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스웨덴의 왕자비들도 알고보면 많이 없더라구요...현국왕님 전까지만해도 귀천상혼하면 무조건 왕족지위 박탈,왕위계승권배제였거든요.(현국왕님도 할아버지가 살아있을때 결혼했으면 왕위계승권 박탈이었을꺼라고 하더군요..하지만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왕이 된후에 결혼하신지라...솔직히..실비아 왕비님이 예쁘잖아요..--;;;)미혼이었던 왕자 빼고, 귀천상혼한 왕자 빼고 나니 왕자비들이 몇명없더군요...아하하...
아하하..그래서 또 한번 살펴봅니다..
물론 살아있는분 제외입니다.(결국 현 국왕님 숙모님 되시는 릴리안 왕자비는 제외)
스웨덴 왕가에서 왕자비(princess)칭호를 받을수 있는 사람은 현국왕님 이전까지만 해도 통치왕가의 가족만이 허용됐습니다. 평민과 결혼한 왕자들은 Prince칭호와 왕위계승권리를 박탈당했습니다. ^^* 어쨌든 역시 princess칭호 있는 분들만 다룹니다. (여기서 또 릴리안 왕자비 이야기를 하면..벨틸왕자와 릴리안 왕자비는 현 국왕님께서 정식결혼으로 인정해줘서 Princess칭호를 쓰시는것입니다.)
첫번째는 오스카르1세의 며느리인 테레시아 왕자비입니다.(위키에 사진이 없어요..흑)
작센-알텐부르크의 테레제
스웨덴의 테레시아 왕자비
오스카르1세의 며느리
Teresia Amalia Karolina Josefina Antoinetta (Thérèse) of Saxe-Altenburg
(21 December 1836- 9 November 1914),
오스카르1세의 셋째아들인 아우구스트의 부인인 작센-알텐부르크의 테레제는 작센-알텐부르크의 에두와르트와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아말리에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테레제의 사촌으로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 하노버의 마리 왕비등이 있죠. 테제레의 외할머니는 뮈라의 조카인 앙투와네트 뮈라로 외사촌들 역시 포르투갈의 에스테파니아 왕비,루마니아의 카롤1세등이 있죠.^^*
테레제는 부모를 잃은후 사촌인 하노버의 마리 왕비와 외삼촌인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카를 안톤과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삼촌이 행정관으로 있던 뒤셀도르프에서 남편이 되는 아우구스트왕자를 만납니다.(흑..스웨덴어로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어요... 가지고 있는 책에는 스웨덴어는 외래어를 제외하고는 이중모음이 없어요..라고 적혀있었거든요.ㅠ.ㅠ)
아우구스트 왕자는 스웨덴의 오스카르1세와 요세피나 왕비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둘은 일주일간 만난후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이건 다 프로이센 공주-루이제 공주-를 퇴짜놨던 칼15세때문이었던듯합니다.ㅎㅎㅎ)
스웨덴에서 테레시아라고 불린 테레제는 남편과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냈다고 합니다. 둘은 서로를 이해했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오스카르2세의 며느리인 잉에보리 왕자비입니다.
덴마크의 잉에보리 공주
잉에보리 왕자비
오스카르2세의 며느리
Princess Ingeborg of Denmark
(Ingeborg Charlotta Carolina Frederikke Louise)
( Charlottenlund, Copenhagen, 2 August 1878 - Stockholm, 11 March/12 March 1958)
오스카르2세의 셋째아들인 칼 왕자의 부인인 덴마크의 잉에보리 공주는 덴마크의 프레데릭8세와 루이세 왕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프레데릭8세의 형제 자매들은 유명한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비, 러시아의 마리야 황후,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1세등이있죠. 또 루이세 왕비는 스웨덴의 칼 15세의 딸인 로비사 공주입니다. 잉에보리의 남편이 되는 칼 왕자는 오스카르2세의 아들로 결국 잉에보리와 칼왕자는 오촌간이 됩니다..
잉에보리가 결혼할 당시 북유럽에서는 범 스칸디나비아주의가 퍼져있었다고 합니다. (잉에보리의 어머니 로비사 공주가 결혼할때도 같은 이유로 덴마크에서 환영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잉에보리는 사촌인 칼 왕자와 정략결혼을 합니다. 잉에보리 왕자비는 후에 결혼할 당시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잉에보리 왕자비와 칼 왕자는 매우 행복했고, 둘의 가족은 스웨덴에서 매우 사랑받는 왕족이었다고 합니다. 잉에보리 왕자비는 스웨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왕자비였는데, 매우 상냥하고 명랑한 성품이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잉에보리 왕자비와 칼왕자의 세딸들인 마르가레타, 마르타, 아스트리드는 각각 덴마크의 왕자비, 노르웨이의 왕태자비, 벨기에의 왕비가 됩니다.^^*
노년의 칼 왕자와 잉에보리 왕자비
세번째는 구스타프5세의 며느리인 마르가레타 왕태자비입니다.
