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92) 세르비아의 엘레나 : 이오안 콘스탄티노비치의 부인 (세번째)

엘아라 2021. 10.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후훗 본편보다 배경 설명이 더 깁니다..ㅠ.ㅠ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92) 세르비아의 엘레나 : 이오안 콘스탄티노비치의 부인 (세번째)

 

세르비아의 엘레나

러시아의 옐레나 페트로브나 공비

Princess Helen of Serbia 

(4 November [OS 23 October] 1884 – 16 October 1962)

 

엘레나의 부모인 페타르 1세와 조르카는 1883년 몬테네그로에서 결혼했었습니다. 조르카는 결혼전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았었으며 페타르와 결혼하기 위해서 몬테네그로로 돌아왔었습니다. 둘의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었는데 당시 페타르는 세르비아의 국왕이 아니었을뿐만 아니라 세르비아에서도 위험인물로 여겨졌었습니다. 페타르는 당시 세르비아를 통치하던 오노레비치 가문이 매우 경계하는 인물이었으며 특히 밀란 1세는 그를 경쟁자로 여겼기에 암살하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와 중에 페타르와 조르카가 결혼한 것에 대해서 당연히 세르비아는 크게 반발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더 큰 국제문제와도 연결이 되는데 몬테네그로는 주로 친러시아파였으며 이때문에 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우호적이었던것과 연결이 됩니다. 러시아는 당연히 발칸반도나 동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하려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좋은 기회이기도 했었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이에 대해서 위협을 느끼길정도엿씁니다. 

 

몬테네그로에서 페타르와 조르카 그리고 가족들 왼에 서있는 남잔가 페타르라고 합니다. 아마 가운데 여자가 조르카인듯하네요. 

 

엘레나는 아버지인 페타르가 세르비아을 떠나 처가인 몬테네그로에 정착했었기에 몬테네그로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됩니다. 엘레나의 어머니는 엘레나가 6살이 되던해인 1890년 막내동생을 낳다가 사망했습니다. 엘레나의 아버지인 페타르는 아내가 죽은뒤 재혼하지 않았고 홀로 자녀들을 키웠었습니다. 그는 세르비아의 왕위를 얻기 위한 노력을 했었지만 그다지 성과가 없었습니다. 특히 페타르의 장인인 니콜라 1세는 사위와 함께 세르비아를 공격하려고 계획을 했다가 그냥 취소하는 등의 일을 했고 페타르는 이에 대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1894년 자녀들과 함께 스위스의 제네바로 떠났고 그곳에서 세르비아의 국왕이 될때까지 살았었습니다. 

 

어린시절의 엘레나와 두 남동생들

 

엘레나는 남동생들과 함께 러시아로 가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러시아에는 엘레나의 이모들이 있었으며 딸인 엘레나의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았기에 딸인 엘레나를 이모들이 보살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었습니다. 사실 엘레나의 아버지는 망명 왕족으로 돈이 부족했고 자녀들을 스위스에 있는 학교에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이에 그를 지지했던 러시아측에서 자녀들을 러시아로 보내서 교육시키도록 했었으며 이에 페타르는 자녀들 모두를 러시아로 보냈던 것입니다. 이후 페타르는 세르비아의 국왕이 되었으며 엘레나도 세르비아의 공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동생들과 달리 엘레나는 이모들이 있는 러시아에 계속 남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엘레나의 두 이모들인 밀리카와 아나스타샤

 

엘레나는 러사아에서 귀족여성들을 위한 학교였던 스몰니 학원을 다녔었습니다. 이곳은 예카테리나 2세가 미혼인 귀족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곳으로 전통적으로 황실에서 후원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모들이 러시아 대공비였던 엘레나는 당연히 여러 황실 가족들과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특히 니콜라이 2세의 딸이었던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은 엘레나에 대해서 매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엘레나는 얌전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었으며 매우 아름다운 검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엘레나는 러시아 황실 가족의 인척이었기에 자주 황실 가족들을 만났었으며 후에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 역시 만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