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네개로 끝내고 싶은데 될까 싶네요 =-= 하여튼 다섯개로끝낼수는 있을 겁니다. 쿨럭
더키에 대해서 읽은 것이 많으니 쓸것이 많네요...=-=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17)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의 부인 (세번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헤센의 대공비
러시아의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Princess Victoria Melita of Saxe-Coburg and Gotha
Grand Duchess Victoria Feodorovna of Russia
(25 November 1876 – 2 March 1936)
더키의 언니인 마리가 결혼한 1893년 더키는 몰타에서 코부르크로 이사가게 됩니다. 왜냐면 더키의 아버지인 앨프러드가 백부의 뒤를 이어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더키의 삶은 코부르크에서 정착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상황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바로 결혼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더키의 언니인 마리의 결혼에 대해서 빅토리아 여왕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여왕 역시 조지와 마리가 결혼하길 원했었지만 결국 둘째 며느리의 독단적 결정으로 마리가 루마니아로 시집가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더키의 아버지 역시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키의 결혼에 대해서는 여왕과 앨프러드기 관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왕은 이미 더키의 남편감을 생각해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왕의 외손자로 에르니라는 애칭의 헤센의 대공 에른스트 루드비히였습니다.
이때 더키는 겨우 10대 중반이었으며 결혼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더키는 사실 이전에 호감을 가진 남자를 만나기는 했었습니다. 1891년 더키는 어머니와 함께 외숙모인 알렉산드라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의 장례식에 참석했었습니다. 여기에서 더키는 외가쪽 사촌이었던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도 키릴 대공에 대한 감정은 호감 정도였을테지만, 어머니인 마리야 여대공은 딸들이 친정 식구들과 엮이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일단 여대공은 러시아 정교회를 믿었는데 정교회에서는 사촌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마리야는 딸이 성공회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러시아 사촌과 결혼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당시 러시아 궁정에서는 황제와 대공들이 정부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마리야의 아버지인 황제는 대놓고 딸같은 정부와 함께 살정도였고 아마도 이런 상황에 상처를 받았던 마리야는 자신의 딸들이 이런 경험을 하기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니인 마리가 결혼하고 나서, 빅토리아 여왕이 더키의 결혼에 관여하자 더키의 혼담이 빨리 진행됩니다. 사실 에른스트 루드비히가 빨리 결혼해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에른스트 루드비히의 아버지였던 헤센의 루드비히 4세는 1892년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23살의 젊은 에른스트 루드비히가 헤센의 대공이 됩니다. 에른스트 루드비히가 대공이 되었을때 미혼이었으며 당연히 군주로 아내가 필요했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딸인 앨리스가 죽은뒤 외손자외손녀들인 헤센 대공 가문의 아이들의 양육에 관여했었으며 당연히 외손자의 결혼에도 관여했습니다. 여왕은 외손자인 에르니와 친손녀인 더키가 잘 어울릴것이라 여겼으며 결혼을 추진합니다.
이 결혼에 대해서 더키의 어머니인 마리야는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가장 큰이유는 싫은 영국 왕가와 연결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르니는 독일의 군주였으며 에르니와 더키가 결혼한다면 더키는 다름슈타트에서 사는 것으로 영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헤센 대공가문은 마리야 여대공의 외가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결국 마리야 여대공 역시 딸의 결혼을 허락하게 됩니다.
더키와 에르니는 서로 연애감정은 없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척관계였을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이렇게 결혼을 추진하자 둘은 분위기에 휩쓸리게 됩니다. 서로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1894년 4월 19일 코부르크에서 둘은 결혼합니다. 이 결혼식때 더키의 러시아 친척들 역시 참석했었는데 이때 에르니의 여동생인 알릭스와 더키의 사촌이었던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약혼이 공식 선언되었습니다.
더키와 에르니는 결혼했지만 곧 둘은 서로가 맞지 않는 것을 찾았으며 서로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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