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러시아의 여대공들....5. 파벨1세의 딸들과 손녀들

엘아라 2009. 12. 14. 22:07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파벨1세군요...흑 사실 글쓰고 있을때가 아닌데...-0=;;;;

공부할 책을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안나는지라..(집을 새로 도배하느라 책들에 발이 달렸었거든요..ㅠ.ㅠ)

에헤라 디야..라고 글이나 씁니다.-0-;;;;;

 

파벨1세의 딸은 여섯명이었죠. 그중 다섯째딸이자 일곱째 아이였던 올가 여대공은 어린시절 사망했습니다.

이 파벨1세의 다섯딸들은 각각 유럽의 왕족들과 결혼했습니다.

 

 

파벨1세

 

파벨1세의 부인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

 지금보니 여기도 성 예카테리나 훈장을 하고 있군요..

 

 

파벨1세의 첫째딸은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여대공 입니다.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여대공

오스트리아의 대공비

Grand Duchess Alexandra Pavlovna of Russia

(Александра Павловна)

( 9 August 1783 – 16 March 1801)

 

알렉산드라 여대공에 대해서는 불운했던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여대공들 (http://blog.daum.net/elara1020/7203703)이라는 글에서 이미 이야기 했습니다.

 

 

파벨1세의 둘째 딸은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 입니다.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비

Grand Duchess Elena Pavlovna of Russia

(Russian: Великая Княжна Елена Павловна)

(24 December 1784 – 24 September 1803)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은 언니인 알렉산드라 여대공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제 르 블룅 그림 중 알렉산드라와 옐레나를 그린 그림이 있군요.)  언니인 알렉산드라와 많은 면에서 서로 닮았기에 친했다고 합니다. 

1790년대 옐레나 여대공은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후계자였던 프리드리히 루드비히와 약혼했고, 1799년 러시아에서 결혼했습니다. (언니인 알렉산드라 역시 옐레나가 결혼한 일주일 후에 결혼했습니다.)

옐레나는 남편과 슈베린으로 왔는데, 슈베린의 궁정은 상트페테스부르크의 호화찬란한 궁정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러시아 여대공들은 러시아 궁정과 자신의 시댁 궁정이 너무 다른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 하지만 옐레나는 결혼생활에 만족했다고 합니다. 옐레나는 파울 프리드리히와 마리아 루이제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1803년 9월 옐레나는 중병을 앓았고 그달에 사망했습니다.

 

옐레나의 후손들 중에 유명한 사람은 러시아의 미헨 대공비와 옐리자베타 마브리키예브나 대공비, 덴마크의 알렉산드리네 왕비, 독일의 체칠리에 황태자비등이 있습니다.

 

 

옐레나 여대공의 남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프리드리히 루드비히

그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이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가 오래살아서였습니다.

대공위는 그와 옐레나의 아들인 파울 프리드리히에게 돌아갑니다.

 

파벨1세의 셋째딸은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입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대공비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Russian: Мария Павловна)

( 16 February 1786 – 23 June 1859)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은 어린시절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졌습니다. 그 이유는 종두의 부작용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종두는 천연두 예방백신맞는것입니다. 천연두로 미모를 망친분들이 많으시다고 하더라구요..아하하..) 예카테리나2세는 이 손녀의 재능을 사랑했고, 차라리 남자아이로 태어났으면 이라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후계자이자 후에 대공이 되는 카를 프리드리히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정치적인 것으로 카를 프리드리히의 어머니이자 "뛰어난 여성"이었던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루이제 대공비의 주선에 의한것이었습니다. (파벨1세가 딸에게 결혼선물로 핑크 토파즈로 된 장신구를 선물했고, 이후에 유럽 왕실에서 딸들이 결혼할때 핑크 토파즈 세트를 주는것이 유행이 되었하더라구요. 아마 그 딸이 마리야일껍니다. 작센-바이마르로 시집가는 딸에게 줬다..라고 읽은 기억이 있거든요.)

마리야는 결혼후 9개월간 러시아에서 머물렀고 그 후에 바이마르로 갔습니다. 이때 바이마르에서는 이 새로운 후계자 부인에게 매우 열렬한 환영을 했다고 합니다.

