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25) 키라 키릴로브나 : 키릴 대공의 딸(세번째)

엘아라 2022. 8. 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키라이야기를 미리 써놔서 쫘악 올릴려고 이번주에 다씁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25) 키라 키릴로브나 : 키릴 대공의 딸(세번째)

 

 

러시아의 키라 키릴로브나

Grand Duchess Kira Kirillovna of Russia 

(9 May 1909 – 8 September 1967) 

 

키라는 성장하면서 남편감을 찾는데 좀 애매한 상황이 됩니다. 키라의 아버지는 러시아의 황제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또 정당한 계승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러시아는 이미 공화국이 되었으며 또 재산 역시 많이 없었기에 키라는 남편감을 찾는데 힘이 들게 됩니다.

 

딸 키라와 아들 블라디미르와 함게 있는 더키와 키릴


키라는 친척었던 알폰소 13세의 아들인 아스투리아스 공 알폰소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아스투리아스 공은 키라에게 흥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또 키라는 이모였던 루마니아의 마리 왕비가 있던 루마니아를 자주 방문했었고 여기서 루마니아 출신이었던 콘스탄틴 슈초 공을 만났고 그를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촌이었던 카롤 2세는 정치적 문제로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결국 혼담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키라는 20대 후반이 되도록 혼담이 성사되지 않았으며 특히 1936년 어머니인 더키가 사망하면서 아버지와 동생을 돌봐야하는 의무까지 맡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키라는 남편감을 찾아냅니다. 1938년 키라는 프로이센의 루이 페르디난트와 결혼합니다.

 

키라와 루이 페르디난트


키라의 남편이 된 루이 페르디난트는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의 손자이자 황태자 빌헬름과 그의 아내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체칠리의 둘째아들이었습니다. 사실 루이 페르디난트는 형인 빌헬름이 있었기에 자신이 가문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공화국이 되면서 왕족으로서의 의무를 하지 않아도 되자, 그는 세계를 여행하고 또 미국에서 생활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형인 빌헬름이 귀천상혼하면서 결국 그가 가문을 상속받아야 해서 다시 독일로 돌아왔었습니다. 아마도 귀천상혼한 형 때문에 루이 페르디난트는 가문에서 인정할만한 통치 가문 출신의 여성을 찾아야했고 키라가 적당한 신붓감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만약 독일과 러시아가 공화국이 되지 않았다면 루이 페르디난트는 독일 황제가 될 사람이었고, 키라는 러시아의 여대공이었기에 둘의 결혼은 신분상으로 어울리는 결혼이기도 했습니다.키라는 남편인 루이 페르디난트와의 사이에서 4남 3녀를 낳았습니다. 

 

형 빌헬름과 함께 있는 루이 페르디난트(서있는쪽이 루이 페르디난트인듯합니다.)


키라의 남편인 루이 페르디난트는 독일의 항공산업에 참여했지만 히틀러는 왕족들이 나서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결국 이것은 루이 페르디난트가 다른 가문 사람들처럼 나치와 거리를 두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키라는 2차대전후 자신이 아나스타샤 여대공이라고 주장하는 안나 앤더슨의 소송에 관여하게 됩니다. 키라의 시어머니였던 체칠리 황태자비는 안나 앤더슨이 아나스타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키라는 어린시절 아나스타샤와 만났었는데, 키라는 안나 앤더슨이 아나스타샤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아나스타샤 역시 키라처럼 영국인 보모가 키웠으며 이 때문에 아나스타샤 역시 영어와 영국 문화에 익숙했었는데 안나 앤더슨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나 앤더슨에 대해서는 가족들의 의견이 갈렸는데 이를테면 키라의 숙부였던 안드레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은 안나 앤더슨이 아나스타샤라고 생각했던 반면 나머지 가족들 특히 키라의 부모는 안나 앤더슨이 아나스타샤라고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키라와 루이 페르디난트


키라는 나이가 들면서 살이찌고 고혈압등 건강이 나빠지게 됩니다. 아마도 이것은 어머니 더키가 그랬던것처럼 가족력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하지만 키라는 식단을 조절하는 이런 삶에 대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습니다. 키라는 자식들 문제에 대해서도 속을 썩는데 장남인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귀천상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자 매우 실망스러워했었다고 합니다. 

 

1962년  키라와 루이 페르디난트 돌아보고 있는 가운데 두사람입니다. 멀리에 필립공도 보이는군요.


키라는 1964년 동생인 블라디미르를 방문하는 동안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