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스웨덴 왕가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이름마저 어려운 가문이 등장합니다. 바로 팔츠-츠바이브뤽켄가문이죠.
이 가문은 바로 비텔스바흐 가문의 분가중 하나였습니다.비텔스바흐가문은 엄청나게 거슬러 올라가는 가문인데, 하여튼 14세기 이전에 바이에른 공작가문과 팔츠가문으로 나뉩니다. 바이에른 공작가문은 이후 쭈욱 바이에른 공작에다가 바이에른 선제후가문이 되는등으로 나갔죠. 반면 팔츠 가문은 팔츠선제후와 기타 다른 분가로 나뉩니다. 이 비텔스바흐 가문들은 이후 바이에른의 국왕이 되는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때 통합됩니다.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때 단일군주가 비텔스바흐가문 전체의 영지를 지배하게 된다고 나오더라구요.^^*)
어쨌든 계보도 정리하다가 머리깨지는줄 알았습니다만....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문에 비하면 새발에 피!!라고 생각중이라죠...ㅎㅎㅎ
팔츠-츠바이브뤽켄 가문이 왕위를 얻게된때는 바사 가문의 마지막 왕이었던 크리스티나 여왕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스타프2세 아돌프가 갑작스럽게 전사한후, 딸인 크리스티나가 왕위에 올랐지만, 귀족의 권력이 강대해졌다고 합니다. 이에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후계자로 고모의 아들인 팔츠-츠바이브뤽켄-클리부르크의 공작이자 궁정백(팔츠그라프)인 카를 구스타프를 후계자로 지명하죠. 그 역시 외삼촌이었던 구스타프2세 아돌프처럼 전쟁군주였다고 합니다. 크리스티나 여왕의 갑작스러운 퇴위로 카를 구스타프가 칼 10세 구스타프로 즉위하게 됩니다. 자 그럼 왕비님들을 살펴볼까요.
헤드비그 엘레노라 왕비
칼10세 구스타프의 왕비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헤드비그 엘레노라
Hedwig Eleonora of Holstein-Gottorp
(23 October 1636 – 24 November 1715)
헤드비그 엘레노라 왕비는 홀슈타인-고토로프의 공작 프레데릭3세와 그의 부인인 작센의 마리 엘리자베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둘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는데 덴마크 왕가의 분가였던 홀슈타인-고토로프는 이때 덴마크에서 독립을 꾀하고 있었고, 덴마크를 견제해야했던 스웨덴으로써는 홀슈타인-고토로프를 도울 명분이 생기는것이었습니다.
헤드비그 엘레노라는 매우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여성으로 궁정사람들은 왕비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정도였다고 합니다. 전쟁군주였기에 늘 궁정에 없었던 남편대신 궁정을 장악했고, 통치했다고 합니다. 이런 그녀의 통치는 손자인 칼 12세가 전쟁에 나섰을때도 역시 영향력을 행사했고, 또 손녀가 여왕으로 즉위하는데도 관여했다고 합니다.
외아들인 칼 11세가 5살 무렵 남편이 사망했기에 그녀는 섭정이 되었고, 더욱더 강하게 정치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녀는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 출신답게 반 덴마크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며느리감으로 고려된 덴마크 공주를 좋아하지 않았고, 아들의 사촌인 헤센-에슈베게의 공녀를 지지했죠. (헤센-에슈베게는 헤센-카셀의 분가입니다. 이 공녀의 아버지때 분가했지만, 아들이 없어서 영지는 다시 헤센-카셀가로 갔습니다.)
