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설 기념으로 뭔가를 해야하는데..역시나..ㅎㅎㅎㅎ
결국 또 어디선가 적어놨던글을 끄적끄적 꺼내야겠습니다.-0-;;;
전 러시아 역사를 거의 몰랐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게 무슨 전기야 러시아 역사밖에 안나오는구만"이라는 이 책의 서평을 보고 확 질렀답니다. ㅎㅎㅎ 역시나 흡족하긴하더라구요.
그런데 문제가 이 책이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한 책이다보니... 뭔가 표현이 좀 이상한것이 있어요. (제 영어실력이 발번역 수준인것도 있지만요..ㅠ.ㅠ) 특히나 이책은 가끔 가족관계가 헷갈리는것이 거의 베아트리스 공주 책 첫머리를 보는듯하더라구요. (...베아트리스 공주 책 가계도가 잘못됐거든요..=-0;;)
전기에서 가장 치명적인것은 사람의 호칭이나 인물 관계가 잘못되는것인데 그런것을 발견하면 신뢰도가 확 떨어진다고 할까요...하여튼 그렇다죠. (그래서 앨리스 책을 더 좋아합니다. 앨리스 왕자비 책을 읽으면서 딱 한군데 실수한곳을 발견했는데 주석에서 드미트리를 Grandduke라고 안쓰고 Prince로 쓴것이라죠)
뭐 하여튼 그렇습니다. 어짜피 발번역이니....ㅎㅎㅎㅎ
1. 이글의 1차 저작권은 원본 저자와 그 출판사에 있습니다.
2. 이 글은 아마존의 미리보기가 가능한 곳 까지만 번역한것입니다.
Part I. Grand Duke
Chapter 1. The Harsh Fate of Heritage
알렉산드르는 모스크바에 있는 크레믈린에서 태어났다. "1818년 4월 17일 멋진 봄날에 태어났다...이때는 부활절이었기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장엄한 종소리들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그녀의 기쁨과 휴일이었음에도, 새로 태어난 아기의 어머니는 놀랄만한 말을 덧붙인다. "나는 이 어린 생명이 언젠가 황제가 될것이라는 생각에 매우 중요한 어떤느낌과 함께 매우 슬펐다."
아기의 어머니인 전 독일의 공주가 자신의 아들이 광활한 나라의 황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강한 슬픔을 느낀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르의 미래의 가정교사가될, 뛰어난 시인인 바실리 주코프스키가 아기의 탄생에 대한 시에서 .아기에게 "가혹한 운명 앞에서 겁내지 않기를"이라고 이야기 한 이유 역시 있었다.
아들 알렉산드르와 딸 마리야와 함께 있는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대공비
(니콜라이1세의 황후,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알렉산드르의 선조들인 로마노프가의 짜르들은 피와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18세기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짜르를 죽이는것이 전통처럼 되어버렸다. 알렉산드르는 비밀스러운 독재권력과 그 권력을 얻기 위해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아는 군대를 물려받았다.
이것이 처음에는 관련이 없던 두 사건 모두가 시작된것이었다.
17세기 말, 알렉산드르의 5대조 할아버지인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호위대를 창설했다. 그후에, 18세기초 이 위대한 황제는 발틱지역을 침공했다.
표트르 대제
이때, 신데렐라 이야기에 비견될만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마법같은 18세기의 가장 마법같은 이야기일것이다.
리플란디아에서, 지역 농노의 딸인 마르타 라는 이름의 요리사가 글룩 사제의 집에 있는 초라한 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예쁜 하녀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설거지하고 요리했으며,다른 농노들과 같은 일을 했다. 마르타는 남편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유부녀였다. 지나가던 한 용기병이 그녀와 결혼했다. 교활한 이 사람은 예쁜 요리사와 즐긴후 전쟁터로 떠났다. 그는 이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데, 전쟁터에서 죽었거나 그녀에 대해서 잊어버렸을것이다. 이 어린 미녀는 러시아 군대가 진격해서 그곳을 점령해서 마르타를 잡가지 않았다면 평생 사제의 부억에 지냈을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직 요리사의 마법같은 신분상승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령관인 셰레메트예프 백작의 침대였다. 그후 그녀의 풍만한 가슴은 그녀를 좀더 높은이의 침실로 가게 했다. 바로 표트르 대제가 가장 아꼈던 신하인 멘쉬코프공의 침실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바로(그리고 자주) 짜르의 침대로 갔다.