코넛의 마거릿
마르가레타 왕태자비
구스타프5세의 며느리
Princess Margaret of Connaught
(Margaret Victoria Charlotte Augusta Norah; later Crown Princess of Sweden;)
( 15 January 1882 – 1 May 1920)
현국왕님의 할머니 되시는 코넛의 마거릿은 남편이 왕이 되기전 사망했습니다. 때문에 Crown Princess였죠. 그래서 그냥 여기에서 다룰까합니다. ^^* 코넛의 마거릿은 코넛공작 아서와 코넛 공작부인 루이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코넛공작 아서는 빅토리아 여왕의 셋째아들로 여왕이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코넛공작부인은 프로이센출신으로 아버지가 빌헬름1세의 조카였습니다.
에드워드7세는 조카들을 유럽 왕가의 왕위계승자와 결혼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마거릿은 포르투갈의 왕태자비로 고려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방문한후,이집트로 여행하던중 그녀는 운명의 왕자님을 만나죠. 스웨덴의 오스카르2세의 손자이자 왕위계승자였던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였죠.
둘은 첫눈에 반했고, 구스타프 아돌프는 영국 대사가 주최한 만찬에서 마거릿에게 청혼했다고 합니다.
마거릿은 스웨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차대전당시 친 독일파였던 시어머니 빅토리아 왕비(바덴의 빅토리아)와도 거북한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뭐 전후에는 좀더 사이가 좋아졌다고 합니다.)
마거릿은 여섯번째 아이를 임신중일때 갑작스럽게 사망했다고 합니다. (왕태자비가 죽었다는 소식에 수상은 왕궁으로 달려가 왕태자의 팔을 붙잡고 무슨일이 일어났냐고 다그쳤을정도라고 합니다.)
코넛가족 사람들
서있는 여자아이가 마거릿입니다.
(흑..패트리샤는 어릴때 무진장 예뻤군요...ㅠ.ㅠ 저 얼굴이 왜 그렇게 무섭게 변했는지..ㅠ.ㅠ)
남편 구스타프6세 아돌프와 함께
네번째는 역시 구스타프5세의 며느리인 마리아 왕자비입니다.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마리아 왕자비
구스타프5세의 며느리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 Великая Княгиня Мария Павловна)
(St. Petersburg, 18 April [O.S. 6 April] 1890 - Konstanz, 13 December 1958)
구스타프5세의 둘째 아들인 빌헬름왕자의 부인인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그의 부인인 알렉산드라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파벨대공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2세의 막내아들이었고, 알렉산드라 대공비는 그리스의 알렉산드라 공주로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1세의 딸이었죠.
마리야 여대공이 두살이 되기전, 알렉산드라 대공비는 아들을 조산하고 사망합니다. 파벨대공은 충격으로 조산한 아들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파벨대공의 형이었던 세르게이 대공은 조카인 드미트리가 살수있도록 돌봤다고 합니다. 부인이 죽은지 10여년간 두 아이들과 살던 파벨 대공은 이혼녀인 정부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짜르는 그를 추방하죠. 파벨의 형인 세르게이 대공 역시 화를 내면서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조카들인 마리야와 드미트리를 입양합니다.
10대소녀였던 마리야에게 이런 상황은 매우 충격적인것이었을것입니다. 또 세르게이 대공의 부인인 엘라대공비와 마리야와는 서로 안맞는 사이였습니다. 처음 같이 살게 되었을때 마리야는 엘라대공비의 차가운 행동에 상처받았고, 이후 엘라가 잘해주려해도 마음을 열지 않게되죠. (반면 드미트리는 엘라대공비를 무척이나 따랐다고합니다.)10대후반이되자 마리야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되죠. 마리야를 통제 할수 없었던 엘라 대공비는 마리야를 결혼시켜서 좀더 안정적이 되길 바랬고, 그때문에 선택한 사람이 바로 스웨덴의 빌헬름 왕자였습니다. 빌헬름 왕자는 온화한 성격으로 엘라 대공비는 빌헬름왕자가 마리야를 잘 다독여주길 바랬던듯합니다.
마리야는 후에 자신의 책에서 엘라가 자신을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 결혼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약혼때쯤의 마리야의 사진을 보면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빌헬름 왕자와 마리야 여대공의 결혼은 실패로 끝납니다. 온화한 성격의 빌헬름 왕자는 마리야 여대공을 감당할수 없었고, 늘 외로움을 탔던 마리야 여대공은 해군으로 바다에 자주 나가있는 남편을 이해 못했죠. 게다가 스웨덴과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늘 불편한 사이였고, 당시 시어머니인 바덴의 빅토리아 역시 마리야에게 친절하지 않았다고합니다.
