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73) 헤센의 알릭스 : 니콜라이 2세의 황후(여섯번째)
헤센의 알릭스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Princess Alix of Hesse and by Rhine
Alexandra Feodorovna
(6 June [O.S.25 May] 1872 – 17 July 1918)
사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의 상황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더이상 황제부부에 대해서 믿음이 없었으며 결국 바꿔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인 키릴 대공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황제를 몰아내려는 쿠데타를 꾸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러시아 혁명이 먼저 일어나게 되죠.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니콜라이 2세는 퇴위했으며 아들 알렉세이의 왕위계승권도 포기합니다. 왕위계승권리는 미하일 대공에게 갔지만 역시나 미하일 대공은 황위를 거부했으며 이후에 의회가 이제 군주제를 폐지하게 되죠.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은 시베리아로 보내졌으며 가택연금을 당하게 됩니다.
사실 러시아에서는 황제 일가가 골치아픈 존재가 됩니다. 이들의 상징성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차라리 외국으로 보내는 편이 나았죠. 하지만 이들을 받아줄만한 곳은 없었는데 특히 영국의 조지 5세가 이들을 거부하면서 더욱더 복잡하게 됩니다. (니콜라이 2세는 사촌이 자신을 받아줄것이라 믿었다고 합니다.)
1918년 상황은 더 악화되는데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니콜라이 2세 가족들은 예카테린부르크로 이동했었죠. 볼셰비키들은 이제 황실 가족들이 그들의 혁명에 적대적인 상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니콜라이 2세 일가는 물론 러시아에 남아있던 모든 황실 가족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됩니다.
1918년 7월 16일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던 지하실에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그리고 둘의 다섯아이들과 시종들과 의사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볼셰비키는 이들을 살해합니다. 황실 가족들을 살해한 이들은 황실 가족들이 상징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신을 불태우고 황산을 뿌리는 등의 훼손했으며 처음에는 광산에 이들의 시신을 옮겼다가 다시 다른 곳에 묻어서 황실 가족들의 시신의 행방을 알지 못하게 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오래도록 니콜라이 2세 가족들의 시신을 못찾게 했으며 이때문에 황제의 어머니였던 마리야 황태후는 아들과 아들 가족의 시신을 못찾았기에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황제 일가가 살해당한 사실을 알았으며, 인정하지 않으려했던 황태후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황실 가족의 비극적 죽음 이후 오래도록 니콜라이 2세 가족들의 시신이 어디에 묻혀있는지 알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1990년대 공식적으로 황실 가족의 시신을 발굴합니다. 황실 가족의 시신이 맞는 것은 정황상 분명했지만 시신을 구별할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으며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DNA검사방식을 동원합니다. mtDNA의 특정 지표를 비교해서 혈연관계를 밝히는 방법으로 비교대상이 된 DNA를 제공한 인물은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이었던 필립공이었습니다. 필립공의 외할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는 알렉산드라의 언니였으며 이때문에 필립공은 모계를 통해 이어지는 mtDNA의 적당한 비교대상이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검사를 통해 황실 가족들의 시신임을 화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알렉세이와 여대공중 한명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많은 이들이 어쩌면 이들이 살아남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며 특히 안나 앤더슨의 지지자들이 열광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나 앤더슨의 DNA는 맞지 않았으며 2008년 두구의 시신을 더 찾아내므로써 모든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알릭스는 오래도록 러시아에서 평판이 나빴습니다. 물론 알렉산드라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 너그럽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부모의 마음으로 라스푸틴을 믿었기에 큰 실책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로 빅토리아 시대의 교육을 받은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친절을 베풀라고 배웠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조국이 된 러시아를 사랑했었으며, 또 신앙심도 깊었었습니다.
결국 잘못된 상황은 더 나쁜 상황을 낳았고 결국 이것은 손쓸수 없게 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라의 실책은 어쩌면 다른 시대였다면 어떻게든 무마할수 있을수 있는 것일수 있었지만 적어도 20세기초 러시아에서는 무마될수가 없었으며 이것이 알렉산드라의 비극적 최후를 만든 원인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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