이 주제에 대한 매우 인기있는 민속화가 있다. 이 그림은 짜르가 축하연을 즐기는것을 묘사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가슴이 큰 멍청한 미녀를 짜르에게 데려가는 모습이었다.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있다. : "충성스러운 신하가 짜르에게 가장 값진 소유물을 바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환상들은 불같은 성격의 표트르의 침실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하지만 마르타는 항상 남았다. 마르타의 매력과 선천적으로 좋은 성격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 러시아의 황제는 유부녀인 요리사와 결혼했다. 마르타는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로 세례받았고, 표트르 대제는 그녀를 황후로 만들었다.
표트르 대제의 황후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황후
후에 러시아의 예카테리나1세
1725년, 표트르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권력자 모두가 그의 침대곁에 모여들었다. 황제는 단지 이말만을 남겼다. "모든것을 물려주라." 하지만 황제는 누구에게 물려주라고 말할 시간이 없었다.
짜르가 가장 중요한 명령을 내리려했을때, 죽음은 그를 놀리듯이 짜르를 데려갔다.
시신이 준비되는동안 궁정 사람들은 "모든것"-이것은 발틱해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세계의 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제국이었다.-을 누가 가질것인가에 대해서 결정하기 위해 옆방에 모였다. 궁정 신하들이 놀라게도, 근위대의 장교 역시 그 방에 있었다. 표트르 대제의 명에 의해 연대장들은 그곳에 들어갈수 있었다.
조신들은 "너희들이 감히!"라고 말했고, 거리로 부터 북소리가 대답으로 들려왔다. 조신들은 창밖을 내다보았고,궁정 정원에 군인들이 몰려든것을 보았다. 궁전의 출입문은 근위대에 의해서 봉쇄되었다. 근위대 장교들은 전직 요리사를 러시아의 여제인 예카테리나1세로 즉위시켰다. (만약 예카테리나의 첫번째 남편이 드라쿤이었다는 이야기가 밝혀졌다면 이야기는 더욱더 완벽해졌을것이다. -아마도 두번째 예카테리나이야기와 비교하는듯한 이야기인듯해요.)
예카테리나1세의 통치기는 기묘한 시기였다. 여제의 회계에 대한 책들이 남아있는데, 어릿광대와 연회 비용이 왕국의 나머지 예산과 맞먹었다.
표트르 대제의 죽음
대제는 자신의 제국을 누구에게 물려줄것인지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아들은 다 죽어, 딸네미들은 어려...=-=;; 고민많으셨을듯합니다)
예카테리나1세의 통치기에는 아직까지 표트르 대제의 아이들-근위대들-이 정치판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그들은 그세기 동안은 실력을 행사할수 없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서 않아서, 경비대들은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1세의 딸인 옐리자베타를 또다른 여제로 즉위시켰다.
예카테리나1세가 사망한후, 여제의 딸인 옐리자베타는 자신이 주변에서 소외당하는것을 알아차렸다. 표트르 대제 통치 초기를 연상시키듯이 표트르의 형인 이반의 후손들인 브라운슈바이크 공부부가 나라를 통치하기위해 나타났다. 둘의 어린 아들인 이오안 안토니오비치는 아직까지 요람에 있었는데, 황제로 즉위했다. 이 아이의 섭정은 어머니인 안나 레오폴도브나 공비가 되었다
어머니인 섭정 안나 레오폴도브나와 함께 있는 이반6세
딴이야기지만 여기서도 안나 레오폴도브나가 하고 있는 훈장이 성 예카테리나 훈장입니다.
