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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18)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의 부인 (네번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헤센의 대공비
러시아의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Princess Victoria Melita of Saxe-Coburg and Gotha
Grand Duchess Victoria Feodorovna of Russia
(25 November 1876 – 2 March 1936)
더키와 에르니는 서로 맞지 않았는데 더키는 가정적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르니는 더키가 원하는 행복을 주지 못했습니다. 에르니는 헤센의 통치 군주였으며 의무가 있었고 아내 역시 통치 군주의 아내로 의무를 수행하길 원했었습니다. 하지만 더키는 의무에 얽매이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공허하게 지냈으며 싸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결혼 다음해에 딸인 엘리자베트가 태어나는데 딸의 존재는 부부사이에 불화를 더 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엘리자베트는 어머니인 더키를 매우 닮은 아이였는데 에르니는 딸을 너무나 사랑했으며 모든 애정을 퍼부었습니다. 이것은 더키에게 매우 좌절감을 주는 것으로 자신과 닮을 딸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퍼붓는 남편이 정작 자신이 원하는 애정을 주지 않는 것에 실망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좌절감은 딸의 애정을 두고 남편과 경쟁하기까지 했지만 엘리자베트는 늘 아버지를 더 좋아했고 이것은 다시 한번 더키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더키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했으며 남편과 헤어지길 원합니다. 하지만 더키의 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왕은 증손녀인 엘리자베트를 매우 예뻐했으며, 당시 부모가 이혼하는 것은 아이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기에 엘리자베트를 위해서 더키와 에르니가 참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하자, 더키와 에르니를 묶어둘 사람이 더이상 없었습니다. 더키는 딸에게 작별인사를 한뒤 친정인 코부르크로 돌아갔고 이혼을 요구합니다. 더키에 대해서 어머니인 마리야 여대공은 매우 지지했었는데 자신 역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으며 그 불행한 결혼 생활을 청산한 딸에 대해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혼 소송을 하는 동안 에르니는 스캔들을 피해 도망갔으며 더키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했습니다. 게다가 더키가 먼저 이혼을 요구했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키를 비난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혼에 대해서는 남편이었던 에르니나 아니면 에르니의 누나로 에르니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헤센의 빅토리아 모두 이혼을 한것이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1901년 말 에르니와 더키는 이혼했으며 딸인 엘리자베트는 둘이 반년씩 양육하고, 성인이 된후 함께 살 사람을 선택하도록 했었습니다.
더키는 이혼 전 러시아에 갔다가 키릴대공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어린시절의 감정이 다시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키릴 대공 역시 더키에게 감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키가 이혼한 뒤에도 둘은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단 정교회에서는 사촌간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둘이 결혼하기 위해서는 황제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에르니의 여동생이었던 알렉산드라 황후는 이혼을 요구한 더키의 행동을 절대 용납할수 없었으며 이때문에 둘이 정식으로 결혼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더키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뤄질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딸인 엘리자베트의 양육에 집중하려했습니다만 엘리자베트는 아버지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어머니와 살러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린 엘리자베트는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이해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딸과의 관계도 1903년 끝나버립니다. 엘리자베트는 장티푸스에 걸려서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더키는 딸의 임종조차도 지키지 못했으며 딸의 장례식에만 참석할수 있었습니다.
딸이 죽은뒤 더키의 상황은 더욱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더키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질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황실에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황제는 키릴 대공을 멀리 극동지방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키릴 대공의 어머니인 미헨 대공비는 키릴 대공에게 다른 신붓감을 찾고 더키는 정부로 함께 살라고 이야기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1904년 더키는 매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딸은 죽었고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전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키가 사랑하는 사람은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