결국 마리야와 빌헬름 왕자는 이혼을 했고, 마리야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마리야는 재혼을 했지만, 곧 혁명이 일어났고 겨우 러시아에서 빠져나올수 있었습니다. 그후 두번째 남편과도 이혼했으며, 외롭게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살았다고 합니다.
마리야 여대공에 대해서 좀 읽어봤는데, 그녀의 삶에서 진짜 외로움이 느껴졌고, 아마도 어머니의 죽음을 기억할정도의 나이는 아니었겠지만, 아버지와 강제로 헤어진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하지만 결국 "이기적인 사람"내지 "자기자신만 아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된것은 주변인물탓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리야 여대공과 빌헬름 왕자의 결혼식
남편 아들과 함께
하지만 그녀는 곧 이혼하죠.
이 사진을 보면 스웨덴에 처음 왔을때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이 아니라...
억지로 웃는듯한 모습이라서 좀 가슴아프다죠
다섯번째는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며느리였던 시빌라 왕자비입니다.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시빌라
시빌라 왕자비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며느리
현 스웨덴 국왕의 어머니
Princess Sibylla of Sweden, Duchess of Västerbotten
Princess Sibylla of Saxe-Coburg and Gotha;
(Princess Sibylla Calma Maria Alice Bathildis Feodora)
(Schloss Friedenstein, 18 January 1908 – Stockholm, 28 November 1972)
이사진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사진사가 시빌라 왕자비 안티라는 생각이 든다죠..--;;;;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장남인 구스타프 아돌프의 부인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시빌라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인 카를 에두와르트와 그의 부인인 빅토리아 아델하이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시빌라의 아버지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로 여왕의 막내아들인 레오폴드의 유복자였습니다. 여왕은 둘째아들인 앨프러드가 후계자없이 사망하자, 공작령을 잃을것을 우려해서 아서나 레오폴드의 유복자에게 공작령을 물려받으라고 했죠. 아서는 이를 거부했고,결국 레오폴드의 유복자였던 찰스 에드워드에게 공작령이 돌아갑니다. 부인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빅토리아 아델하이트는 빌헬름2세의 황후인 아우구스타 빅토리아 황후의 조카였습니다.
시빌라 왕자비는 후에 시누이가 되는 잉리드 공주의 수선으로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와 만났다고 합니다. 둘이 결혼할 당시 독일은 나치가 대두되었고, 시빌라의 아버지 카를 에두와르트는 나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한 왕족이었습니다. 둘의 결혼은 나치행사로 치루어졌기에, 스웨덴 왕족들 모두는 둘의 결혼식에 참석할수 없었죠.
시빌라 왕자비는 결혼후 딸만 내리 넷을 낳아서 왕위계승자를 낳아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막내이자 현 국왕님이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남편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죠. 다섯아이를 데리고 홀로 살아가는 시빌라 왕자비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던 사람은 시아버지인 구스타프6세 아돌프였다고 합니다.
시빌라 왕자비는 스웨덴에서 무관심한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나치였기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시빌라에 대해서 너무 많은것을 이야기하다보면 나치인 아버지와의 관련성을 빼놓을수 없기때문이겠죠. 또 왕자비는 매우 사진이 잘 안받았는데 덕분에 냉담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결정적으로 스웨덴어를 잘 못했기에 사교생활에도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친한 사람들에 따르면 시빌라 왕자비는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늘 의무에 충실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왕가의 행사 사진에 보면 시빌라 왕자비가 늘참석한 모습이 보입니다. 스웨덴어를 못하는데도 수많은 행사에 참석해서 사람들을 만난다는것 자체가 왕자비 본인에게는 더 큰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합니다.
친정부모, 시부모와 함께 있는 시빌라와 남편 구스타프
여기서 잘보이는 일곱명은 왼쪽에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카를 에두와르트(친정아버지),구스타프6세 아돌프(시아버지,당시 왕태자), 시빌라,구스타프(남편), 약간 멀리보이는 인물이 앨리스 공주(알바니의 앨리스,애쓰론 백작부인, 고모,빅토리아 여왕의 손녀). 루이즈 왕태자비(시어머니,물론 남편의 계모), 빅토리아 아델하이트 (어머니)
남편과 다섯아이들과 함께
시빌라 왕자비가 안고있는 아기가 현 스웨덴 국왕님입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Hitler's Favourite Royal, Prince Charles Edward, Duke of Albany (BBC4,2007)
그림출처
위키피디어&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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