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스웨덴의 루이즈 왕비...1

엘아라 2009. 6. 1. 23:16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블로그질 1주년 기념으로 계획했던 글이 있답니다.

바로 루이즈 왕비에 대한 글을 몇편 써보겠다는것이죠.

문제는 루이즈 왕비에 대한 자료가 제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스웨덴에서의 활동은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디 스웨덴 사이트라도 알면 허접하지만 스웨덴-영어 사전으로 어찌 해볼텐데.... 사이트도 없네요...)

그래서 사실 쓸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죠.

 

...그래서 문득 생각난것이...그냥 자료 있는것까지만 쓰자!!!가 목표가 되었습니다.

1주년 기념으로 루이즈 왕비님 전기를 질러보면 어떨까도 생각했는데...이미 통장에는...아하하..

(진장 블로그에 광고라도 달껄...이라고 쬐금 후회중입니다...아하하...)

 

루이즈의 가족배경이나 어린시절은 언니 앨리스 왕자비의 책에도 나오고, 베아트리스 공주 책에도 좀 나오고 또 바텐베르크가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자료가 좀 있어서 일단 가족배경부터 써볼까합니다.

 

1. 왕가의 후손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1923년 10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는 스웨덴 국왕과 영국 국왕 사이에 한가지 협정이 체결되어 그 협정서에 서로의 대리인들이 서명했다. 이 협정서는 스웨덴 국왕의 장남이며 스카니아 공작이자 스웨덴의 왕태자인 오스카르 프레드릭 빌헬름 올라프 구스타프 아돌프와 영국 출신의 제독의 딸인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의 결혼에 대한 협정서였다.

당시 스웨덴 왕실은 매우 엄격한 왕위계승법을 적용하고 있었고, 통치 왕가 출신의 여성과의 결혼만이 정식 결혼으로 인정되어 왕위계승권을 보장받을수 있었다. 보통 구스타프 또는 구스타프 아돌프로 불리는 스웨덴의 왕태자 역시 자신의 왕위계승권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통치 왕가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야했다. 사실 그는 이미 통치왕가 출신인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 코넛의 마거릿과 한번 결혼했었다. 부인을 병으로 잃은 그는 두번째 부인을 맞이하려하고 있었고, 그 여성이 바로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이었다.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은 통치 왕가 출신이 아니라 영국의 귀족이었다. 협정서의 표현대로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은 "밀퍼드헤이번 후작이며 해군사령관"이 아버지였을뿐으로 협정서에는 작위만 나오지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며칠동안이긴 했지만 귀족도 아닌 단지 "Miss"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양국의 국왕은 둘의 결혼을 통치 왕가의 가족간 결혼으로 인정했다. 왜냐하면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은 태어날때는 "레이디"가 아니라 "프린세스" 였으며 그것도 위대한 영국 여왕의 후손이었다. 협정서에는 레이디 루이즈가 영국 왕가의 일원이라는것을 알리기 위해 루이즈의 모계 혈통을 다 표시하고 있다. 협정서에 따르면 루이즈는 "헤센의 빅토리아 대공녀의 딸이자 영국의 앨리스 공주 전하의 손녀이며 인도의 여제이자 영국과 아일랜드의 여왕인 빅토리아의 증손녀"였다.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와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간의 결혼을 허락한 두 왕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구스타프 아돌프의 아버지)와 영국의 조지5세(루이즈의 오촌 아저씨)

 

 

협정서에 이름이 나오지 않았던 레이디 루이즈의 아버지는 밀퍼드헤이번 후작인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이었다. 그는 태어날때부터 밀퍼드헤이번 후작은 아니었다. 원래는 독일 출신으로 헤센 대공가의 방계가문인 바텐베르크 가문 출신으로 "His Serene Highness Louis of Battenberg"로 태어났다.  바텐베르크 가문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유럽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 독일의 방계 왕가이다. 이 가문은 헤센 대공가의 후손이 귀천상혼하면서 생겨나게 된 가문이었다. 루이즈의 할아버지이자 루이스경의 아버지인 헤센의 알렉산더는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2세와 그의 부인인 바덴의 빌헬미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평민 출신 러시아 백작의 딸과 결혼하면서 그 자녀들이 바텐베르크라는 성을 물려받게 된다.

 

루이즈의 할아버지인 헤센의 알렉산더는 평생동안 두번의 스캔들에 휘말렸다. 첫번째 스캔들은 그가 저지른것이 아니었지만, 두번째는 그 스스로가 선택한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헤센의 알렉산더와 그의 동생이자 후에 러시아의 황후가 되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헤센 대공의 아들이 아니라고 알려져있다. 알렉산더와 동생은 빌헬미네 대공비의 시종 무관의 아이들이고 스캔들을 원치 않았던 루드비히2세는 아이들을 그냥 자기 자식으로 인정했다는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알렉산더와 마리야는 헤센 대공가의 거처가 있는 다름슈타트가 아니라 빌헬미네 대공비가 구입한 다름슈타트에서 좀 떨어진 하일리젠베르크에서 살았다.

