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안나 레오폴도브나는 참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무척이나 중요한 존재였지만, 다른이들에게 늘 방해만 되는 인물로 인식되었죠. 거의 평생을 갇혀살았던 그녀는 결국 유폐된채 죽었고, 유폐된후 태어난 그녀의 아이들은 40이 넘는 나이가 들어서야 겨우 풀려날수 있었습니다.
안나 레오폴도브나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엘리자베트 카타리나 크리스티네
브라운슈바이크의 공작부인
러시아의 섭정
Anna Leopoldovna (А́нна Леопо́льдовна)
(18 December 1718 – 19 March 1746)
also known as Anna Karlovna (А́нна Ка́рловна)
안나 레오폴도브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엘리자베트 카타리나 크리스티네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카를 레오폴트와 그의 세번째 부인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카를 레오폴드는 세번 결혼했지만, 자녀는 딸인 엘리자베트 밖에 없었습니다.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부모는 매우 불행했는데,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과의 전쟁시 메클렌부르크의 중요성때문에 조카를 정략결혼시켰다고 합니다. 카를 레오폴트는 부인을 때렸고, 이에 예카테리나는 딸을 데리고 러시아로 돌아갔으며, 이혼하지 않았지만, 다시는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아버지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카를 레오폴트
표트르2세가 사망한후 황위계승자 논란이 있었을때, 안나의 어머니 예카테리나도 황위계승후보이긴했지만 카를 레오폴트가 영향력을 행사할것을 우려해서, 예카테리나의 동생이자 과부였던 안나가 여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0-;;;;
이후 1733년 엘리자베트는 어머니의 명에 따라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으며, 개종하면서 안나 레오폴도브나 라는 이름을 받습니다. (안나 카를로브나라는 이름 역시 쓰이는 이유는 아버지가 카를 레오폴트였기 때문입니다. 정교회식이름은 자기이름+아버지 이름 이기때문이죠.)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안나 레오폴도브나는 러시아 황위계승자중 한명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안나 레오폴도브나는 1739년 브라운슈바이크의 안톤 울리히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안톤 울리히의 이모였던 신성로마제국의 엘리자베트 황후(카를6세의 황후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어머니, 그러고보니 러시아의 표트르2세와 나탈리야 여대공의 이모기도 했군요.)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남편
브라운슈바이크의 안톤 울리히
1740년 둘의 아들이 태어나자,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이모인 안나 여제는 그 아이를 이반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의 황위계승자로 선포합니다. 하지만 여제는 조카이자 이반의 어머니인 안나 레오폴도브나가 아니라 자신의 총신이었던 뷰렌의 에른스트 요한을 섭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같은해 여제가 죽자 겨우 태어난지 두달밖에 안된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아들 이반이 이반6세로 즉위했습니다. 안나 여제의 뜻에 따라 에른스트 요한이 처음에 섭정이 되었지만, 겨우 삼주만에 정적에 의해서 물러났으며 안나 레오폴도브나를 지지했던 신하들이 안나 레오폴도브나를 섭정으로 만들었습니다.
안나 레오폴도브나와 그 남편은 러시아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나 군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를 너무나 잘 인식했던 표트르 대제의딸인 옐리자베타는 군대의 지지를 얻어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1741년 옐리자베타는 근위대의 지지를 얻어 겨울궁전으로 진격했으며, 안나 레오폴도브나와 그 가족을 모두 사로잡습니다. 그날 옐리자베타는 유아용 침대안에 있던 이반6세를 안아들고서는 "가여운것"이라고 말한후 모두 멀리 리가에 유폐시킵니다.
이반6세와 그 어머니 섭정 안나 레오폴도브나
가족들이 모두 유폐되어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과 접촉이 금지 되었고, 정부에서 이 가족들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한 사람만이 정기적으로 방문했었다고 합니다. 안나 레포폴도브나는 남편과 유폐될때 두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이후 유폐되어서 세명의 아이를 더 낳습니다. 그리고 1746년 막내인 알렉세이를 낳다가 사망합니다.
이 가족들은 옐리자베타 여제가 죽고, 표트르3세가 즉위하자 좀더 사정이 괜찮아지는듯보였습니다만 표트르3세는 곧 부인인 예카테리나에 의해 실각했습니다.
예카테리나가 즉위한뒤,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황위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제거합니다. 그중에는 남편인 표트르3세와 그 전전 황제였던 이반6세도 있었죠. 이반 6세는 1764년에 살해당합니다. 하지만 이반6세의 아버지와 네 동생들은 죽지 않았죠.
결국 1770년대 안톤 울리히도 리가에서 사망했으며, 아이들만이 여전히 유폐된채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1780년 고모이자 덴마크 왕비였던 율리아나 마리아가 40살이 넘은 조카들을 풀려나게 힘썼으며 그들을 덴마크로 데려옵니다.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시누이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뷰텔의 율리아나 마리아
덴마크의 왕비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아이들은 살아있다는것 자체가 다른 황위계승자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특히나 혈통상 로마노프가와 전혀 관계없던 예카테리나2세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었기에 은폐시키려했습니다.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두딸은 예카테리나와 옐리자베타로 그중 예카테리나는 형제 자매들중 가장 오래도록 살았습니다. 그녀는 청력장애자였던가 그랬는데, 옐리자베타 여제의 쿠데타가 있던날 급하게 아이를 안고 데리고 가려다가 떨어뜨려서 그만 장애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후 예카테리나는 알렉산드르1세에게 러시아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빠가 이반6세로 알렉산드르1세 할아버지의 이모인 옐리자베타 여제 이전 황제였는데 말입니다...-0-;;)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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