헤그비드 엘레노라 왕비는 궁정 최고 어른으로 언제나 궁정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고 전해지지만, 관대한면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들의 약혼자로 스웨덴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던 헤센-에슈베게의 율리아네 공녀가 스캔들을 일으켜 사생아를 낳았을때도 아들과의 약혼을 바로 깨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율리아네 공녀는 스캔들을 피해 보내진 시골에서 두번째 아이를 낳고 결국 아이아버지와 귀천상혼해서 네덜란드에서 삽니다.-0-;;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덴마크 공주가 며느리후보2위라서 그랬을듯합니다.--;;;)
울리카 엘레노라 왕비
칼 11세의 왕비
덴마크의 울리케 엘레노라
Ulrike Eleonora (11 September 1656 – 26 July 1693)
스웨덴에서는 딸인 울리카 엘레노라 여왕과 구별하기 위해 elder를 붙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울리카 엘레노라 왕비는 덴마크의 프레데릭3세와 그의 왕비인 브라운슈바이크-뤼넨부르크의 조피 아말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칼11세의 첫번째 약혼녀였던 헤센-에슈베게의 공녀인 율리아네가 1672년에 스웨덴 궁정을 떠났기에 아마도 그 이후 칼 11세와 약혼했을듯합니다. 하지만 1675-76사이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이때 울리카 엘레노라는 칼 11세와의 약혼을 깨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고, 1680년 칼 11세와 결혼했습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졌었던 울리카 엘레노라는 스웨덴 궁정에서 시어머니에게 완벽하게 가려진 존재였다고 합니다. 헤드비그 엘레노라는 덴마크 공주인 울리카 엘레노라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이미 궁정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그녀는 며느리에게 궁정에서 자릴 내주지 않았죠. 칼 11세는 자신의 부인인 울리카 엘레노라는 그냥 "내 아내"라고 부른 반면, 어머니인 헤드비그 엘레노라는 "The Queen"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외국 사절들 역시 헤드비그 엘레노라를 알현한후에야 울리카 엘레노라를 알현했다고 합니다.
칼11세가 울리카 엘레노라에게 잘 대해줬다는 이야기와 차갑게 대했다는 이야기가 동시에 있다고 합니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마보이"였던 칼 11세가 어머니가 냉대하는 부인에 대해서 대놓고 잘해주지는 못했을듯합니다. 하지만 부인을 두고 연애질을 안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것을 보면 사랑하지 않는것은 아니었을듯합니다. 칼 11세가 죽기전 어머니에게 자신의 부인이 죽은후 늘 불행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울리카 엘레노라는 궁정에서 냉대를 받았지만, 조용히 사는 삶을 좋아했고, 아이들과 남편과 개인적으로 지낸 삶은 행복했다고합니다.
...딸랑 왕비 두명이군요..=-0;; 칼12세는 미혼으로 사망했습니다.
더하기 한명
울리카 엘레노라 여왕
울리카 엘레노라 왕비
Ulrika Eleonora
(23 January 1688 – 24 November 1741)
울리카 엘레노라의 오빠인 칼 12세가 후손없이 사망하자 스웨덴에서는 왕위계승문제가 발생합니다. 국왕의 동생이었던 울리카 엘레노라가 왕위를 주장하고, 동시에 팔츠-츠바이브뤽켄의 계승자인 구스타프 사무엘 레오폴트(칼12세의 육촌)가 왕위를 주장했죠. 결국 울리카 엘레노라는 자신을 비롯한 팔츠-츠바이브뤽켄가문전체가 스웨덴 왕위계승을 할수 없다고 선언했고, 의회가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의회는 울리카 엘레노라를 여왕으로 선출합니다. 이때문에 이후 스웨덴은 왕위를 세습하는것이 아니라 귀족이 주축이된 의회가 선출하는 형식이 됩니다.(이때를 자유주의시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결국 후대의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의 국왕들이 의회와 투쟁을 해서 쿠데타(로비사 울리카 왕비, 구스타프3세)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죠.
울리카 엘레노라는 남편인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를 국왕으로 만들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회는 그녀를 여왕으로 선출했기에 이후 의회의 동의를 얻어 남편인 프리드리히를 프레드릭1세로 만들고 자신은 왕비가 됩니다.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늘 정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0-;;;
그림&자료출처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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