비록 전 유럽 궁정이 이 스캔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해도, 알렉산더는 헤센 대공의 아들로 인정 받았기에  헤센대공가의 계승권 역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번째 스캔들로 그의 자녀들은 대공가의 계승권을 얻지 못하게 된다. 아름다웠던 알렉산더의 동생 마리가 러시아의 황태자비가 되자 알렉산더 역시 가장 친한 여동생을 따라 러시아로 갔다. 그는 황태자비의 오빠였고 동시에 매우 뛰어난 군인이었다. 군인을 좋아하는 러시아의 니콜라이1세는 이런 그를 눈여겨 보았고, 러시아 궁정에서 그의 앞날은 탄탄해 보였다. 이 모든 상황은 알렉산더가 아름답고 똑똑한 동생의 시녀를 만나게 되면서 변한다.

율리아 폰 후케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아름답고 무척이나 영리하며 야심또한 컸다고 알려져있다. 율리아는 러시아어, 폴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에 능했고, "영어로 셰익스피어를 읽고,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읽는다"라고 이야기 되는 인물이었다. (이런 그녀의 언어에 대한 재능은 후손들이 물려 받았고, 손녀들 역시 남편 나라의 언어를 매우 빨리 습득하게 된다.) 그녀는 단지 평민 출신으로 나폴레옹 전쟁때 승진한 한 독일 출신의 러시아 장군이자 백작의 딸이었다. 율리아의 아버지 한스 모리츠 폰 후케 장군은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여러나라에서 복무했으며, 러시아의 니콜라이1세 아래에서 일하면서 그의 신임을 얻어 백작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후 니콜라이1세의 형인 콘스탄틴 대공이 폴란드를 통치 중일때 그 역시 폴란드에 있었다. 폴란드에서 러시아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을때, 그는 러시아 측을 지지한 몇안되는 장군중 하나였지만, 이때 목숨을 잃게 되었다. (콘스탄틴 대공의 암살을 막다가 대신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한다.) 니콜라이1세는 반란이 진압된후, 바르샤바로 와서 러시아 측에 섰던 장군들에 대해 보답을 했고, 부모를 잃은 후케가 아이들을 돌봐주게 된다. 이때 율리아는 평민 출신이었음에도 파격적으로 황태자비의 시녀가 될 수 있었다.

헤센의 알렉산더와 율리아 폰 후케는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니콜라이1세는 귀천상혼을 용납하지 않을것이었기에, 알렉산더가 출세가 보장된 러시아 궁정에 남아있기 위해서는 율리아와 헤어져야했다. 사랑하는 이와 출세 사이에 갈등하던 알렉산더는 결국 사랑하는 이를 택했다. 알렉산더는 율리아와 현재 폴란드 지방으로 도망가서 결혼했다. 이에 니콜라이1세는 그를 궁정에서 추방했고, 알렉산더의 러시아 군 경력을 그렇게 끝이 났다. 알렉산더는 율리아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고, 잠시 오스트리아 군으로 복무하기도 했지만, 율리아와 아이들과 함께 고향에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알렉산더의 형이자 헤센의 대공이었던 루드비히3세는 율리아를 위해 바텐베르크 백작부인(또는 여백작,HIH Countess of Battenberg)의 칭호를 부여했다. 바텐베르크 백작부인과 알렉산더는 귀천상혼으로 인해서 자신의 아이들이 불이익 당할것을 엄청나게 걱정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위해 바텐베르크 백작부인의 지위를 바텐베르크 공비 (HSH Princess of Battenberg)로 올렸다. 이에 아이들은 모두 HSH Prince/Princess칭호를 쓸수있게 되었다.

 

 

루이즈의 조부모

헤센의 알렉산더와 바텐베르크 공비 

 

평온한 삶은 살았던 헤센의 알렉산더와 바텐베르크 공비와는 달리 자녀들은 모두 유럽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특히나 "유럽에서 가장 잘생긴 가문"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바텐베르크 가문의 네 아들들은 모두 통치왕가의 딸들과 혼담이 오갔고 이중 셋은 통치 왕가의 딸들과 결혼했다. 장남인 루드비히는 바로 루이즈의 아버지로 헤센 대공의 딸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와 결혼했다. 둘째 아들인 알렉산더는 독일과 러시아에 의해서 불가리아의 통치자로 선출되었다가 후에 반 러시아 정책때문에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서 강제로 퇴위해야만 했다. 그 역시 빅토리아 여왕의 친손녀인 프로이센의 빅토리아(애칭 모레타)와 혼담이 오갔으며, 결혼할 당사자인 모레타와  이 잘생긴 가문을 마음에 들어하던 빅토리아 여왕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프로이센측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고, 그는 헤센의 극장 가수와 귀천상혼했다. 셋째 아들인 하인리히 모리츠는 형인 루드비히와 헤센의 빅토리아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자 형수의 이모인 베아트리스 공주와 결혼했다. 둘의 딸인 에나는 스페인의 왕비가 되었다. (현 스페인 국왕의 할머니) 막내 아들인 프란츠 요제프는 몬테네그로의 안나와 결혼했다. 안나의 자매들은 몬테네그로 자매들로 알려져있는 러시아의 대공비들 (아나스타샤대공비와 밀리챠 대공비)과 이탈리아의 옐레나 왕비였다. 안나의 아버지인 니콜라1세는 프란츠 요제프의 가문이 빅토리아 여왕과 강하게 결속된것때문에 그를 사윗감으로 택했다고 한다. 

