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97) 몬테네그로의 아나스타샤 :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부인 (세번째)

엘아라 2021. 11.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자료가 필요해요 엉엉엉..ㅠ.ㅠ

(그러면서 세편이나 썼네요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97) 몬테네그로의 아나스타샤 :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부인 (세번째)

 

몬테네그로의 아나스타샤 (스타나)

로마노프스카야 공비

러시아 대공비

Princess Anastasia Petrović-Njegoš of Montenegro 

(4 January [O.S. 23 December 1867] 1868 – 25 November 1935) 

 

아나스타샤는 1906년 이혼한 5개월쯤이 지난 1907년 4월 러시아의 대공과 재혼합니다. 바로 형부의 형이었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이었습니다. 니콜라이 대공은 동생인 표트르 대공 부부와 함께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으며 당연히 역시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아나스타샤와도 자주 만났었습니다. 게다가 스타나는 동생의 처제였기에 역시나 가족관계였으며 아마도 남편때문에 힘들어했던 스타나는 언니에게 의지했을 것이며 이것은 니콜라이 대공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 니콜라이 1세의 손자, 아버지랑 이름이 같아서 구별하려고 the younger라고 부르거나 애칭인 니콜라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나스타샤의 두번째 남편이 된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니콜라샤"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인물로 니콜라이 1세의 아들이었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그의 아내인 올덴부르크의 알렉산드라의 장남이었습니다. 부모는 대놓고 싸웠는데 특히 니콜라이 대공은 아내를 무시하고 대놓고 정부와 살림을 차렸으며 아내와 강제로 이혼하려했을뿐만 아니라 아들들마저 아내에게서 뺏아와서 못마나게 하려했을 정도였습니다. 니콜라이 대공은 부모의 불화에서 어머니쪽을 지지했었다고 합니다만, 러시아 대공이었기에 스캔들을 우려해서 러시아를 떠나있어야했던 어머니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겪었기에 니콜라이 대공은 아나스타샤에게 더욱더 동정적이었으며 이것은 둘이 애정관계로 발전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스타나는 니콜라이 대공과 늦은 나이에 결혼했고 둘 사이에는 자녀는 없었습니다.

 

부모인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올덴부르크의 알렉산드라 그리고 동생인 표트르와 함께 있는 니콜라이

 

하지만 아나스탸사의 이혼과 재혼은 궁정에서 스캔들꺼리였으며 특히 마리야 황태후가 이에 대해서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었다고 합니다. 이미 황후에게 신비주의를 알려주면서 사기꾼 같은 인물들을 황후에게 소개시켜줬었기에 황태후가 이미 못마땅하게 여겼었습니다. 특히 스타나와 언니 밀리카가 황후에게 라스푸틴을 소개시켜줬고 이때문에 라스푸틴이 궁정에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면서 황태후 뿐만 아니라 많은 황실 가족들이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스타나가 황실과 국민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던 니콜라샤 대공과 결혼한다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나스타샤는 비록 황실에서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황후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었으며 또한 황실에서 신임을 받던 니콜라이 대공의 아내였기에 사교계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온함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깨지게 됩니다. 특히 스타나의 남편인 니콜라샤 대공은 비록 아내가 라스푸틴을 황제 부부에게 소개시켜줬었지만 라스푸틴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특히 황제가 군의 신임을 받던 니콜라샤를 해임하고 스스로 총사령관이 되면서 이에대한 걱정과 불만이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니콜라이 2세와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

니콜라샤는 황제에 의해서 코카서스로 갔으며 이후에는 크림반도로 가게 됩니다. 특히 크림반도에 갔을때는 이미 혁명이 진행중이었기에 니콜라샤와 아나스타샤는 가택연금을 당했었으며 2년여간 지내게 됩니다. 이때 황태후 역시 크림반도로 왔으며 이들은 이곳에서 지냈었습니다. 황태후는 러시아를 떠나지 않으려했지만 러시아 상황이 나빠지면서 황태후의 언니인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비가 동생을 데려오기 위해서 전함을 보냈으며 스타나는 황태후와 남편 황실 가족들과 함께 이 전함을 타고 러시아를 떠났었습니다.

 

스타나의 남편은 여전히 황제와 황태후에 충성적이었으며 이것은 망명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니콜라샤는 황실 가족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으며 이것은 그가 황실 가족들의 구심점이 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맘명왕족들이 겪는 문제를 겪었습니다. 스타나는 남편과 함께 여동생이 왕비로 있는 이탈리아로 가서 이탈리아에서 머물렀으며 이후에는 많은 망명왕족들처럼 프랑스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사망했으며 프랑스에 묻혔지만 결국 로마노프 가문의 후손들에 의해서 2014년 모스크바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니콜라이 대공과 아나스타샤의 재매장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