이미 이당시 황실 여성 훈장으로 완전히 정착한듯해요.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온 이 방문자들은 러시아 근위대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할수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반면 표트르대제의 딸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옐리자베타는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에 태어났다. 그녀는 결혼 직후에야 표트르 대제의 적자로 인정되었다. 옐리자베타는 빨간 볼에 훌륭한 도자기 같은 매끈한 피부와 풍성한 붉은 머리의 매력적인 아이였다. 그녀의 모습은 가장 매혹적이었다. 옐리자베타는 키가 컸으며, 가슴이 풍성했고 다리가 길었다. 한 독일 외교관은 처음으로 옐리자베타를 봤을때 기절했을정도였다.
아름다운 옐리자베타 여제
옐리자베타는 매우 격정적인 사람이었다. 궁전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던 잘생긴 'Cossack Rozum'이 옐리자베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이 평범한 Rozum을 라즈모프스키 백작으로 만들었고, 그는 오랫동안 옐리자베타가 사랑했던 사람으로 남았다.
옐리자베타의 초상화는 그녀의 무자비한 아버지 표트트를 닮은 강인하고 의지깊은 턱을 묘사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을 포기 했지만, 붉은 머리의 옐리자베타는 권력에 대한 욕망은 절대 잊지 않았다. 표트르 대제의 딸은 감금되어서 살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근위대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1741년 11월 어느 추운 밤, 약 300명의 근위대원들에 둘러쌓인 썰매한대가 네프스키 해자를 건너고 있었다. 왕궁으로 향하던 그 썰매에는 옐리자베타가 타고 있었다.
가는동안, 근위대원들은 왕궁주변에 살던 잠든 권신들을 체포했다. 농담과 조롱이 뒤섞인 말을 들으면서, 섭정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주요한 신하들은 침대에서 감옥으로 보내졌다. 왕궁에 다 달았을때, 옐리자베타는 썰매를 멈주게했고, 곧 소란은 잦아들었다. 근위대들은 이 미녀를 호위하고서 왕궁으로 향했다. 보초가 북을 쳐서 경고하려 했을때, 한 장교가 자신의 칼로 북을 찢어버렸다. 이들은 저항없이 왕궁을 장악했다.
"그만 일어날 시간이야,동생" 옐리자베타는 이렇게 말하면서 제국의 섭정을 깨웠다. 이 한밤의 혁명은 성공적이었다. 섭정은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요새로 보내졌다. 옐리자베타는 어린 황제를 자신의 썰매로 데려갔다. 경비대들이 다가갈때까지 아기는 행복한듯이 웃고 있었다. 옐리자베타는 아이에게 키스했고, 한숨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여운것" 아이는 Shisselburg fortress에서 평생을 죄수로 지냈다. 러시아의 전 황제는 감방에서 성장했고(러시아판 철가면이다) 그가 왜 그곳에서 일생을 마쳐야했는지 알지 못했다. 요새의 경비대는 결국 그를 살해했다. 그의 비참한 부모는 그곳에서 죽을때까지 있었다.
쿠데타 다음날 아침, 옐리자베타는 스스로를 여제이자 근위대의 대장으로 선언했다. 여제는 군을 인정해주었고, 이것이 군이 정권교체에 개입한 마지막이 아니었다
강인한 인상의 옐리자베타 여제
옐리자베타 여제는 의지가 강하고 물불가리지 않는 잔혹한 성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친절하기도 했다. 여제에게는 합법적 자녀나 후계자가 없었기에. 조카를 황위계승자로 결정했다. 그는 옐리자베타 여제 언니의 아들인 홀슈타인 공인 카를 페테르 울리히였다. 이후 그는 표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으로 알려진다.여제는 조카 며느리감으로 프리드리히 대왕의 수많은 독일 왕족 신하들중 한명의 딸인 소피아 프레데리케 아우구스타라는이름의 독일 공녀를 선택했다. 어린 소피아는 멀고 먼 러시아로 왔다. 상트 페테스부르크로 가는 길에 이 어린 신부는 리가를 거쳐서 갔는데, 리가에는 옐리자베타 여제에 의해 축출당한 불운한 브라운슈바이크가문 사람들이 죄수로 갇혀있었다.
