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98) 몬테네그로의 밀리카 :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부인

엘아라 2021. 12. 1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이거 대충 표트르 대공비랑 그 딸들만 다 하면 될것같은데 여긴 뭐 그리 스캔들이 없어서 무난한듯하네요 =-=

날로 먹는것 좋아합니다.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98) 몬테네그로의 밀리카 :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부인

 

몬테네그로의 밀리카

러시아의 밀리차 니콜라예브나 대공비

Princess Milica Petrović-Njegoš of Montenegro,

 Grand Duchess Militza Nikolaevna of Russia,

(14 July 1866 – 5 September 1951)

 

 

러시아식으로 밀리차 니콜라예브나 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몬테네그로의 밀리카는 몬테네그로의 군주로 후에 몬테네그로의 국왕이 되는 니콜라 1세와 그의 아내인 밀리카 부코비치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몬테네그로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신정국가로 통치 군주가 주교였던 나라였습니다. 이곳은 오래도록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을 쟁취할때 그 중심에 밀리차의 집안이었던 페트로비치-네그로시 가문이 있었습니다. 가문에서  주교 지위를 얻으면서 통치 가문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밀리카의 종조부가 세속화하면서 상속권리가 가문에 이어졌으며 밀리카의 아버지가 숙부의 뒤를 이어서 몬테네그로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몬테네그로의 니콜라 1세와 아내인 밀리카 그리고 둘의 자녀들과 후손들

 

몬테네그로는 많은 발칸 반도내 국가처럼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했었으며 이때문에 밀리카와 자매들은 러시아에 보내져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연결고리는 자매들의 결혼에 매우 중요한 이익이 됩니다. 밀리카는 1889년 러시아의 대공이었던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결혼합니다.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니콜라이 1세의 손자이자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둘째아들이었습니다.몬테네그로는 매우 작은 나라였으며 이때문에 비록 방계 가문 출신이라도 러시아 대공과 결혼하는 것은 매우 큰 이익이었습니다. 밀리카는 사교계에서 몬테네그로의 흑진주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여동생인 아나스타샤와 함께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이었으며 이때문에 표트르 대공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을 것입니다. 

 

표트르 대공과 밀리카의 결혼식

 

밀리카의 남편인 표트르 대공은 매우 조용한 성격으로 과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형인 니콜라샤 대공이 군인으로 뛰어났던 반면 표트르 대공은 군인이 되는것에 적합하지 않은 성격이었지만 의무로 군인이 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밀리카의 활발한 사교활동과는 대조적으로 표트르 대공은 조용한 성격으로 비춰졌습니다만 아마도 표트르 대공은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역시 여러 사람들과 교류했었기에 밀리카와 비슷한 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대공

 

밀리카와 표트르 대공은 신비주의에 심취했었는데 밀리카와 동생인 아나스타샤는 황후인 알렉산드라에게 신비주의를 전파했을뿐만 아니라 특히 밀리카는 라스푸틴을 황후에게 소개시켜준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황실에서 미워했다고...) 밀리카와 아나스탸사는 황후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몬테네그로에 도움을 주려했었다고 합니다만 정치 상황은 두 자매에게 나쁘게 돌아갔으며 황실에서 둘을 미워했을뿐만 아니라 라스푸틴과의 관계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밀리카의 제부이자 시아주버니였던 니콜라샤 대공이 라스푸틴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밀리카

 

밀리카는 표트르 대공과 주로 크림반도에서 머물렀었는데 표트르 대공은 폐결핵을 앓았고 이때문에 따뜻한 곳에서 지내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이후 밀리카와 가족들은 황태후와 함께 러시아를 떠났었습니다.

러시아를 떠난 이후 부부와 자녀들은 프랑스에서 살았습니다만, 1931년 남편인 표트르 대공이 죽은 뒤 밀리카는 자녀들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갑니다. 이탈리아의 왕비가 바로 밀리카의 여동생이었던 엘레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치 상황도 복잡해졌으며 제부인 이탈리아의 국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3세가 퇴위하고 이집트로 갈때 밀리카도 따라갔었습니다. 그리고 1951년 이집트에서 사망했었습니다.

 

밀리카는 표트르 대공과의 사이에서 네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막내딸을 제외하고 세명의 자녀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첫째는 마리나 페트로브나이고 둘째는 로만 페트로비치 막내는 나데즈다 페트로브나로 셋은 모두 러시아를 탈출해서 프랑스에서 사망했었습니다.

 

세 자녀들인 마리나, 로만,나데즈다와 함께 있는 밀리카

 

자료츨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