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프랑스를 보다보니 스테파니라는 이름의 공주님들에 대해서 관심이 가네요..(사실 조제핀이라는 이름부터 할려고 했는데 조제핀은 의외로 많군요..ㅎㅎㅎ) 전 스테파니라는 이름을 들으면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가 제일 먼저 떠오르거든요.^^*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
프랑스의 황녀
바덴의 대공비
Stéphanie, Grand Duchess of Baden
(Stéphanie Louise Adrienne de Beauharnais)
(August 28, 1789 – January 29, 1860)
프랑스의 조제핀황후는 보아르네 가문 사람들 역시 돌봐줬는데, 여기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도 있었습니다. 조제핀의 가족에 무척이나 약했던 나폴레옹은 조제핀이 돌보고 있던 보아르네가문 사람들 역시 받아들였고, 튈리르 궁에서 거주했습니다.
스테파니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유럽의 여러 왕가와 정치적으로 정략결혼할 인물이 필요했던 나폴레옹은 스테파니에게 프랑스의 황녀 라는 칭호를 주고 바덴 대공의 손자와 결혼시킵니다. 바덴 대공 역시 나폴레옹 전쟁때 기회를 잡은 왕족으로 나폴레옹과의 동맹을 통해 바덴에 이익을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재미난점은 대공의 손녀들은 러시아의 황후, 바이에른의 왕비, 스웨덴의 왕비등이 됩니다.)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가 궁정에 처음 소개되었을때, 나폴레옹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조제핀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조카인 스테파니를 마구 몰아세웠다고 합니다.
스테파니와 남편은 정략결혼이었기에, 둘은 결혼직후에 별거상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공이 위독하자, 둘은 화해하고 함께 살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후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벼락부자"중 한명이긴 했지만, 스테파니는 바덴에서 매우 처신을 잘했고 덕분에 스테파니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의 후손에 대해서는 제가 쓴글인 "나폴레옹과 유럽 왕족들 ... 3.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의 자녀들 http://blog.daum.net/elara1020/8464093" 을 참조해주세요.)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스테파니
포르투갈의 에스테파니아 왕비
Stephanie of Hohenzollern-Sigmaringen
(Stephanie Josepha Friederike Wilhelmine Antonia; Portuguese: Estefânia)
(15 July 1837 – 17 July 1859)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스테파니는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카를 안톤과 그의 부인인 바덴의 요제피네의 딸이었습니다. 바덴의 요제피네는 앞에서 말한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의 딸이었죠. 재미난점은 카를 안톤의 어머니 역시 프랑스 출신의 "벼락부자"중 한명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뮈라였습니다. (나폴레옹의 매제인 뮈라의 조카입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때, 그녀는 포르투갈의 페드루5세와 혼담이 오갑니다. 이 결혼을 주선한 사람은 페드루5세의 오촌이었던 영국의 앨버트공이었다고 합니다. 스테파니를 만난 빅토리아 여왕은 무척이나 예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페드루와 스테파니는 무척이나 행복했는데, 스테파니는 결혼 1년후에 디프테리아로 사망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페드루5세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 빅토리아 여왕은 큰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이 페드루의 천사를 데려가셨단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페드루5세는 이후 혼담을 거절하고 홀로 살았고, 부인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인이 죽은지 2년후에 콜레라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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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스테파니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비
Princess Stéphanie of Belgium
(French: Stéphanie Clotilde Louise Herminie Marie Charlotte, Dutch: Stefanie Clotilde Louise Hermine Marie Charlotte)
(May 21, 1864, Laeken, nearby Brussels – August 23, 1945, Pannonhalma)
남편인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황태자와 함께 있는 모습입니다.
벨기에의 스테파니는 벨기에의 레오폴2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리 앙리에트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사이는 극악이었는데, 특히나 레오폴2세가 부인이 아들을 못낳는것에 대해서 매우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스테파니는 어려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인 루돌프와 약혼했고 17번째 생일 몇주전에 결혼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스테파니의 입지는 좁았는데 시어머니인 시씨 황후는 며느리인 스테파니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루돌프와의 사이도 행복하지 않았는데, 특히 루돌프가 성병을 옮겨서 스테파니가 더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자 둘이 이혼하려할정도였다고 합니다.
남편이 자살한후 스테파니는 궁정에서 더욱더 고립되었고, 결국 가명으로 자주 여러곳을 여행다녔습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 헝가리 출신의 하급귀족과 재혼했고, 헝가리에서 거주했습니다.
빈디슈-그라에츠의 스테파니 공녀
Princess Stéphanie of Windisch-Graetz
(9 July 1909 – 7 September 2005)
...저기 여자분이 스테파니 공녀가 아니라 아기가 스테파니 공녀입니다.
어른은 어머니인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여대공
이 스테파니는 앞에서 말한 벨기에의 스테파니의 외손녀입니다. 루돌프와 스테파니에서는 "에르치"라는 애칭의 엘리자베트 여대공이 태어납니다. 엘리자베트의 할아버지이자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는 이 손녀를 무척이나 아꼈습니다. 엘리자베트 여대공은 신분이 낮은 남자와 결혼했는데, 엄했던 프란츠 요제프였지만 손녀의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이혼한후, 사회주의자와 결혼했습니다. 이때문에 엘리자베트 여대공에 대해서 붉은 여대공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이 엘리자베트 여대공과 빈디슈-그라에츠의 오토 베리안트 공의 딸이 스테파니 공녀입니다.
빈디슈-그라에츠의 스테파니 공녀
Princess Stéphanie of Windisch-Graetz (1939-)
이 스테파니 공녀는 앞의 스테파니 공녀의 조카입니다.그녀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예술가였는데, 특히 촛불을 광원으로 하는 인물사진들과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동물사진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분이시군요..ㅎㅎㅎ)
모나코의 스테파니 공녀(1965-)
Princess Stéphanie of Monaco, Countess of Polignac
(Stéphanie Marie Elisabeth Grimaldi; born 1 February 1965
모나코의 스테파니 공녀는 레이니에3세와 그레이스 캘리의 막내딸입니다. 날라리 공주로 유명하다는데, 살아있는 사람은 잘 모른다죠. 스테파니가 날라리가 된것은 어머니인 그레이스 캘리의 교통사고때 함께 있었는데 그 충격이 좀 컸다는 언급을 보긴 했습니다.
재미난것은 이 스테파니 공녀는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의 후손입니다.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바덴의 마리-레이디 마리 빅토리아 해밀튼(모나코의 공비)-모나코의 루이2세-샤를로트 공녀-레이니에3세- 모나코의 스테파니)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다음카페 로얄하우스( http://cafe.daum.net/yulia0818 )의 율리아님글 "페드루5세의 왕비 에스테파니아"
그림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음냐 위키에 사진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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