마리야는 피울 알렉산더, 마리, 아우구스타, 카를 알렉산더 이렇게  네명의 아이들을 낳았고 그중 셋째인 아우구스타는 후에 독일의 빌헬름1세와 결혼해서 독일의 황후가 됩니다.

마리야는 과학과 예술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 그녀는 가난한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에 예술과 과학의 후원자였으며, 자선사업에도 열심이었습니다.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카를 프리드리히

그의 어머니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루이제는 매우 뛰어난 여성으로 나폴레옹전쟁당시 나라를 지키고 이끌어가는데 중심인물이 된 여성입니다. 남편이 프로이센 군에 복무하고 있었기에 나폴레옹이 침공하자 왕족들은 대부분 나라를 떠났는데 루이제는 떠나지 않고 버텼고, 나폴레옹과 면담해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냈다고 합니다. (...뭐 그때 나폴레옹도 작센-바이마르에 집중할때가 아니라 대충 승락했다고합니다.)

이후 루이제 대공비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구심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파벨1세의 넷째딸은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이었습니다.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Catherine Pavlovna of Russia

(Russian: Екатерина Павловна)

(10 May 1788 – Stuttgart, 9 January 1819)

 

 예카테리나는 가족중에서 가장 예쁨받는 딸이었다고 합니다. 큰오빠이자 11살이나 차이나는 알렉산드르1세는 이 여동생을 끔찍히 아겼고 또 어머니인 마리야 파블로브나 황후가 가장 사랑하는 딸이기도 했습니다.

 아름답고 활기차며 황실 가족들의 사랑받던 이 여대공은 혼기가 되자 서둘러 결혼해야했습니다. 그 이유는 나폴레옹이 조제핀과 이혼을 했고 유럽왕실에서 황후감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카테리나 역시 여기 후보로 올랏는데, 어머니인 마리야 파블로브나 황태후는 딸이 나폴레옹과 결혼할까봐 서둘러 남편감을 구했다고 합니다.

1809년 예카테리나는 올덴부르크의 게오르그와 결혼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의 여동생으로 예카테리나와 게오르그는 사촌간이었습니다. (어랏-0-;;정교회는 사촌간 결혼을 금하는데, 사촌끼리 결혼시킬정도였으면 나폴레옹이랑 결혼할까봐 어지간히 서둘렀는모양이긴합니다.)

게오르그는 그다지 잘생긴편도 아니었고 둘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지만, 예카테리나는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합니다.

게오르그와의 사이에서는 두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중 둘째아들만이 성인이 되어서 결혼했습니다. 그 후손 중에는 알렉산드르3세의 딸인 올가 여대공의 남편인 올덴부르크의 공작이 있습니다.

 

 

예카테리나의 첫번째 남편

올덴부르크의 게오르그 

 

에카테리나는 결혼3년만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젊은 과부였던 예카테리나는 사랑하는 오빠를 따라 유럽을 여행했으며, 이때 외가쪽 친척인 뷔르템베르크의 왕태자인 빌헬름과 눈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때 빌헬름은 이미 바이에른의 샤를로테와 결혼한 유부남이었죠. 결국 빌헬름은 부인과 이혼한후 예카테리나와 결혼합니다.-0-;;

빌헬름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뷔르템베르크의 국왕이 되었으며 예카테리나는 카타리나라 왕비로 불리게 되죠. 그녀는 뷔르템베르크에서 활발한 자선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빌헬름과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예카테리나는 1819년 폐렴에 의한 감염으로 사망합니다.

 

 

예카테리나의 두번째 남편

뷔르템베르크의 빌헬름1세 

 

 

예카테리나의 딸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네덜란드의 왕비

사촌인 네덜란드의 빌렘3세와 결혼했습니다만 부부사이는 극악이었다고 합니다.-0-;;; 

 

파벨1세의 다섯째딸은 올가 파블로브나 여대공으로 어린시절 사망했다고 합니다.

 

Grandduchess Olga Pavlovna of Russia

1792 - 1795

 

파벨1세의 막내딸은 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입니다.

