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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47) 벨프 가문 : 두번째 뤼네부르크 (세번째)

엘아라 2021. 4. 1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앞쪽에서 다 하려다가 이 이야기 워낙 복잡해서 따로 떼기로 했습니다.

네 바로 조지 1세가 어떻게 백부들의 영지를 물려받았는지, 왜 사촌인 조피 도로테아와 결혼했는지에 대한 스토리라서 말입니다. 음냐..이거 재미있는 이야기이긴합니다. (....아 그러고보니 가계도 정리해놓은것이 하나 더있는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영지가 어떻게 합쳐져서 상속되는지에 대해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ㅠ.ㅠ

 

유럽의 통치 가문들...(47) 벨프 가문 : 두번째 뤼네부르크 (세번째)

 

가계도

 

빌헬름 데어 융게르의 막내아들인 게오르그는 1635년 볼펜뷔텔공인 프리드리히 울리히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그의 영지중 칼렌베르크를 상속받게 됩니다. 게오르그는 형들이 모두 정식 결혼을 하지 않아서 후계자가 없었기에 뤼네부르크 공령을 상속받을 예정이기도 했었죠. 비록 게오르그는 형인 프리드리히 4세보다 일찍 사망해서 뤼네부르크 공령을 상속받지는 못했지만, 형제들중 유일하게 아들들이 있었기에 게오르그의 아들이 뤼네부르크 공령을 상속 받게 됩니다. 

 

브라운슈바이크-뤼네베루크의 게오르그, 칼렌베르크 공

 

게오르그의 네명의 아들중 장남인 크리스티안 루드비히는 1641년 아버지로부터 칼렌베르크를 상속받았습니다. 그리고 1648년 백부인 프리드리히가 죽은뒤에는 뤼네부르크 공령을 상속받게 되죠. 크리스티안 루드비히는 칼렌베르크 공령을 바로 밑의 동생인 게오르그 빌헬름에게 물려주죠. 그런데 크리스티안 루드비히는 1665년 남성후계자 없이 사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 밑의 동생인 게오르그 빌헬름이 불려받게 됩니다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크리스티안-루드비히,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


게오르그 빌헬름은 1658년 원래 팔츠의 조피와 결혼하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략결혼을 원치 않았으며 결국 조피가 게오르그 빌헬름의 막내동생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결혼하는 대신 게오르그 빌헬름은 자신의 칼렌베르크 공령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팔츠의 조피의 후손에게 주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팔츠의 조피, 제임스 1세의 외손녀, 조지 1세의 어머니

 

그런데 1665년 뤼네부르크 공인 크리스티안 루드비히가 사망하면서 게오르그 빌헬름은 뤼네부르크 공령을 상속받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상황을 낳게 되는데 관례대로 게오르그 빌헬름은 바로 밑의 동생인 요한 프리드리히에게 칼렌베르크 공령을 주게 됩니다. 게오르그 빌헬름은 뤼네부르크를 상속받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막내 동생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후손에게 영지를 물려주기로한 약속 역시 있었죠. 물론 게오르그 빌헬름은 귀천상혼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기에 적법한 남성 후계자가 생길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게오르그 빌헬름 사이에는 형인 요한 프리드리히가 있었으며 그에게 아들이 태어날 경우 계승문제는 복잡해질수 있었습니다.

 

게오르그 빌헬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




1670년대 후반이 되면서 뤼네부르크 공인 게오르그 빌헬름이나 칼렌부르크 공인 요한 프리드리히에게 남성후계자가 태어날리 없어보였으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었기에 가문의 영지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그의 아들들에게 상속될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게오르그 빌헬름은 정부와의 사이에서 딸인 조피 도로테아를 낳았는데, 조피 도로테아와 볼펜뷔텔쪽 가문의 혼담이 진행되면서 조피 도로테아의 신분이 문제가 됩니다.  이에 게오르그 빌헬름은 1676년 동생과의 약속을 깨고 정부와 정식으로 결혼했고 조피 도로테아를 자신의 적자로 인정해버렸습니다. 이것은 상속문제에서 크게 골치아픈 것으로 딸들이 영지를 상속할수없었지만 만약 게오르그 빌헬름에게 아들이라도 태어난다면 이전의 약속은 문제가 될것이었죠. 결국 게오르그 빌헬름과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그리고 볼펜뷔텔의 안톤 울리히(조피 도로테아의 약혼자의 아버지)가 조피 도로테아의 적자 지위를 인정하는 대신 영지의 상속권은 여전히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그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기로 한것을 확인하는 협정을 체결했었습니다. 하지만 조피 도로테아의 약혼자는 바로 전쟁으로 인해서 사망했는데, 적자 신분이 된 조피 도로테아는 유럽의 최고 상속녀가 되었으며 수많은 혼담이 나오게 되기도 합니다.

 

엘레오노르 돌브뢰즈, 게오르그 빌헬름의 부인,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의 어머니


1679년 칼렌베르크 공인 요한 프리드리히가 남성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칼렌베르크는 막내동생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물려받게 되죠. 그리고 게오르그 빌헬름에게도 아들이 태어날것처럼 보이지 않게 되면서 상속문제는 완전히 정리됩니다. 특히 게오르그 빌헬름의 딸인 조피 도로테아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장남인 게오르그 루드비히와 결혼하면서 상속문제도 완전히 정리되었으며 특히 장자 상속제를 하기로 하면서 가문의 모든 영지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장남인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상속받게 됩니다.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요한 프리드리히, 칼렌베르크 공, 그의 둘째딸은 황제 요제프 1세의 부인이었습니다.참고로 제수인 팔츠의 조피의 조카와 결혼했던....

 

이 와중에 1689년 게오르그 빌헬름은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령에 대한 지위를 주장했으며 결국 이 공작령을 무력으로 장악했었습니다.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령 역시 게오르그 루드비히에게 돌아가게 되죠.

또 칼렌베르크 공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황제 레오폴트 1세의 편에 서서 튀르크와의 전쟁에 참전했으며 이후 황제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를 "하노버의 선제후"로 높여줍니다. 칼렌부르크 공령의 중심도시가 하노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덕분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들인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뤼네부르크 공령을 상속받았으며 결국 하노버의 선제후는 뤼네부르크 공령과 칼렌부르크 공령을 모두 통치하게 되죠.

 

브라운규바이크-뤼네부르크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아버지로부터 하노버 선제후령을 상속받았지만 어머니로부터는 더 큰 영지를 상속받습니다. 바로 영국이었죠. 게오르그 루드비히의 어머니인 팔츠의 조피는 영국의 제임스 1세의 외손녀였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앤여왕의 후계자로 조피가 결정됩니다. 하지만 조피는 앤 여왕보다 일찍 사망했으며, 결국 조피의 아들이자 하노버의 선제후인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어머니로부터 권리를 상속받아서 영국의 조지 1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노버 가문이 영국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국왕이 되기전 조지 1세

 

가계도2, 새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서 그려봤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