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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4)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

엘아라 2022. 1.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외가를 해야하는데 뭐랄까 여긴 왠지 다 한것같은 느낌이...=-=;;;

 

[새해특집]통치자이길 원했던 왕비 : 스웨덴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4)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과 영국 

 

루이제 울리케의 어머니는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였습니다. 조피 도로테아의 아버지는 영국의 조지 1세였지만, 조지 도로테아의 친가와 외가 모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 프로이센의 조피 도로테아 왕비,로비사 울리카의 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은 벨프 가문의 분가중 하나였습니다. 벨프 가문은 매우 오래된 유럽의 왕가중 하나였으며 가문의 첫번째 인물은 10세기경 밀라노의 통치자였습니다. 후에 11세기 무렵 이 가문은 두개의 분가로 나뉘는데 이탈리아쪽의 분가는 에스테라는 성으로 남았으며 독일쪽 분가가 벨프라는 성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벨프 가문은 12세기와 13세기 독일내 최고의 가문이 되었으며 황제의 가문이었던 호엔슈타우펜가문과 대적할만큼이나 대단해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13세기가 되면서 가문에서는 유일하게 오토 1세 외에는 남성후손이 없었으며 결국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와 화해하면서 오토 1세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이 되면서 이제 가문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으로 불리게 됩니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오토 1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은 두개의 분가로 분리되는데 뤼네부르크 가문과 볼펜뷔텔 가문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 두개의 가문은 계속해서 여러 분가로 나뉘었으며 영지가 나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가문 자체는 힘이 매우 약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가문은 17세기가 되면서 분가들 사이에 통합이 이루어졌으며 다시 뤼네부르크와 볼펜뷔텔을 중심으로 하는 두개의 분가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두개의 분가는 제국내에서 세력을 확장하게 됩니다. 재미난 것은 이때 뤼네부르크 가문과 볼펜뷔텔 가문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겼으며 이것은 결국 두 가문이 서로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특히 뤼네부르크 가문이 선제후지위를 얻게 되자 볼펜뷔텔 가문은 황제에 대한 충성을 철회하고 프랑스를 지지하는 등의 일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황제로부터 선제후 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공식적으로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이지만 선제후령의 중심도시가 하노버였기에 일반적으로 하노버의 선제후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들이었던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아버지로부터 하노버 선제후 지위를 물려받았을뿐만 아니라 가문의 협정에 따라서 가문의 영지 모두를 상속받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는 어머니인 팔츠의 조피를 통해서 영국 왕위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영국의 조지 1세가 됩니다. 이 조지 1세가 바로 루이제 울리케의 외할아버지였습니다.

 

하노버의 게오르그 루드비히, 하노버의 선제후, 영국의 조지 1세, 로비사 울리카의 외할아버지

 

루이제 울리케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였던 영국의 조지 1세와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는 사촌관계였습니다만 둘의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둘은 유럽에서 큰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이혼하게 되는데 조지 1세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들인 조지 2세와 조피 도로테아에게 어머니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했었습니다. 게다가 루이제 울리케의 어머니인 조피 도로테아는 아버지가 국왕이 되기전 결혼했으며 이때문에 그녀는 영국에서 살지도 않았으며 영국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