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러시아의 여대공들...3.알렉산드르2세의 딸들과 손녀들

엘아라 2009. 10. 6. 21:52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알렉산드르2세의 딸은 알렉산드라 여대공과 마리야 여대공 둘이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 여대공은 어린나이에 사망했기에 마리야 여대공은 알렉산드르2세의 고명딸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손녀들은 알렉산드르3세의 두 딸인 크세니아와 올가를 빼면 모두 두명이었습니다. 셋째아들인 블라디미르 대공의 고명딸인 옐레나 여대공과 막내아들인 파벨대공의 딸인 마리야 여대공이었죠. 파벨대공은 첫번째 부인이 죽은후 재혼했습니다만, 귀천상혼이었고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은 팔레이 공/공녀 칭호를 받았습니다.

 

 

 

알렉산드르2세

 

알렉산드르2세의 황후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

 

 

 

 

 

 

 

1.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Alexandra Alexandrovna of Russia

(August 30, 1842 – July 10, 1849)

 

알렉산드르2세의 첫번째 아이였던 알렉산드라 여대공은 어린시절 무척이나 사랑받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인 알렉산드르2세는 딸을 끔찍히 사랑해서 서재에서 일할때도 자주 아이를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겨우 여섯살때 수막염으로 사망합니다. 이 일은 부모에게 큰 충격이어서, 알렉산드르2세는 딸의 기일을 중요기일로 표시했고, 어머니인 마리야 황후는 수십년이 지났어도 알렉산드라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후 러시아 궁정에서는 가끔 알렉산드라 여대공의 유령을 봤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중 한명은 아이의 할아버지인 니콜라이1세였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라의 유령을 만져봤다고 까지 주장했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알렉산드라의 어머니 마리야는 이것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것은 마리야 황후의 오빠인 헤센의 알렉산더 공이 죽어갈 무렵  황후의 아들인 세르게이 대공은 외삼촌의 임종때 어머니의 유령을 봤다고 합니다.^^*)

 

2.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에든버러 공작부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부인

Grand Duchess Maria Alexandrovna of Russia

Duchess of Edinburgh and Duchess of Saxe-Coburg and Gotha;

(7 October 1853 – 24 October 1920)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알렉산드르2세의 둘째딸로 언니 알렉산드라가 죽은후 태어났기에 황제의 고명딸이었습니다. 큰딸을 잃은후 얻은 둘째딸이었고, 하나 밖에 없는 딸로 알렉산드르2세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합니다.

 마리야는 어머니를 따라 외가인 헤센에 자주 갔는데 그곳에서 영국의 앨프러드 왕자와 만나게 됩니다. 마리야의 올케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자비(덴마크의 다그마르)와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태자비는 자매간이었고, 또 헤센 대공가의 후계자인 루드비히의 부인 역시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자 앨프러드의 누나였던 앨리스였죠. 이런 가족관계때문에 둘의 혼담이 진행됩니다.빅토리아 여왕과 알렉산드르2세는 이 혼담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알렉산드르2세는 딸이 멀리 시집가서 사는것이 안타까워서였을테고, 빅토리아 여왕은 러시아 왕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였을듯합니다.)

결국 마리야와 앨프러드는 결혼했고, 마리야는 영국으로 갑니다. 하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실패였는데 가장 큰 원인이 마리야가 영국 사교계에 적응하는데 실패했기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두가지 이유였는데, 마리야는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매우 지적이었는데 당시 영국 사교계는 마리야 같은 여성보다는 아름답지만 백치미가 돋보인-0-;;; 알렉산드라 왕태자비같은 여성이 더 대접받았기때문이었고, 또 마리야는 짜르의 딸이었고, 손윗동서인 알렉산드라는 겨우 (그것도 태어날때부터 왕위계승자가 아니었던) 덴마크 국왕의 딸이었음에도 항상 알렉산드라가 우선권을 갖는것에 불만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마리야는 남편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되어서 영국 공작작위를 내놓게 되자 매우 기뻐하면서 독일로 가서 살았다고 합니다.

 

 

아들과 남편과 함께 있는 마리야 여대공

 

 

마리야 여대공의 네딸들

베아트리스,빅토리아 멜리타,알렉산드라, 마리 

 

 

 

3. 옐레나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

 

 

 

 

옐레나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

그리스의 니콜라오스 왕자비

Grand Duchess Elena Vladimirovna of Russia

January 17, 1882 – March 13, 1957

 

옐레나 블라디미로브나는 알렉산드르2세의 셋째아들인 블라디미르 대공의 고명딸이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소녀였지만, 블라디미르 가문 사람답게 매우 오만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바덴의 막시밀리안과 약혼했지만, 그가 아무이유없이 약혼을 깼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옐레나가 괜찮은 혼처를 찾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존심 강한 옐레나의 어머니인 미헨 대공비는 이에 열받아서 딸을 왕비나 제위계승자와 결혼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노력과는 달리 옐레나는 이미 사랑에 빠져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 국왕의 셋째아들인 니콜라오스 왕자였죠. 니콜라오스 왕자의 어머니인 올가 왕비는 니콜라이1세의 손녀로 러시아 여대공이었기에 자주 러시아에 왔습니다. 이때 니콜라오스 왕자도 어머니를 따라 왔다가 옐레나 여대공을 보고 반한것이었죠.

