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표트르 대제까지 왔습니다.
표트르 대제의 살아남은 딸은 둘이었는데 한명은 표트르3세의 어머니이고, 다른 한명은 바로 옐리자베타 여제였죠.^^* 둘다 예카테리나1세의 딸들이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라진스키 책에서는 예카테리나가 황후가 되고 여제가 된것에 대해서 "신데렐라"이야기와 후에 같은 이름의 여제인 예카테리나2세와의 유사성을 언급하더군요.^^*( 물론 다른 점은 예카테리나1세는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존재였다는것이죠.)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1세
둘의 딸중 살아남은 첫째는 후에 홀슈타인-고토로프의 공작부인이 되는 안나 페트로브나 여대공입니다.
안나 페트로브나 여대공
홀슈타인-고토로프의 공작부인
Grand Duchess Anna Petrovna of Russia,
Tsesarevna of Russia
(Anna Petrovna Romanova Russian: Анна Петровна)
(27 January 1708, Moscow – 4 March 1728, Kiel)
안나 페트로브나는 부모인 표트르대제와 예카테리나 1세가 공식적으로 결혼한것을 알리기 전에 태어났기때문에 적자로 인정받았지만, 이것은 다른 왕가에서 안나의 신분을 낮게 보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1707년 비밀결혼, 1712년 공표)
표트르 대제는 자녀들을 유럽의 여러 명문가와 결혼시키려 했는데, 안나는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인 카를 프리드리히와 결혼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스웨덴의 칼11세의 딸인 헤드비그 소피아 공주였습니다.
그가 다른 유럽왕가에서 약간 꺼리던 안나와 결혼한 이유는 두가지로 첫번째는 홀슈타인-고토로프가 덴마크에서 독립하려면 외국세력이 필요했고,당시 강성하던 러시아 세력의 힘을 빌리는것이었고,두번째는 외삼촌인 칼12세가 후손없이 사망한후 벌어졌던 왕위계승문제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좀더 힘을 싣기위해서였습니다. (카를 프리드리히의 어머니인 헤드비그 소피아 공주는 칼11세의 큰딸로, 만약 여성 왕위계승자를 고려한다면 그의 어머니가 이모인 울리카 엘레노라보다 더 우선순위였기때문입니다. -0-;; 여담입니다만 이때 왕위계승문제가 엄청나게 골치 아파서 결국 의회보고 왕을 정하라고 하는 바람에 스웨덴에서 의회가 더욱더 힘을쓰게되죠..ㅎㅎㅎ)
안나 페트로브나는 결혼 전에 프랑스 왕가와도 혼담이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14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의 손자이자 루이14세의 외손자인 오를레앙 공작 루이가 혼담의 주인공이었습니다만, HIH였던 안나에 비해 겨우 HSH였던 오를레앙공작이 신분이 너무 낮다고 여겨져서 혼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나가 남편과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인 표트르 대제가 사망합니다. 대제는 후계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후계자 이름을 말하기 직전에 죽었다고 하더군요.) 몇몇 역사학자들은 큰딸인 안나에게 황위를 물려주려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뭐 큰딸이었으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표트르대제가 말안하고 죽었으니 알수 없죠) 어머니 예카테리나의 통치기 동안 안나와 그 남편은 러시아에서 머물렀으나 예카테리나1세가 사망한후인 1727년에는 러시아를 떠나 홀슈타인으로 돌아갑니다.
그후 1728년 20살의 나이로 아들을 낳은 직후 사망했습니다. 이 아들이 후에 러시아의 표트르3세로 홀슈타인-고토로프계 로마노프 왕가의 시조가 됩니다.
동시대 문헌에 따르면, 안나는 아버지와무척이나 닮았으며, 아름답고,교육을 매우 잘받아서 프랑스어,이탈리아어를 잘했으며 스웨덴어도 했다고 합니다 또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특히나 조카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표트르2세)를 무척이나 잘 돌봤다고 합니다.
안나의 남편 카를 프리드리히
어린시절
안나 페트로브나 여대공
1725년
안나의 아들
러시아의 표트르3세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1세의 살아남은 둘째딸은 러시아의 여제가 되는 옐리자베타입니다.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대공
러시아의 여제
Elizaveta Petrovna
( Елизаве́та (Елисаве́т) Петро́вна)
(29 December 18 December] 1709 – 5 January 1762 [ 25 December 1761] ),
옐리자베타 역시 언니 안나와 같은 처지였기에, 다른 왕가들에서 그녀를 약간 낮게 봤다고 합니다.
옐리자베타는 어린시절부터 무척이나 아름다운 소녀로 알려졌으며, 이후에도 미모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됩니다. 이 아름다운 딸을 표트르 대제는 동경하던 서유럽의 중심 프랑스 왕가로 시집보내고 싶어했습니다. 루이15세의 왕비로 보내고 싶어했지만, 프랑스측에서 거부합니다.
