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시칠리아 왕국을 따로 다뤄야하긴한데 뭐랄까 일단 어떻게 시칠리아 왕국이 아라곤 왕가에서 분할되는지 정도만 여기서 알아볼까합니다. 아마도 아라곤 왕국이 카스티야쪽으로 넘어갈때쯤에 다시 시칠리왕국의 인판타로 좀 할까 싶습니다.
어차피 카스티야 왕가의 분가로 몇대 안되는데다가 곧 에스파냐로 합쳐지기 때문에 아라곤 왕국이 카스티야 왕가쪽으로 넘어가는 것은 나중에 따로 카스티야쪽에서 넣을까 싶거든요.-0-;;; 음냐
그런데 사실 이탈리아는 진짜 몰랐는데 지난번 책을 쓰면서 시칠리아 왕국을 좀 팠더니 이쪽은 대충 이해가 되네요 -0-;;
(물론 나폴리 왕국 상속문제보다가 머리 깨지는줄 알았습니다만..ㅠ.ㅠ)
아라곤의 인판타들...번외편 시칠리아 왕국
시칠리아 왕국은 10세기부터 성장해서 11세기에 성립되어 이탈리아 남부 지역을 통치하던 왕국입니다. 이 왕국을 세운 사람들은 역시 바이킹의 일족인 노르만인들이었습니다. 바이킹들이 유럽의 여러곳으로 진출했던 시절 노르망디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들의 리더가 바로 롤로의 후손들인 노르망디 공작들이었죠. 문제는 노르망디에 진출한 바이킹들이 노르망디 지역에 정착하면서 점차 영지가 부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르만인들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다시 한번 땅을 찾아서 여러곳으로 진출합니다.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로 가면서 정복왕의 가신들이 브리튼섬 곳곳에 영지를 얻게 되는 것도 이런 사정도 있다고 봅니다.) 그들중 일부가 성지순례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탈리아 남부를 중심으로 하는 지중해 지역은 가톨릭 세력과 비잔틴제국 그리고 이슬람 세력들이 서로 견제를 하는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막강한 전투기술을 가진 노르만인들이 자리를 잡고 이교도들(여기는 비잔틴 세력도 포함)에게서 땅을 뺏아서 자신의 영지로 삼고 이것을 교황이 인정해주면서 결국 시칠리아 왕국이 형성된것이죠.
시칠리아 왕국의 정점이었던 시절은 바로 국왕 페데리코 시절이 아닐까합니다. 어머니로부터 시칠리아 왕국을 물려받았으며 아버지로부터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명분을 물려받아 결국 황제의 지위에 이르게 되는 페데리코( 황제 프리드리히 2세) 시절이 최고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2세의 치세 말기가 되면 제국 내 세력들과 갈등을 하고 심지어 교황과도 갈등이 일어나면서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으며 그의 사후 후계자 문제까지 일어나면서 완전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선출직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위와 달리 시칠리아 왕국은 상속지위였지만 프리드리히 2세와 교황의 갈등은 교황이 자신의 권한으로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를 그의 가문에게서 뺏아서 프랑스의 루이 8세의 아들이 앙주 공작 샤를에게 왕위를 줘버리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죠. 샤를은 혼란했던 호엔슈타우펜 가문 출신의 국왕들과 투쟁을 해서 시칠리아 왕국을 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본토쪽과 달리 시칠리아 섬은 좀더 장악하기 힘들었으며 시칠리아 섬 사람들은 이전의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후손들을 지지했었습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 출신으로 시칠리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 되는 만프레디는 프리드리히 1세의 사생아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샤를과의 전투에서 패배한뒤 사망했었죠. 그의 권리는 딸인 콘스탄치가 이어받게 됩니다. 콘스탄차는 아라곤의 국왕인 페드로 3세와 결혼했었으며 페드로 3세는 아내의 권리를 들어서 시칠리아 왕국의 계승을 주장하면서 전투를 이어갔으며 시칠리아 섬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시칠리아 왕국의 영토가 시칠리아 섬과 나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지역으로 나뉘는 계기가 됩니다. 나폴리쪽은 여전히 프랑스 방계 가문인 앙주 가문의 영토였었죠. 페드로 3세의 아들인 하이메 2세는 여동생인 욜란드(비올란테)를 나폴리 왕국의 후계자와 결혼시키면서 자신의 시칠리아 왕국에 대한 계승권리를 나폴리 왕가에 넘겨주려했었습니다. 하지만 시칠리아 섬 사람들은 이를 반대했고, 하이메 2세의 동생인 페데리코를 국왕으로 선출했으며 이렇게 시칠리아 왕국은 한동안 아라곤 왕국과 분리되게 됩니다.
하지만 15세기가 들어서면서 시칠리아 왕국의 계승자들이 남아남지않게 됩니다. 그래서 본가인 아라곤 왕국과 합쳐지게 됩니다만, 문제는 이 아라곤 왕국의 계승자도 남아남지 않게 되죠. 결국 아라곤 국왕의 조카로 어머니가 아라곤의 인판타였던 카스티야의 인판테 페르난도가 아라곤의 국왕이 됩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아라곤 왕국에서 독립을 원했지만 페르난도는 이를 거부하고 결국 시칠리아 섬을 장악했으며, 이후 아라곤의 국왕들은 시칠리아의 왕위도 겸하게 됩니다. 물론 페르난도의 손자인 페르난도 2세는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과 결혼했고 둘은 에스파냐의 기초를 세운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칠리아 왕국은 다시 자연스럽게 에스파냐 왕가에 넘어가게 되죠.
이후 유럽의 복잡한 상속관계와 전쟁으로 결국 프랑스 왕가인 부르봉 가문 계열로 넘어가게 되었을뿐만 아니라 나폴리 왕국과도 다시 합쳐지게 되었으며 후에 양시칠리 왕국이 되었으며 이후 이탈리아가 사보이 왕국을 중심으로 통일이 되는 19세기 중순까지 존재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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