 

루이즈의 친가가 헤센 대공가의 방계 가문인 바텐베르크 가문이었던것에 비해 외가는 헤센 대공가문이었다. 루이즈의 어머니 헤센의 빅토리아는 헤센의 대공인 루드비히4세와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딸인 앨리스 공주의 큰딸이었다. 이 때문에 루이즈의 부모는 오촌관계였다. 헤센의 루드비히4세는 백부인 루드비히3세에게 후손이 없자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공은 잘 생긴 그를 마음에 들어했고 앨리스 역시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앨리스와 루드비히는 알버트 공이 죽은 직후 결혼했으며, 앨리스는 과부가 된 어머니를 위해 한동안 영국에 머물렀다고 한다. 앨리스와 루드비히는 서로 잘 맞지 않는 사이였다. 앨리스는 한때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서 "저희는 늘 평행선 같답니다. 일생동안 만날일이 없겠죠."라고 이야기할정도였다. 하지만 둘은 아이들을 끔찍히 사랑했고 아이들이 부부를 묶어주는 수단이었다.

앨리스 대공비는 병으로 일찍 사망했지만 그녀는 헤센에서 사랑받던 대공비였다. 자선사업에 모든것을 헌신했으며, 프로이센과의 전쟁때는 만삭의 몸으로 부상당한 병사를 돌보기도 했다. 이런 대공비를 헤센 사람들은 매우 사랑했다. 또 대공 역시 헤센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용감한 군인이었고, 헤센 병사들에게 신뢰를 얻는 사람이었다.

 

 

 

 

루이즈의 외조부모

헤센의 루드비히4세와 앨리스 대공비

(1860년 약혼때)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가인 헤센 대공가 출신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주들이라는 타이틀은 루이즈의 어머니 빅토리아와 그 형제들에게 득이 되기도 했지만 또 해가 되기도 했다. 루이즈의 이모 둘은 러시아로 시집갔다. 헤센 대공가는 러시아 황실과도 가까운 친척관계였다. 헤센의 빅토리아의 동생인 엘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아름답고 이타적인"엘리자베트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결혼했다. (그와 엘라 역시 오촌관계였다.) 그리고 막내 동생인 알릭스는 러시아의 황제와 결혼해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황후가 되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 중에 태어났던 루이즈의 다른 이모인 이레네는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와 결혼했다. (둘은 사촌간이었다.) 루이즈의 외삼촌인 에른스트 루드비히는 헤센의 대공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압력으로 사촌인 에든버러의 빅토리아 멜리타와 결혼했다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으며 끝내는 외할머니가 죽은후 이혼하게 된다.

 

 

루드비히4세와 앨리스 대공비

그리고 여섯아이들

대공이 안고 있는 아이가 마리로 대공비가 죽기 직전에 사망했습니다.

마리가 죽고 나서 대공비는 일주일후에 사망했습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헤센에 있었지만, 루이즈는 어머니의 외할머니이자 위대한 여왕인 빅토리아 여왕이 있던 영국에서 주로 살았다. 이유는 루이즈의 아버지가 영국의 해군이었기 때문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에서 태어난 첫번째 외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를 매우 아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어머니를 일찍 잃고 집안에서 어머니 역할을 대신 해야했던 외손녀에게 딸에게 편지 보내듯이 늘 편지를 보내서 여러가지 일들을 가르쳤다고 한다.어머니가 없었던 빅토리아 역시 외할머니에게 여러가지 일들을 이야기하는 편지를 보냈다. (빅토리아 여왕의 가족들은 편지쓰는것이 전통이었다. 여왕의 다른 딸인 루이즈는  동생인 아서에게 시간이 없어서 일주일에 편지 한통밖에 못보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또 잘생긴 사람을 민감하게 좋아했다고 알려진 빅토리아 여왕에게 루이즈의 아버지인 루드비히는 너무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여왕은 이 외손주 사위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그와 외손녀에게 자주 도움을 주고는 했다.

 

 

빅토리아 여왕 

 

자료출처

1. TREATY between Great Britain and Sweden for the Marriage of Lady Louise Mountbatten with His Royal Highness Prince Gustaf Adolf, Crown Prince of Sweden. (http://www.geocities.com/dagtho/swe-mt-19231027.html?200622#1)

2.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2000, Hugo Vickers)

3.The Last Princess: The Devoted Life of Queen Victoria's Youngest Daughter (2008. Matthew Dennis)

4.Alexander II : The Last Great Tsar (2006. 라진스키)

5.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