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늘은 왕비가 된 스웨덴 공주님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현 스웨덴 왕가에서 스웨덴 국왕의 딸로 태어난 사람들은 현 국왕님의 두 딸까지 합쳐서 모두 다섯명이었습니다. 그리고 Princess of Sweden로 태어난 사람은 현국왕님의 네 누님을 합쳐서 12명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관심있는 분들은 여섯분이 되네요.^^*
오스카르1세의고명딸인 유셰니 공주, 칼 15세의 외동딸인 로비사 공주,오스카르2세의 손녀이자 칼 왕자의 딸들인 마르가레타, 마르타, 아스트리드 공주,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딸인 잉리드 공주죠
이중에서 세명이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럼 왕비가 된 공주님들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칼 15세의 외동딸이었던 로비사 공주는 덴마크의 프레더릭8세와 결혼해서 덴마크의 루이세 왕비가 되죠.
스웨덴의 로비사 요세피나 유셰니아 공주
덴마크의 루이세 왕비
Queen Louise of Denmark (Swedish: Lovisa Josefina Eugenia)
(Stockholm, 31 October 1851 — Amalienborg Palace, 20 March 1926)
스웨덴의 칼 15세와 네덜란드의 루이제(스웨덴식으로 로비사 왕비)의 딸이었던 로비사는 어린시절 부모의 외동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로비사에게는 남동생이 있었지만, 어릴때 사망해서 칼 15세 부부에게는 로비사가 유일한 아이였죠. 칼 15세는 부인인 로비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딸인 로비사 공주를 무척이나 사랑했기에 부인과 같이 평범한 가족생활을 하는것처럼 꾸미고는 했다고 합니다. 칼 15세는 딸인 로비사를 아꼈고, 그녀가 원하는것을 뭐든지 다 들어주려고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어린시절 로비사는 매우 활기찬 소녀였다고합니다. 남편을 사랑했기에 남편이 원했던 당시 이상적 여성상을 그대로 실행하려했던 로비사 왕비에게는 딸이 너무 '소년'같이 키워지는것에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비사는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을 받았고, 어머니의 수줍음 많은 성격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덴마크 왕태자였던 프레더릭과 정략결혼이 결정되었는데, 프레더릭의 어머니인 루이세 왕비(헤센-카셀의 루이제)는 로비사가 덴마크 왕실과 너무 다른 성격인것을 걱정해서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동딸이었기에 물려받을 재산이 많았고, 덴마크어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잇점이 있었던 로비사는 결국 덴마크 왕태자비가 됩니다.
로비사가 프레더릭과 결혼할 당시 북유럽쪽에서는 범 스칸디나비아 주의가 성행했고, 때문에 같은 스칸디나비아의 공주인 로비사를 덴마크 국민들은 매우 환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우려대로, 덴마크 왕실과 잘 적응하기 힘들어했습니다.결혼초기에 부모 모두 사망했기에, 고아가되었다는 생각으로 매우 소극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결과 로비사는 어머니처럼 공적생활보다는 가정생활을 즐기는것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쾌활하고 가족간의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덴마크 왕가에서 엄격하고 종교적 성격이었던 로비사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죠. 로비사는 아름다운 시누이들과 늘 비교당했으며,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인 알렉산드라 왕비와 마리야 황후는 공적생활을 하지 않으려는 로비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죠. 로비사와 유일하게 가까웠던 시누이는 후에 하노버가로 시집가는 티라였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매우 엄격한 어머니였으며, 어머니처럼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자녀 교육과 자선사업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큰아들인 크리스티앙은 후에 덴마크 국왕이 되었고, 둘째아들인 칼은 노르웨이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중 잉에보리는 로비사의 사촌인 스웨덴의 칼 왕자와 결혼해서 덴마크의 왕자비, 노르웨이의 왕태자비, 벨기에의 왕비의 어머니가 됩니다.
로비사 공주의 부모인 칼 15세와 로비사 왕비
칼 15세는 예쁘지 않은 부인에게 별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비사 왕비는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남편이 원하는 여성이 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고 합니다.