이후 옐리자베타는 언니와 마찬가지로 홀슈타인-고토로프가문 사람과 약혼합니다. 언니 남편의 사촌인 홀슈타인 고토로프의 카를 아우구스투스 약혼합니다만 약혼직후 약혼자가 죽어버립니다. 그리고 얼마후 아버지 표트르 대제도 곧 사망했고, 러시아 정치는 혼란해졌으며 이 와중에 아름다운 옐리자베타의 혼담은 끊어집니다. (참고로 옐리자베타가 약혼했던 칼 아우구스투스의 동생 중엔 스웨덴의 국왕이 되는 아돌프 프레드릭과 예카테리나2세의 어머니인 요한나 엘리자베트가 있습니다.)
옐리자베타는 아름다웠을뿐만아니라 아버지를 닮아서 아망이 무척이나 컸다고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난뒤 그녀는 어렸고 정치 투쟁에 참가할만한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예카테리나1세시기를 거쳐 표트르2세때는 권신의 미움을 받아 궁정에서 멀리 떨어진곳으로 갑니다. (표트르2세가 이 고모를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당시 권력을 유지하려던 돌로루키공이 옐리자베타를 궁정에서 멀리 떨어진곳으로 가게했다고 합니다.)
이후 안나 여제때는 완전히 궁정에서 배제됩니다. 안나여제는 숙부인 표트르 대제의 후손들을 배제하고 자신의 조카와 그 후손으로 러시아 황위를 이어가려했기에, 갓난아기였던 조카의 아들을 이반6세로 삼았고, 조카인 안나 레오폴도브나를 섭정으로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이때, 옐리자베타는 근위대의 도움으로 쿠데타를 일으켜서 이반6세와 그어머니인 안나 레오폴도브나와 섭정가족들을 추방하고 스스로 제위에 오릅니다.
옐리자베타는 야심이 컸던 뛰어난 정치가이긴 했지만 교육은 그다지 많이 받지 못했는데, 옐리자베타 여제는 영국으로 가는 육로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일화는 여제가 쿠데타를 일으킬때 성공한다면 러시아에서 사형을 없애겠다고 신께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형을 없앴는데, 이후 콜라이1세때 데카브리스트들의 반란을 진압한후 주동자 6명을 교수형에 처할때까지 지켜졌다고 합니다. (....공개적으로 사형하는 대신 몰래 죽였다는...-0-;;;) 어쨌든 니콜라이1세가 즉위한 날 일어난 이 반란이 진압된후, 주동자가 교수형당할때 교수대 만드는 방법조차 잊어버려서 엉성하게 만들었고, 결국 여섯명중 네명이 제대로 못죽었다고 합니다. (한번 목매달렸다가 교수대가 부러져서 살았는데, 고쳐서 다시 목매달렸다고 합니다.-0-;;;)
옐리자베타 여제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예카테리나2세의 기록도 있습니다.예카테리나2세는 시이모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어느날 가장무도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날 여제는 모든 여성에게 남장을 하라고 명했는데, 무도회장에 나타난 귀부인들은 대부분 키가 작고 땅달한 시동의 모습처럼 보였는데, 옐리자베타 여제는 늘씬한 모습의 잘생긴 청년모습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예카테리나2세는 이런 옐리자베타 여제의 아름다운 다리를 무척 부러워하면서 묘사했습니다.
언니 안나와 함께 있는 옐리자베타 여제
(금발머리가 옐리자베타입니다.)
옐리자베타 여제
여제가 비밀결혼했던 인물
알렉세이 라즈모프스키 백작
표트르 대제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알렉세이는 두명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딸인 나탈리야와 아들인 표트르였죠.
표트르 대제의 아들 알렉세이와 며느리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뷰텔의 샤를로테
알렉세이와 샤를로테는 사이가 안좋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샤를로테는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모입니다.
둘의 큰아이이자 딸은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 여대공입니다.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 여대공
Natalia Alexeievna of Russia
Наталья Алексеевна
(21 July 1714 - 22 November 1728)
동생 표트르2세와 함께 있는 모습으로 표트르는 아폴론으로 나탈리야는 아르테미스여신으로 분장한 모습입니다.
나탈리야는 부모가 모두 사망한후 동생 표트르와 함께 공식적으로 황실에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성장했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나탈리야의 아버지인 알렉세이를 싫어했고, 예카테리나1세의 자녀가 후계자가 되길 바랬습니다. 이것은 표트르대제 사후에도 지속되었고, 예카테리나1세 역시 둘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제가 죽어갈때, 많은 귀족들이 표트르 대제의 손자인 표트르를 지지했고, 이모부인 신성로마제국의 카를6세 역시 압박을 가했다고 합니다.
결국 권신인 멘쉬코프공이 나서서 표트르를 황제로 만듭니다. 동생이 황제가 된후, 나탈리야는 오촌인 안나 이오나브나와 고모인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다음으로 세번째 황위계승권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멘쉬코프공이 자신의 아들 중 한명을 나탈리야와 결혼시키려 했기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곧 권력을 잃었으며, 돌로루키공이 권력을 잡습니다.)
그리 아름다운편은 아니었지만 똑똑하고 상냥했었다고 알려진 나탈리야는 동생인 표트르를 잘 달래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14살로 사망합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러시아어 포함)
2.Alexander II : The Last Great Tsar (2005, Edvard Radzinsky)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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