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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인판타들...(20) 아라곤의 이사벨 : 하이메 2세의 딸

엘아라 2021. 10. 1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늘 말하지만 중세는 진짜..ㅠ.ㅠ

 

아라곤의 인판타들...(20) 아라곤의 이사벨 : 하이메 2세의 딸

 

아라곤의 이사벨

독일의 왕비

Isabella of Aragon 

(1302 – 12 July 1330) 

이사벨의 씰

 

아라곤의 이사벨은 아라곤의 국왕 하이메 2세와 그의 아내인 앙주의 블랑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사벨은 처음에는 아르메니아의 국왕 오신과 혼담이 오가게 됩니다. 이사벨의 아버지인 하이메 2세는 타라고나의 대성당에 안치할 성 테클라

의 성유해를 모시길 바랬는데 성 테클라의 성유해는 아르메니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신은 아르메니아 교회와 로마 가톨릭이 서로 결합하길 바랬고 이때문에 가톨릭 국가였던 아라곤의 인판타인 이사벨을 아내로 맞이하려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이에 대해서 좋은 반응이 아니었기에 결국 혼담은 없었던 것이 됩니다.

 

아르메니아의 국왕 오신의 씰

 

이사벨은 지참금이 많았기에 곧 다른 혼담이 진행됩니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공작 프리드리히 1세와의 혼담이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인 오스트리아 공작 프리드리히 1세는 1314년 로만왕 선거에서 사촌인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인 바이에른의 루드비히(후에 황제 루드비히 4세)와 경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국왕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대관식까지 했었습니다.. 결국 합스부르크 가문과  비텔스바흐 가문은 전쟁을 해야했고 아마도 이런 상황이었기에 지참금이 많았던 이사벨은 1315년 프리드리히 1세와 결혼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독일로 시집간 이사벨은 독일식으로 "엘리자베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1세의 씰, 

 

합스부르크 가문과 비텔스바흐 가문은 왕위를 두고 다퉜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매우 불리했지만 결국 하인리히는 사촌과 화해를 했고 둘은 공동 국왕에 오르게 됩니다. 이때문에 이사벨 역시 독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사벨은 죽기 6년전부터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사벨과 프리드리히 1세 사이에서는 여러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딸인 안나를 제외하고는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했으며, 결국 공작령은 프리드리히 1세의 두동생들이 상속받게 됩니다. 

 

이사벨의 딸이었던 안나는 프리드리히가 살아있었을때는 폴란드 왕위계승자와의 혼담이 진행되었지만 아버지가 비텔스바흐 가문에 패배한뒤 없었던 일이 됩니다. 이후에 비텔스바흐 가문의 일원이었던 하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15세와 결혼했고 남편이 죽은뒤 고리치아의 백작과 재혼했었습니다만 두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고 합니다. 

 

합스부르크의 안나, 이사벨의 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