오스카르1세의 가족들
맨 왼쪽이 로비사의 할머니인 요세피나 왕비이고 그옆이 로비사 공주입니다.
(남자들은 좀 비슷하게 그렸는데 여자들은 소피아 왕비빼고는 하나도 안닮았다는...=-=;;)
로비사와 남편 프레더릭8세
프레더릭8세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앙9세의 아들로 동생들이 영국의 왕비, 그리스 국왕,러시아 황후가 되죠.
오스카르2세의 손녀인 아스트리드 공주는 벨기에의 레오폴3세와 결혼해서 벨기에의 왕비가 됩니다.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소피아 로비사 티라 공주
벨기에의 아스트리드 왕비
Astrid, Queen of the Belgians
(born Princess Astrid Sofia Lovisa Thyra of Sweden)
(17 November 1905 - 29 August 1935)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공주는 오스카르2세의 셋째아들인 칼 왕자와 그의부인인 덴마크의 잉에보리 공주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행복한 가족의 막내딸이었던 아스트리드는 부모와 언니 동생과 함께 스웨덴의 아버지 영지에서 자라났습니다.
매우 아름답고 성실한 성품의 공주였던 그녀에 대해서 아버지인 칼 왕자는 '아스트리드는 무척이나 심성이 고왔다. ....그아이는 모두를 사랑했고, 모두들 아스트리드를 사랑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아스트리드는 벨기에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아스트리드와 레오폴간의 결혼은 정략결혼의 성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설공주'내지 후에 '하트의 퀸'이라고 불렸던 아스트리드를 벨기에 국민들은 매우 사랑했다고 합니다. 또 레오폴 역시 아름답고 착한 아내를 매우 사랑했다고 하죠. 둘의 결혼은 동화속의 왕자님과 공주님의 행복한 결혼으로 보였습니다.
레오폴의 아버지였던 알베르1세의 사고사로 레오폴은 젊은나이에 국왕이 됩니다. 아스트리드 역시 왕비가 되죠.
행복했던 이 커플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끝이 납니다. 레오폴3세는 아스트리드 왕비를 태우고 직접 운전하면서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동차 사고가 납니다. 레오폴3세는 크게 다쳤고, 임신중이었던 아스트리드 왕비는 즉사했죠. 국민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고, 부인을 사랑했던 레오폴3세는 넋을 잃게됩니다.
(아스트리드 왕비의 장례식을 보면 깁스를 하고 뺨에 거즈를 붙인 왕이 침통한 표정으로 관뒤를 따라가는걸 볼수있습니다.)
뭐....하지만 레오폴3세는 릴리안 바엘과 귀천상혼하면서 좀 평판이 안좋아집니다. 릴리안 바엘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아스트리드왕비보다는 우아하지 않았고, 또 2차대전때 그녀가 친 독일 성향을 가지고 국왕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떠둘았죠. 하지만 릴리안 바엘과 결혼했을때 아스트리드의 자녀들은 새어머니가 생긴것을 기뻐햇고, 장녀인 조세핀-샤를로트는 릴리안 바엘에게 결혼해서 기쁘며 어머니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릴리안 바엘 역시 아스트리드 왕비의 자녀들에게 무척이나 잘 대해줬다고 합니다.
아스트리드 왕비의 부모인 스웨덴의 칼 왕자와 잉에보리 왕자비
잉에보리 왕자비는 위의 덴마크의 루이세 왕비(로비사 공주)의 딸입니다.
아스트리드 왕비와 레오폴3세
이 사진은 약혼때라고 합니다.
둘은 매우 행복한 부부였다고 합니다.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고명딸인 잉리드 공주는 로비사의 손자인 덴마크의 프레더릭9세와 결혼해서 덴마크 왕비가 됩니다.
