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마치는 글을 써야하는데 왜 이럴때마다 머리가 텅텅 비는 것일까요 ㅠ.ㅠ
아라곤의 인판타들...(49) 마치며
아라곤 왕국은 나바라 왕국에서 독립한 지역으로 사실 나바라 왕국에 비해서 초기에는 힘이 약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라곤 왕국은 성장해가면서 나바라 왕국보다 힘이 더 커지게 되는데 특히 페트로닐라가 바르셀로나 백작이었던 라몬 베렌게 4세와 결혼하면서 바르셀로나 백작의 영지를 얻게 되면서 힘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라곤은 카스티야와 더불어 이베리아 반도 내의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때문에 아라곤의 인판타들은 유럽의 핵심 가문들로 시집가게 됩니다. 특히 프랑스 왕가나 프랑스 내 강력한 영주들은 프랑스 남부지역과 프로방스 백작 가문까지도 연결되는 아라곤 왕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렇기에 아라곤의 인판타들은 프랑스쪽과 통혼을 자주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이나 카스티야와도 통혼을 자주했는데 이 역시 이베리아 반도 내의 갈등 상황에서 서로 연합을 하거나 평화를 위해서 딸들이 시집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아라곤의 국왕 페드로 3세는 아내인 시칠리아의 콘스탄차의 권리를 통해서 시칠리아 섬의 통치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라곤 왕가는 아라곤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칠리아와 아라곤 사이의 동맹 역시 중요하게 여겨졌기에 역시나 아라곤과 시칠리아 왕국 간의 통혼 역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또 시칠리아 왕국은 지중해에 중요한 세력중 하나였기에 동유럽쪽이나 이탈리아쪽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독일쪽 가문들 역시 통혼을 원하기도 했습니다.
아라곤의 인판타들 역시 다른 이베리아 반도의 왕족 여성들처럼 왕위계승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아라곤의 인판타들이 매우 중요한 원인중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아라곤의 국왕 마르틴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남성 직계 후손들만큼이나 인판타들의 후손들 역시 왕위계승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며 결국 아라곤의 페드로 4세의 딸이자 카스티야의 왕비였던 레오노르의 아들인 카스티야의 인판테 페르난도가 아라곤의 왕위를 얻게 됩니다.
페르난도 1세의 자녀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왕가에 모두 연결고리가 있었습니다. 페르난도 1세의 딸들은 각각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의 왕비가 되었으며 아들인 후안은 나바라의 여왕과 결혼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이것은 페르난도 1세의 아들들인 아라곤의 알폰소 5세와 그의 동생인 후안 2세가 모두 야심을 가지게 된 원인이 되었을 것이며, 결국 후안 2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페르난도는 카스티야의 후계자가 된 이사벨과 결혼했고 둘의 결혼을 통해서 결국 이베리아 반도의 거의 대부분을 통일한 에스파냐를 형성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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