 

 

 

 

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

네덜란드의 왕비

Grand Duchess Anna Pavlovna of Russia

(Russian: Анна Павловна)

(18 January 1795 – The Hague, 1 March 1865)

 

안나는 어린시절 언니인 예카테리나와 사이가 별로였다고 합니다. 안나는 막내였지만, 언니 예카테리나가 예쁨받는것에 질투를 느꼈을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안나는 1816년 네덜란드의 왕태자이자 후에 국왕이 되는 빌렘2세와 결혼합니다. 결혼후 2년간 러시아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안나가 네덜란드에 왔을때, 안나는 네덜란드 궁정에 매우 충격받았다고 합니다. 왕정이라기 보다는 공화정에 가깝던 네덜란드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결혼생활 역시 원만하지 못했는데, 1829년 자신의 보석이 없어진것을 발견한 안나는 그것을 남편이 훔쳐갔다고 주장했다고합니다. 결국 원만하지 못한 결혼생활은 부부를 별거하게만들기도 했습니다.

안나는 모두 다섯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중 후에 네덜란드 국왕이 되는 큰아들 빌렘3세는 안나의 언니 예카테리나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싫어했다고 합니다.=0-;;;;;;;

 

안나의 남편

네덜란드의 빌렘2세

 

 빌렘2세의 가족들

 

 

 

 

알렉산드르1세와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 사이에서는 마리야와 옐리자베타 두명의 딸이 태어났습니다만 모두 일찍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두 딸은 모두 알렉산드르1세의 친딸이 아니라고 여겨지죠. 특히나 둘째딸이 죽었을때는 옐리자베타 황후가 무척이나 상심했고, 더불어 알렉산드르1세도 같이 슬퍼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1세는 정부가 따로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정부와 함께했는데 나중에 신비주의에 몰입하면서 황후에게 돌아갔고, 이때 옐리자베타 황후는 어머니에게 "제가 마치 알렉산드르의 정부나 비밀결혼한 사이같답니다."라는 편지를 보낼정도였습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1세

 

알렉산드르1세의 황후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

바덴의 루이제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Maria Alexandrovna of Russia

1799-1800

옐리자베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Elizabeth Alexandrovna of Russia

1806-1808

 

콘스탄틴 대공은 정식 결혼한 부인인 안나 표도로브나 대공비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고, 둘은 결혼초부터 별거했습니다.그리고 부인과 오랜 별거 끝에 이혼했으며 이혼 직후 귀천상혼했습니다.니콜라이1세의딸들은 따로 했으니 넘어가고, 니콜라이1세의 동생인 미하일 대공의 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미하일 대공은 외가쪽 친척인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와 결혼했습니다. (덕분에 파벨1세의 딸인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파벨1세의 며느리인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의 초상화들이 막 헷갈려서 여기저기서 대공비 초상화가 여대공이라고 하기도 하고 여대공 초상화가 대공비 초상화로 붙어있기도 합니다.)

둘사이에서는 다섯딸의 딸이 태어났는데 그중 두 딸인 알렉산드라와 안나는 어린시절 사망했습니다.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

(영어 위키에는 이 초상화가 파벨1세의 딸로 나오는데 제가 보기에는 파벨1세의 딸이라기보다는 옐레나 대공비 같거든요. 왜냐면 다른 초상화랑도 좀 비슷해보이구요.또 러시아 위키에는 옐레나 대공비로 나오거든요) 

 

 

 

미하일 대공의 큰딸은 마리야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입니다.

 

 

 

마리야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Grandduchess Maria Mikhaylovna of Russia

Мария Михайловна

 (1825-1846)

...ㅠ.ㅠ 저 이 초상화가 니콜라이1세의 딸인 알렉산드라 여대공 초상화인줄 알았는데 마리야 여대공 초상화인가봐요. 예전에 봤던 독일 위키에서는 이 초상화가 삭제되었고, 러시아 위키에 들어가니 마리야 여대공항목에 이 초상화가 뜨네요. 게다가 링크 사이트에 이 초상화가 마리야 미하일로브나라고 나오는 것도 있구요...ㅠ.ㅠ

 

마리야 여대공은 미하일 대공의 큰딸이었습니다. 교육을 잘 받았던 마리야의 어머니 옐레나는 딸의 교육에 힘썼습니다. 미하일 대공은 군대에 열광했는데, 그는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마리야는 후에 아버지가 자신을 군대 사열에 데리고 가는등의 일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리야는 어린이 도서관을 개관하는등의 일을 했고, 바덴의 후계자의 부인으로 거론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건강이 허약했던 마리야 대공은 미혼으로 사망했습니다.

