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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의 인판타들...(10)레온의 우라카 : 알폰소 6세의 딸(두번째)

엘아라 2022. 12.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왜이리 바쁘죠..ㅠ.ㅠ

 

레온의 인판타들...(10)레온의 우라카 : 알폰소 6세의 딸(두번째)

 

레온의 우라카Urraca (c. 1080 – 8 March 1126) 레온의 여왕, 후대의 그

 

우라카는 다른 중세여성들처럼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정확히 언제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라카는 1080년대 말에서 1090년대 초에 결혼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상대는 부르고뉴의 레이몽이었습니다.

 

부르고뉴의 레이몽

 

역사적으로 중세시대의 부르고뉴 지방은 주로 두 개의 지역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나는 부르고뉴 공작령이고 또하나는 부르고뉴 백작령입니다. 사실 이 지역은 모두 부르고뉴 지역이었지만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서 두 개의 지역으로 분류되었는데 부르고뉴 공작령은 주로 프랑스 왕가의 방계 가문들이 통치하는 영지였던 반면, 부르고뉴 백작령은 주로 신성로마제국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었습니다. 우라카의 어머니인 부르고뉴의 콘스탄스는 부르고뉴 공작의 딸이었던 반면, 우라카의 남편이 되는 부르고뉴의 레이몽은 부르고뉴 백작의 아들이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우라카의 이복자매로 알폰소 6세와 그의 정부인 히메나 무뇨스(무니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테레사는 우라카의 외사촌이자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1세의 손자인 부르고뉴의 앙리와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또 레이몽의 누이가 우라카의 외사촌이었던 부르고뉴 공작 외드 1세와 결혼하기도 했었습니다.

 

부르고뉴 공작령과 부르고뉴 백작

 

이렇게 부르고뉴 가문들과 연결되는 것은 사실상 레온의 외교적 정책때문이었습니다. 우라카의 아버지인 알폰소 6세는 내분정리하고나서 당연히 영토를 확장하는 정책을 진행합니다. 특히 이슬람 세력이 장악한 지역에 대한 세력을 확장해나가는데 특히 톨레도를 중심으로 점차 더 알-안달루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해나가면서 이베리아 반도내 이슬람 세력은 그의 확장을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결국 알무라비드 제국의 지도자였던 유수프 이븐 타쉬핀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유수프 이븐 타쉬핀은 기독교 군대에 대해서 대항하는 지하드를 위해 군대를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로 옵니다.

10861023일 유수프 이븐 타쉬핀의 군대와 알폰소 6세의 군대가 맞붙게 되는데 결국 알폰소 6세는 이 전투에서 패배했으며 심지어 이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서 평한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슬람측의 승리였지만 유수프 이븐 타쉬핀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서둘러 다시 돌아가야했기에 이베리아 반도쪽에서 세력을 더 확장할 수는 없었습니다. 알폰소 6세는 이 전투의 패배이후 영토를 뺏기진 않았지만 이슬람 세력의 침입에 대비해야했고 이에 많은 기독교 국가에 이교도에 대한 십자군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으며 이에 많은 기독교 영주들이 전투에 참전하기 위해서 오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라카의 남편이 되는 부르고뉴의 레이몽은 물론, 우라카의 사촌이자 자매인 테레사의 남편이 되는 부르고뉴의 앙리도 있었습니다.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발행한 금화

 

부르고뉴의 레이몽은 부르고뉴 백작 기욤 1(빌헬름 1)의 아들로 기욤 1세는 노르망디 공작의 외손자로 정복왕윌리엄과 기욤 1세는 사촌관계이기도 했습니다. 기욤 1세는 매우 강력한 영주로 부르고뉴 백작령은 물론 인근 지역으로 통치 범위를 높였습니다. 특히 부르고뉴 지방에 있던 브장송의 대주교가 강혁한 힘을 얻었고, 기욤의 아들이자 레이몽의 형제였던 기가 후에 이 대주교의 뒤를 잇고 더 나아가서는 결국 교황까지 되면서 가문의 힘을 더 커졌을 것입니다. 레이몽은 알폰소 6세가 십자군을 통한 레콩기스타를 주장하면서 기독교 세계에 도움을 호소했을 때 레온으로 왔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매제이자 알폰소 6세의 처조카였던 부르고뉴 공작 외드 1세가 이끄는 군대에 참여해서 레온에 왔었습니다. 알폰소 6세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을 자신의 딸들과 결혼시켜서 외교적인 발판을 마련하려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라카는 부르고뉴의 레이몽과 결혼했습니다.

 

우라카와 레이몽이 언제 결혼했는지는 애매한데 일단 1093년의 공식 문서에서는 둘은 부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레이몽이 레온으로온 1086년 이후 1093년 사이에 둘은 결혼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역사학자들은 레이몽이 갈리시아의 통치자로 임명되는 1090년 이전에 둘이 결혼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라카는 중세의 다른 여성들처럼 스스로 적극적으로 정치적활동을 하지 않았고 주로 남편의 보호아래 있었고 남편인 레이몽이 정치적 활동을 했었다고 합니다.

 
우라카와 레이몽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