스웨덴의 잉리드 빅토리아 소피아 루이즈 마르가레타 공주
덴마크의 잉리드 왕비
Princess Ingrid Victoria Sofia Louise Margareta of Sweden,
(28 March 1910 – 7 November 2000)
남편 프레더릭9세와 함께
...위키에 독사진이 없습니다..ㅠ.ㅠ
스웨덴의 구스타프6세 아돌프와 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코넛의 마거릿의 고명딸입니다. 어릴때부터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공주님이셨다고 합니다. 10살무렵 어머니 마거릿이 사망하고 3년후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잉리드는 큰 충격을 받았고, 새어머니에게 거부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구스타프6세 아돌프가 아이들을 데리고 루이즈가족을 만났을때, 루이즈는 잉리드에 대해서 '매우 화나있다'라고 적고있습니다. 게다가 루이즈와 서로를 알아갈 시간도 없이 잉리드는 외가인 영국에서 교육받았다고 합니다.
잉리드는 덴마크의 왕태자였던 프레더릭과 결혼을 합니다. 늘 사랑받던 공주님 답게 덴마크에서도 사랑받는 왕족이 되죠. 세딸이 태어나고 남편인 프레더릭9세가 왕이 되자 잉리드도 왕비가 되죠. 화목한 가정에 인기있는 덴마크 왕비님이셨다고 합니다.
어린 딸들에게 외할머니는 루이즈 왕비가 아니라 '마거릿 왕태자비'라고 강조했다고 전해질만큼 루이즈왕비와는 친한사이가아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서는 행복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이해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답니다. 잉리드도 역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기때문에 둘을 이해했을꺼라는 생각이든다죠. 실제로 루이즈 왕비의 임종시에 잉리드 왕비가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잉리드 왕비는 현 덴마크 여왕님의 어머니이자, 그리스의 전 국왕인 콘스탄티노스2세의 왕비 앤마리의 어머니기도 합니다.
잉리드의 부모인 구스타프6세 아돌프와 코넛의 마거릿
막 결혼했을때던가 그렇습니다.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가족사진
아빠앞에 있는 소녀가 잉리드입니다. 마거릿이 안고 있는 아기가 잉리드의 동생 벨틸이고,
어머니 옆에 있는 소년이 현 스웨덴 국왕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입니다.
더하기 한명
칼왕자의 딸이었던 마르타 공주는 후에 노르웨이국왕이 되는 올라프 왕태자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올라프가 왕이 되기전에 마르타가 죽었기에 왕비가 되지 못했죠.
스웨덴의 마르타(매르타) 소피아 로비사 다그마르 티라 공주
Princess Märtha Sofia Lovisa Dagmar Thyra of Sweden
(28 March 1901 in Stockholm – 5 April 1954 in Oslo)
아마 매르타로 읽어야하나보군요..ㅠ.ㅠ (아아 스웨덴어 읽는건 너무 어려워요..ㅠ.ㅠ)
역시..-0- 독사진이 없습니다...쿨럭
마르타공주는 앞에서 말한 벨기에의 아스트리드 왕비의 언니입니다.마르타가 태어났을때 스웨덴은 아직 노르웨이와 연합왕국이었기에 태어났을때 마르타는 노르웨이의 공주이기도 했죠. 마르타는 사촌인 노르웨이의 올라프 왕태자와결혼합니다.(마르타의 어머니 잉에보리 왕자비는 노르웨이의 호콘7세-덴마크의 칼왕자-의 동생입니다.)
마르타는 노르웨이에서 무척이나 인기있는 왕태자비가됩니다.2차대전이 일어나기전 남편과 함께 여러곳을 여행했고, 그때 미국에 들러서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그의 부인인 엘레노어 루즈벨트와 친분을 쌓았다고 합니다.
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마르타는 아이들과 함께 독일군을 피해 도망쳐야했습니다. (올라프는 영국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고국인 스웨덴으로 갔습니다만, 중립국을 선언했던 스웨덴은 마르타와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웨덴 내에서도 마르타를 받아들이지 않는것에 말이 많았다고합니다.) 마르타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고 합니다.미국에서 마르타는 노르웨이의 왕태자비로 노르웨이를 위해 여러가지 일을 했다고 합니다.
마르타는 암으로 남편이 국왕이 되기 3년전에 사망합니다.
마르타가 결혼직후 사회사업을 위해 조직한 마르타 왕태자비 기금은 아직까지도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1950년의 마르타와 올라프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 위키 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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