 

 

어머니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와 함께 있는 어린 마리야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이 초상화가 위의 초상화랑 닮았다는 초상화입니다. 

 

미하일 대공의 둘째딸은 옐리자베타 미하일로브나 여대공입니다. 

 

 


옐리자베타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나사우의 공작부인

Yelizaveta Mikhaylovna, Grand Duchess of Russia

(26 May 1826 – , 28 January 1845)

 

옐리자베타는 어린시절 '릴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옐리자베타라는 이름은 백모이자 그녀가 태어나기 얼마전에 사망한 알렉산드르1세의황후 옐리자베타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라고 합니다. 옐리자베타 여대공의 어머니인 옐레나 대공비는 동서인 알렉산드라 황후(니콜라이1세의 황후)와 달리 동서인 옐리자베타 황후와 친했다고 합니다.

옐리자베타는 자매들중 제일 예뻤으며, 어머니처럼 잘 교육받았고 사람들에 매우 다정하게 대했습니다.

옐리자베타는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나사우 공작이었던 아돌프를 만납니다. 아돌프의 새어머니가 옐리자베타 여대공의 이모였죠. 둘은 사랑에 빠졌고,1844년 옐리자베타가 17살때 결혼합니다.

나사우로 돌아가기전 러시아에서 머물렀던 둘은 나사우로 돌아가서 매우 열렬히 환영받았습니다. 둘은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고, 고향에 돌아갔을때 옐리자베타는 이미 임신중이었기에 첫아이에 대한 기대로 더욱더 행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옐리자베타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아이역시 살지 못했습니다. 아돌프는 이에 매우 상심했고, 죽은 부인을  기리기 위해 성 엘리자베트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곳은 언덕에 있었는데 아돌프의 거주지에서 언제나 볼수 있었다고 합니다.

 

 

옐리자베타의 남편

나사우의 아돌프

후에 룩셈부르크의 대공

 

 

미하일 대공의 셋째 딸은 예카테리나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입니다.

 

 

 

 

예카테리나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공작부인

Grand Duchess Catherine Mikhailovna of Russia

(Russian:Екатерина Михайловна - Ekaterina Mikhailovna)

 (born St. Petersburg 28 August 1827; died St. Petersburg 12 May 1894)

 

예카테리나는 미하일대공의 셋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옐레나 대공비는 다른딸과 마찬가지로 예카테리나를 잘 교육시켰는데, 특히나 예카테리나의 두 동생인 알렉산드라와 안나가 일찍 사망하자 막내가 된 예카테리나에게 더욱더 많은 신경을 쏟았다고 합니다.

아버지 미하일 대공이 사망한후 그녀와 어머니 엘레나 대공비는 상트페테스부르크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1851년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니콜라이1세의 황후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사촌이었죠.

남편이 둘째아들이었기에, 예카테리나 여대공은 남편과 함께 어머니가 있는 러시아에서 거주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남편에게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남편과 사이에서는 모두 다섯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러시아에서 살았던 예카테리나는 자선사업에 열심이었으며, 수많은 연구소와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아들인 게오르그 알렉산더가 귀천상혼하자 매우 화를 냈으며, 귀천상혼한 아들과 그 후손에게는 단한푼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죽기전 아들과 며느리에게 축복을 내려줬다고 합니다.

재미난것은 현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가문 수장이 바로 이 귀천상혼한 게오르그 알렉산더의 후손이라는것입니다.^^*

 

예카테리나의 남편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

 

 

미하일 대공의 넷째 딸은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입니다.

 

Grand Duchess Alexandra Mikhailovna of Russia

(1831-1832)

 

 

미하일 대공의 막내딸은 안나 미하일로브나 여대공입니다.

 

Grand Duchess Anna Mikhailovna of Russia

(1834-1836)

 

자료출처

위키피디어(러시아어 포함)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 위키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