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26) 마치며

엘아라 2022. 8. 3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수선하게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마치는 글을 적어야할것 같아서 써봅니다.

사실 키릴네 집안 여성들을 더 해볼까 싶었는데 그러면 골치아픈 상속문제가 나와서 말입니다.

물론 그게 재미있긴 하지만...뭐랄까 자료를 더 찾아야하거든요.

나중에 자료를 좀 더 모으면 뭐랄까 번외편으로 러시아 가문의 수장 계승문제..이렇게 다뤄볼까도 합니다.

 

그리고 내일(9월 1일)부터 다시 글이 올라갑니다. 한달치 다 써놨습니다. ==V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26) 마치며

 

로마노프 가문은 1613년 17살의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가 러시아의 차르가 되면서 시작된 러시아의 통치 가문이었습니다. 이 가문이 힘을 얻어서 차르 지위를 얻게 된 것은 미하일의 대고모였던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의 존재가 큰 몫으로 작용했습니다. 뇌제라고 불렸던 러시아의 강력한 군주였던 이반 4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가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였으며 이반 4세의 후계자들 역시 아나스타샤가 낳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나스타샤는 무자비한 통치자의 자비로운 아내라는 생각에 잘 어울리는 여성이었으며 어느정도 명망을 얻고 있었던 여성이었습니다. 이것은 러시아가 혼란스러워지고 통치자를 선출하기 어려웠을때 로마노프 가문의 존재를 떠올릴수 있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들 표도르 1세를 낳는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

 

이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은 가문내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통치에도 관여할정도가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치가문에서의 여성의 존재는 좀 달랐는데 특히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여성은 통치 가문을 연결하는 고리로 생각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미하일에게 아들인 알렉세이 외에는 다른 아들들이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하면서 후계자에 대한 걱정이 나왔을때 알렉세이가 잘못될 경우 알렉세이의 누나인 이리나를 결혼시켜서 계승권리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리나 미하일로브나

 

이런 영향력은 18세기 로마노프 가문의 통치시기의 러시아에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차르 알렉세이의 딸이었던 소피야 알렉세예브나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마련했고 동생들의 섭정으로 러시아를 통치했었으며 심지어 동생인 표트르와 권력투쟁을 하게 되자 스스로 통치자가 되려는 시도를 하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표트르 대제 이후 예카테리나 1세, 안나, 옐리자베타, 예카테리나 2세의 네명의 여제가 나올수 있었던 것 역시 가문내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일것입니다. 

 

예카테리나 1세, 황후시절, 황후로 처음으로 여제가 된 인물로 남편인 표트르 1세와 함께 대관했고 이후 후계자 문제가 발생하자 대관한 황후였기에 제위에 오를 명분이 주어졌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여성들이 제위에 오를수 있는 선례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파벨 1세 이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의 정치적 역할이 축소되게 됩니다. 파벨 1세는 어머니인 예카테리나 2세와 갈등관계였으며 아버지인 표트르 3세에 대해서 더욱더 호의적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사실상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치적 세력과 정적관계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물론 파벨이 어머니 생존시기에 어머니에 대항할수 없었지만 어머니 사후에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그의 행동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의 상속권리를 배제한것입니다. 사실 파벨은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 출신으로 "살리카법"을 가문의 상속법으로 따를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문이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은 덴마크 왕가의 방계 가문이었으며 덴마크 왕가 역시 여성의 후손으로 왕위를 얻었으며 파벨의 아버지인 표트르 3세 역시 어머니가 표트르 대제의 딸이었기에 러시아의 황위를 이을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가문의 상속법으로 살리카법을 따르고 있다고 할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여성의 왕위계승을 배제한 것은 어쩌면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제위에 올랐던 것 자체가 러시아에서 여성의 계승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클것입니다. 

 

표트르 3세와 아내인 예카테리나 2세, 대공&대공비시절

 

파벨 1세 이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은 정치적인 역할을 제한당하게 됩니다. 물론 황후들은 파벨 1세 이후에도 한동안 황제의 정치적 파트너로 여전히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면서 이런 역할마저 완전히 배제하게 됩니다. 강력한 보수주의자였던 니콜라이 1세는 황제의 권한을 황제에게 집중했으며 황제의 말이 러시아에서 절대적으로 작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황제 외의 모든 사람의 권리가 한단계 아래있다고 인식하게 만들었으며 이전에 황제의 정치적 파트너로 어느정도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황후의 정치적 영향력 역시 축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니콜라이 1세의 황후였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는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적이었고 정치적 행동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알려져있으며 니콜라이 1세의 며느리이자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였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역시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것은 이후 로마노프 가문으로 시집온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이전시대보다 훨씬 약했을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영향력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파벨 1세의 며느리로 니콜라이 1세의 동생인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의 부인이었던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는 황실 가족들에게 매우 영향력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도 어느정도 있었다고 알려져있었으며 시조카였던 알렉산드르 2세도 숙모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2세의 장남이 죽고 황태자를 선택해야했을때 옐레나 대공비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둘째아들인 알렉산드르가 아니라 셋째아들인 블라디미르를 황태자로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황제는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니콜라이 1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그리고 둘의 아이들, 중세시대의 모습으로 묘사한 작품,

 

로마노프 가문의 딸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파벨 1세의 딸들은 로마노프 가문의 이전 시대처럼 어느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이들은 모두 외국으로 시집갔으며 이때문에 러시아내 영향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니콜라이 1세의 딸들의 경우 대부분 딸들을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지 않게 키웠던 부모의 영향력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이후 로마노프 가문의 여대공들에게도 이어지게 됩니다. 

 

파벨 1세와 아내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 그리고 둘의 자녀들

 

20세기 로마노프 가문은 러시아에서 통치 가문의 지위를 상실하고 쫓겨났습니다. 그냥 쫓겨난것이 아니라 혁명을 거쳤고 이때문에 가문 사람들은 매우 비극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혁명이 일어나면서 상징성이 너무 강했던 황제와 그 가족은 물론 다른 가족들 역시 살해당합니다. 특히 여성들중 상징성이 강한 사람들도 살해에 대상이었는데 여기에는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내인 알렉산드라 황후와 네명의 딸들인 올가, 타티야나,마리야,아나스타샤가 포함되었습니다. 게다가 황제의 숙모이자 황후의 언니였던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역시 모스크바에서 존경받는 수녀로 살고 있었기에 살해대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들 외의 다른 여성들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무사히 떠날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그렇게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많은 망명왕족들이 직면한 경제적 문제를 경험해야했으며 이것은 결국 이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던것중 하나입니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그리고 둘의 자녀들

 

 

현재 로마노프 가문은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상속 원칙중 하나가 바로 귀천상혼을 금지하는 것이었는데 망명 왕족들의 경우 귀천상혼하지 않기가 너무 힘들었고 결국 가문의 상속원칙을 지킨 모든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고작 망한 왕가의 수장자리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툼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성 상속배제와 귀천상혼배제라는 두가지 원칙이 깨지면서 로마노프 가문 여성들의 존재는 다시 한번 중요해지게 됩니다. 물론 그들만의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