 갤리선단에 동행해서 이탈리아로 향했다.

 

흑사병의 시작은 몽골고원이나 이시크쿨 호수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 동서 교역로를 따라 전세계로 퍼졌다는것이다. (여기서 의문은 저렇게 전염이 강했고, 섬이었던 영국마저 초토화시켰던 흑사병에 대한 기록이 왜 우리나라에는 없는가 하는것이다.^^*) 1330년대 초반과 중반 중국에 괴질이 돌아 인구가 엄청나게 줄었으며. 지도층의 일부도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이시크쿨 호수는 중세 유럽 여행자들이 중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곳이고, 페스트의 자연발생지와 가까운곳이었다.

하지만 이 외진곳에서  흑사병이 어떻게 머나먼곳까지 이동하게 되었나의 정확한 경로는 잘 나와있지 않다. 다만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교통의 주요 요지나, 주요한 시장이 있던 곳에서 괴질이 돌았다는 정보들이 있긴하다.

병에 대한 믿을 만한 기록이 나오는 것은 카파의 포위공격이 끝나기 1년전인 1346년이었다. 한 러시아 연대기에서는 이때 페스트가 킵차크 한국의 수도와 카스피해 연안에 만연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 병은 크리미아를 거쳐 1년후에는 카파에 도달했다.

 

자료출처

흑사병시대의 재구성(존켈리)

흑사병 (필립지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