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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23)삶의 마지막 : 비극과 희망

엘아라 2021. 2.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올해도 이렇게 망하는군요.

뭐랄까 집중력도 떨어지고 의욕도 없고 하여튼 메롱합니다..ㅠ.ㅠ

설 지나고 나면 좀 낫겠죠. 그렇게 믿어보렵니다.

 

매일매일 커피를 들이키는데도 의욕이 안 살아나니 힘드네요..엉엉엉..ㅠ.ㅠ

 

[새해특집]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23)삶의 마지막 : 비극과 희망

 

14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레이디 마거릿은 늙어갔으며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1492년 세상을 떠났으며, 1498년에는 남동생인 존 웰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게다가 손녀인 엘리자베스나 손자인 에드먼드 역시 영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큰 비극은 바로 1502년 결혼한지 1년도 안된 장손인 웨일스 공 아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원래 아라곤의 캐서린이 발한증(땀병)이라고 불리는 병에 걸렸었는데 캐서린은 회복되었지만 같이 감염된 아서는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죠. 모두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으며 이것은 아마도 레이디 마거릿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게다가 며느리인 요크의 엘리자베스는 다시 한번 임신합니다만, 이번 임신은 요크의 엘리자베스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녀는 1503년 딸인 캐서린을 낳다가 사망했으며, 캐서린 역시 얼마 살지 못하고 사망하죠.

 

헨리 7세와 가족들

 

레이디 마거릿에게는 홀아비가 된 아들 헨리 7세와 과부가 된 손자 며느리인 아라곤의 캐서린 그리고 스코틀랜드 왕비가 되어서 스코틀랜드로 떠나야하는 마거릿 튜더와 손자인 헨리와 손녀인 메리남이 남게 되죠. 결국 이 상황에서 레이디 마거릿은 죽은 며느리를 대신해서 궁정을 이끌어나가는 중심인물이 됩니다. 물론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에게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긴합니다만 이당시 그녀가 정확히 무슨 일에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레이디 마거릿은 손녀인 마거릿 튜더가 스코틀랜드 왕비로 스코틀랜드로 가는 상황을 잘 처리했었으며 또 손자인 헨리가 왕위계승자로 교육받도록 햇었습니다. 어쩌면 아들인 헨리 7세가 재혼하려했던 문제에 대해서도 레이디 마거릿이 조언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아마도 일찍 과부가 된 손자 며느리인 아라곤의 캐서린에 대해서 안타까운 생각을 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아주 가깝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둘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매우 큰 문제이기도 했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와중에서도 레이디 마거릿은 캠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 신학교수직을 마련하는 일등을 합니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매우 학구적이었으며 레이디 마거릿은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여러가지를 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책을 모으거나 작가의 후원자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또 부유했었기에 여러 예술가의 후원자가 되기도 했었죠. 이런 일이 점차 발전하면서 결국 레이디 마거릿이 죽은뒤 그녀의 유지는 계속 이어져서 캠브리지 대학교에 세인트 존스 칼리지가 성립되기까지 하죠.

 

캠브리지 대학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에 걱정스러워했을 것이며 반면 손자이자 후계자인 헨리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안심을 했을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509년 4월 헨리 7세는 사망하게 됩니다. 아들의 죽음은 역시 건강이 나빠져가던 레이디 마거릿에게 치명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의무가 더 남았었습니다. 바로 손자인 헨리 8세였죠. 헨리 7세는 자신의 유언 집행자로 어머니인 레이디 마거릿을 선택했었다고 합니다. 헨리 7세의 신하들은 모두 레이디 마거릿을 존경했으며 그녀의 정치적 의견을 신뢰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적으로 아직 미성년이었던 헨리 8세가 즉위한 것에 대해서 레이디 마거릿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헨리 7세의 임종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의 장례식과 손자의 대관식을 준비했었으며 정치적 조언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건강이 나빠져가고 있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헨리 8세가 형수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할수 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이 이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적어도 이 결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죽어가던 레이디 마거릿이 손자 헨리 8세의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수 있었을 지는 알수 없지만 말입니다.

 

젊은 헨리 8세, 볼때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랑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렇다죠. 베니도 조상중에 플랜태저넛 가문 사람이 있다더니 아무래도 유전자의 힘은 무시할수 없나봐요 -0-;;;;

 

헨리 8세는 외할아버지인 에드워드 4세처럼 매우 인기있는 인물이었으며 또 교육도 잘 받았었던 인물이었죠. 이런 손자가 갓 결혼해서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제 그녀는 안심하고 눈을 감을수 있을 것이라 여겼을 듯합니다. 그리고 대관식이 열린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1509년 6월 29일 레이디 마거릿은 사망합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