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19)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의 부인 (다섯번째)

엘아라 2022. 7.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무래도 여섯개까지 써야할듯하네요 흑

....이건 읽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이런겁니다. 새로 읽은건 없는데 예전에 더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자료를 좀 많이 읽었었습니다. ...사실 러일전쟁이야기를 읽어야해서 좀 힘들었습니다 ㅠ.ㅠ 뤼순항이 포트아서더라구요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19)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의 부인 (다섯번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헤센의 대공비

러시아의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Princess Victoria Melita of Saxe-Coburg and Gotha

Grand Duchess Victoria Feodorovna of Russia 

(25 November 1876 – 2 March 1936) 

 

 

러일 전쟁에 참전한 키릴 대공은 뤼순항에서 그의 배가 기뢰에 침몰하게 됩니다. 그의 배에 탔던 지휘관이 모두 죽었으며 키릴도 거의 죽을뻔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사모하는 여성에 대해서 생각할정도로 더키에 대해서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자마자 그는 바로 더키를 만나러 갑니다. 더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뻔 했었기에 그와 함께 하길 원하게 됩니다. 

 

페트로파블스크의 침몰, 키릴은 여기서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결국 키릴과 더키는 황제의 허락없이 1905년 결혼해버립니다. 키릴의 결혼은 러시아 황실에서 큰 문제가 됩니다. 니콜라이 2세는 키릴의 결혼에 대해서 매우 화를 냈으며 그의 지위를 박탈하고 러시아에서 추방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키릴의 아버지였던 블라디미르 대공은 이에 대해서 황제에게 대놓고 화를 낼정도였다고 합니다. 키릴과 더키는 유럽의 여러지역에서 거주합니다. 망명생활중인 1907년에는 첫딸인 마리야가 태어났으며 1909년에는 둘째딸인 키라가 태어났습니다. 더키와 키릴 모두 아들을 원했었지만 두 딸이 태어난 것에 살짝 실망했다고 합니다.

 

더키와 키릴, 결혼 한 뒤

 

더키와 키릴의 망명생활은 1910년 끝나게 됩니다. .니콜라이 2세는 아들인 알렉세이가 혈우병을 앓고 있었고 동생인 미하일 대공은 귀천상혼 해버렸기에 후계자 문제가 여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까운 계승권리를 가진 키릴을 추방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고 그래서  키릴과 더키의 결혼을 인정해주고 키릴을 복권해주게 됩니다. 더키는 러시아의 대공비로 인정받았고 빅토리아 표도로브나라는 러시아식 이름을 받게 됩니다. 

 

러시아로 온 더키는 이제 새로운 조국이 된 러시아에 대해서 열광적으로 활동합니다. 게다가 시어머니인 미헨 대공비는 러시아 사교계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이런 미헨 대공비는 당연히 자신의 며느리인 더키를 러시아 사교계에 빨리 정착할수 있도록 도왔으며 더키 역시 러시아 사교계에서 중심인물이 됩니다.

 

러시아 궁정예복을 입고 두 딸과 함께 있는 더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더키는 다른 황족들처럼 러시아의 혼란한 상황에 휘말리게 됩니다. 더키의 언니인 마리는 루마니아의 왕비였으며 루마니아는 러시아 이전에 독일의 완충지대이기도 했기에 사실 중요한 동맹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키는 언니인 마리를 만나러가기까지 했었습니다. 더키는 황후에 반대하는 다른 황족들처럼 라스푸틴을 싫어했으며 라스푸틴이 살해당한뒤 드미트리 대공의 사면을 요구하는 편지에 서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상황은 점차 더 어려워졌으며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문에 미헨대공비와 키릴대공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은 인기 없는 황제를 퇴위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키릴 대공에게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2월 혁명이후 황제는 퇴위했고 남아있던 모든 황족들은 억류당하게 됩니다. 

 

키릴 대공과 더키

 

더키의 남편인 키릴은 황족중에 가장 먼저 황제가 아닌 두마에 충성을 맹세한 인물이었으며 이것은 후에 황실 가족들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이때 더키는 임신중이었고 아마도 키릴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고 그때문에 이런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키릴과 더키 그리고 자녀들 역시 억류당해있었으며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더키는 곧 막내아이를 낳을 예정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러시아를 떠나려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키릴은 러시아의 중요한 황위계승자였으며 더키가 낳을 아이가 아들이라면 그 역시 황위계승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러시아를 아주 떠날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선택한 곳은 핀란드였습니다. 핀란드는 독립성을 인정받긴했지만 러시아 황제의 통치를 받던 곳이었기에 핀란드에서 지내는 것이 최선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전에 친하게 지냈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1917년 6월 핀란드로 갈수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