상트 페테스부르크에서 루터파 신자였던 소피아 프레데리케 공녀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대공비가 되었다. 이렇게 알렉산드르2세의 증조할머니이자 러시아의 예카테리나2세가 될 14살짜리 어린 신부의 러시아 삶이 시작되었다.
이후, 예카테리나는 자신이 러시아에서 살았던 초기 몇년간에 대해서 그녀의 유명한 'Note'에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여제가 죽은후 여제의 뒤를 이은 모든 로마노프가의 짜르들이 읽게되는것이다. 후에 보겠지만, 짜르들은 이것을 읽으면서 끔찍함을 느꼈다.
대공비 시절의 예카테리나2세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대공비
시샘하는 입장에서, 예카테리나는 옐리자베타 여제의 아름다움에 대해 극찬했다. 특히나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비교할수 없을 만큼 길고 예쁜 다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 멋진 다리는 보통 크리놀린과 스커트에 감춰져있었다. 하지만 여제는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세상에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날 여제는 한밤의 가면무도회를 열면서, 참석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남장을 하라고 명했다. 여제의 시녀들은 모두 땅딸한 짧은 다리의 소년처럼 보였으나, 여제는 긴 다리의 잘생긴 남자의 모습으로 모두들 앞에 나왔다.
어린 예카테리나는 점차 한밤에 가면무도회를 여는 또다른 이유에 대해서 이해했다.: 경비대와 한밤에 일어나는 혁명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옐리자베타 여제가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 똑똑한 소녀에게 좋은 예시가 되었다. 15살이 되었을때,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남편이 평범하다는것을 알았고 자신의 권력을 창출한 기반을 닦기 위해 궁정 조신들에게 뇌물을 주기 시작했다. 또 예카테리나는 여제로부터 잔혹함도 배웠다. 여제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말년이 어떻게 될지 알아차렸다. 여제는 프리드리히 대왕과 전쟁을 시작했고, 전장으로 수십만의 군인을 보냈다.
전쟁에서는 패배했지만, 이 실패는 여제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왔다. 여제의 군대는 1/10이 줄었다. 여제는 유럽의 가장 위대한 군사령관을 공격하므로써,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죽음은다시 한번 조롱하듯이 개입해서, 승리의 목전에서 옐리자베타 여제를 데려갔다.
노년의 옐리자베타 여제
유럽의 운명의 좌우했던 여제는 단지 잘 교육받지 못한 러시아의 봉건영주였다. 여제는 영국으로가는 육로가 있다고 믿었다. --;;; 여제는 자신의 강함과 자신감을 위해 엄청나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예카테리나가 옐리자베타 여제가 신하를 꾸짖는것을 한번 보았다. 여제의 위험할만한 격노를 잠재우기 위해, 궁정 어릿광대가 고슴도치를 가지고 왔다. 고슴도치를 보면서 여제는 안색을 바꾸었다. 여제는 "쥐야,진짜 쥐라고"라고 비명을 질렀다. 러시아의 여제는 치마를 들어올리고 방밖으로 뛰어나갔다.
옐리자베타 여제의 기묘한 행동을 볼때조차, 어린 예카테리나는 가장 중요한 점을 배웠다. 옐리자베타 여제는 권력을 움켜쥐기위해 행동했다. 러시아의 은밀한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 영리한 어린 소녀는 제국의 가장 중요한 규칙을 알아차렸다. 러시아에서 무한한 권력은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는 군대의 의지였다. 마치 고대 로마에서 집정관의 근위대가 누가 모든 권력을 잡을것인가 결정했다. 좋게 보면, 러시아는 세번째 로마제국이라고 불릴만 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의 불운한 남편인 표트르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료출처
Alexander II : The Last Great Tsar (라진스키)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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