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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48) 벨프 가문 : 세번째 볼펜뷔텔

엘아라 2021. 4. 2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엉엉엉..ㅠ.ㅠ

 

유럽의 통치 가문들...(48) 벨프 가문 : 세번째 볼펜뷔텔

 

볼펜뷔텔 공이었던 프리드리히 울리히는 1634년 남성후계자 없이 사망합니다. 그가 죽으면서 그의 영지는 뤼네부르크쪽 사람들이 나눠갖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울리히는 볼펜뷔텔,칼렌베르크,그루벤하겐 영지를 가지고 있었죠. 이 영지들은 뤼네부르크 공이었던 에른스트 1세의 손자들이 나눠갖게 됩니다. 칼렌베르크와 그루벤하겐은 뤼네부르크 공령을 물려받았던 빌헬름 데어 융게르의 아들들인 아우구스트와 게오르그에게 상속되었으며 결국 이 영지는 모두 하노버 선제후이자 영국의 국왕이 되는 조지 1세와 그 후손들이 물려받게 됩니다.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프리드리히 울리히

 

하지만 볼펜뷔텔 공령은 뤼네부르크 공이었던 에른스트 1세의 손자였던 아우구스트가 물려받게 되죠.

 

에른스트 1세의 아들이자 아우구스트의 아버지인 하인리히 1세는 뤼네부르크 공령의 분할 상속을 주장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단넨베르크 주변의 작은 영지를 받았으며 나머지 상속영지에 대한 권리를 돈으로 바꿨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뤼네부르크에 대한 상속권리였으며 볼펜뷔텔에 대한 상속문제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단넨베르크의 하인리히 1세의 두 아들인 율리우스 에른스트와 아우구스트(아우구스트 데어 융게르)는 아버지가 죽은뒤 영지를 상속받게 됩니다. 장남인 율리우스 에른스트가 단넨베르크를 중심으로하는 영지를 받았으며 아우구스트는 좀더 작은 영지를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1634년 볼펜뷔텔 공인 프리드리히 울리히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울리히의 영지를 두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결국 황제의 개입으로 상속문제는 정리되는데, 1635년 아우구스트 데어 융게르가 볼펜뷔텔 공령을 상속받아서 볼펜뷔텔 공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1636년 아우구스트의 형인 율리우스 에른스트가 남성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형의 영지마저 아우구스트가 물려받게 됩니다.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 아우구스트

 

아우구스트에게는 아들에 셋이 있었습니다. 위의 두 아들이 루돌프 아우구스트와 안톤 울리히는 첫번째 아내의 아들들이었으며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는 두번째 아내의 아들이었죠. 1666년 아우구스트가 사망하자 상속에 대한 분쟁이 발생하는데 막내아들인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는 베베른을 중심으로하는 작은 영지를 받았으며, 볼펜뷔텔의 통치에 대한 권리를 보상하기 위해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볼펜뷔텔 공령은 장남인 루돌프 아우구스트가 물려받았긴 합니다만 루돌프 아우구스트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는 인물이었으며, 반면 동생인 안톤 울리히는 야심 가득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레 루돌프 아우구스트가 볼펜뷔텔 공이 되었을때부터 이미 안톤 울리히는 정부의 핵심 인물로 실질적인 통치자나 다름 없었습니다.  루돌프 아우구스트는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두명의 딸밖에 없었으며 첫번째 부인이 죽은뒤인 1681년에는 귀천상혼까지 했기에 그의 후계자는 자연스럽게 안톤 울리히가 되었으며 1685년에는 안톤 울리히가 루돌프 아우구스트와 함께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루돌프 아우구스트, 볼펜뷔텔 공

 

안톤 울리히는 매우 야심이 강한 인물이었으며 이것은 역시 친척이자 제국내에서 지위가 높아져가던 하노버의 선제후가 되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갈등을 빚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안톤 울리히는 형인 루돌프 아우구스트가 1704년 사망하면서 볼펜뷔텔 공령을 상속받습니다. 안톤 울리히는 자신의 손녀인 엘리자베트 크리스틴을 오스트리아의 카를 대공과 결혼시킵니다. 카를 대공은 후에 황제 카를 6세가 되었으며 엘리자베트 크리스틴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안톤 울리히, 볼펜뷔텔 공

 

안톤 울리히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트 빌헬름과 루드비히 루돌프가 있었죠. 재미난 것은 안톤 울리히는 둘째아들에게 블란켄부르크 지역을 분할해서 주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루드비히 루돌프의 딸이 황제 요제프 1세의 동생이자 후계자가 될 카를 대공과 결혼했기 때문일듯합니다.  1714년 안톤울리히가 사망한뒤 장남인 아우구스트 빌헬름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볼펜뷔텔 공이 됩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트 빌헬름은 세번이나 결혼했지만 후계자를 얻지 못했고 영지는 루드비히 루돌프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아우구스트 빌헬름, 볼펜뷔텔공

 

루드비히 루돌프에게는 네명의 딸이 태어났으며 그중 셋이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장녀인 엘리자베트 크리스틴이 황제 카를 6세와 결혼해서 마리아 테레지아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샤를로트 크리스틴은 러시아의 표트르 1세의 아들인 황태자 알렉세이 표트로비치와 결혼해서 표트르 2세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루드비히 루돌프에게는 남성후계자가 없었기에 결국 영지는 루드비히 루돌프의 사촌인 베베른의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가 이어받게 되죠. 그랬기에 상속문제 때문에 루드비히 루돌프의 막내딸이었던 안토니에트 아말리가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루드비히 루돌프, 볼펜뷔텔공
안토니에트 아말리, 루드비히 루돌프의 딸, 볼펜뷔텔 공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의 아내
가계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