미헨대공비는 "겨우 국왕의 셋째아들"밖에 안되는 왕자와 결혼하는것을 반대했습니다만, 추진하던 혼담이 그다지 성과가 없자 결국 결혼을 허락합니다.

옐레나는 "엘렌"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다른 러시아 여대공들처럼 자신의 신분을 자랑스러워했으며, 다른 동서들에 대해서 약간 낮게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오만한"이라는 수식어가 늘붙어다녔습니다.

하지만 남편과는 매우 행복했고, 세명의 딸을 낳았죠. 아이를 더 이상 낳지 않은것은 엘렌은 막내딸을 낳다가 거의 죽을뻔했기에 더이상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니콜라오스 왕자는 막내딸인 마리나에 대해서 "진짜 소중한 아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 막내딸인 마리나는 영국의 켄트공작과 결혼해서 현 영국국왕님의 숙모였습니다. (참고로 여왕님 남편인 필립공 사촌입니다...또 꼬이는 족보...ㅎㅎㅎ)

 

 

옐레나 여대공의 부모와 가족

블라디미르 대공과 미헨대공비

세오빠들과 엘렌

미헨 대공비가 안고 있는 아이가 엘렌입니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엘렌

 

 

엘렌의 세딸들

아마 맨왼쪽부터 올가, 엘리사베타, 마리나

 

 

4.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한때 스웨덴의 왕자비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known as "Maria Pavlovna the Younger"

(In Russian Великая Княгиня Мария Павловна)

(St. Petersburg, 18 April [O.S. 6 April] 1890 – Konstanz, 13 December 1958

 

마지막으로 소개할 여대공은 알렉산드르2세의 막내아들인 파벨 대공의 딸인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입니다. 자주 the younger를 붙이는데 그 이유는 마리야 여대공의 백모이자 위의 옐레나 여대공의 어머니인  미헨 대공비 역시 정식 이름은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였기때문에 헷갈려서 그렇습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은 파벨 대공과 그리스의 알렉산드라 공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알렉산드라의 어머니인 올가 왕비는 러시아 여대공으로 파벨대공의 사촌이었죠. 알렉산드라 공주는 요양온 파벨 대공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어머니처럼 일찍 결혼했죠. 둘은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만, 마리야 여대공의 동생인 드미트리 대공을 임신했을때 실족해서 조산후 사망합니다.

파벨대공은 부인이 죽은후 10여년간 홀로 살았습니다. 파벨대공의 형인 세르게이 대공은 조카들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자주 봤으며, 세르게이 대공의 부인인 엘라 대공비 역시 파벨대공부부와 친했기에 조카들을 자주 만났다고합니다.

이후 파벨대공이 이혼녀와 귀천상혼하자, 러시아에서 추방당합니다. 마리야와 드미트리는 상속권을 빼앗길것을 우려한 세르게이 대공에 의해 입양되죠. 마리야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황태후에게 아버지가 러시아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세르게이 대공이 암살당하자, 파벨 대공은 자녀들을 데리고 갈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그는 그것을 거절하고 마리야와 드미트리는 엘라 대공비에 의해 키워집니다.

마리야는 어린시절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과 백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반항아가 됩니다. 엘라는 마리야를 통제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엘라는 마리야의 남편감으로 스웨덴 왕자인 빌헬름을 선택하죠. 하지만 엘라의 선택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온화한 빌헬름이 마리야를 변화시키길 바랬지만, 빌헬름은 마리야를 감당하지 못했죠. 또 전통적으로 스웨덴은 러시아와 관계가 좋지 못했으며, 스웨덴 궁정에서 마리야는 외로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마리야는 자서전에서 엘라가 자신을 결혼해서 집에서 쫓아냈다고 적고 있는데 사실 마리야의 약혼 사진을 보면 그다지 싫어하는 눈치는 아닙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답답한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될 기대도 어느정도 있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결국 마리야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완고한 스웨덴 궁정에서는 놀랄만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야의 시아버지이자 스스로도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구스타프5세는 며느리의 심정을 이해해서 이혼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마리야는 러시아로 돌아와서 재혼했다가, 혁명직후 겨우 탈출해서 영국에 잠시 정착합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한동안 생활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서 죽었습니다.

(마리야 여대공에 대해서 글을 썼었는데 지웠군요..다시 쓰던가 해야겠습니다. 여대공에 대해서 읽으면 이기적인 사람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긴하지만, 여대공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프기도 하답니다. 아하하.)

 

마리아 파블로브나의 부모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알렉산드라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

 

파벨대공과 두번째 부인인 팔레이 공비

그리고 팔레이 공비와의 세아이들

 

마리야의 양부모

파벨대공의 형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그 부인인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마리야의 결혼식때

남편 빌헬름 왕자는 스웨덴의 구스타프5세와 바덴의 빅토리아의 둘째아들이었습니다.

 

스웨덴 왕가의 정식 예복을 입은 마리야

마리야가 하고 있는 보석이 엘라대공비의 보석으로 원래는 엘라대공비의 시어머니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의 보석이었다고 합니다. 이걸 세르게이 대공이 엘라대공비에게 줬고 엘라대공비는 양녀인 마리야 여대공에게 물려줬다고 합니다.

 

아들 레나르트와 남편 빌헬름과 함께 있는 마리야 여대공

이사진을 보면 참 가슴 아픈것이 그전까지 마리야 여대공과 빌헬름의 사진을 보면 웃어도 좀 자연스럽게 웃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사진을 보면 마리야 여대공이 억지로 웃고있는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죠.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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