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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프랑크 왕국의 왕비들...(3)리카르디스 : 카롤루스 3세의 아내

엘아라 2020. 8.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중간에 황제가 되는 바람에 동프랑크 왕비들이라기에는 또 애매합니다만 그냥 합니다. -0-;;

그나저나 라틴어 이름은 쉬운것같으면서도 어려워요 ㅠ.ㅠ

 

동프랑크 왕국의 왕비들...(3)리카르디스 : 카롤루스 3세의 아내

 

성 리카르디스

슈바벤의 리카르디스

Saint Richardis (Latin: Richgardis, Richardis),

Richgard, Richardis of Swabia 

Richarde de Souabe

(c. 840 – 18 September, between 894 and 896 AD), 

 

슈바벤의 리카르디스는 알사스 지방에서 노르트가우의 백작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문은 중세 시대까지 동프랑크 지역의 엄청난 영지를 가지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알라올핑(Alaholfing)가문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바덴 대공가문의 선조가 되는 가문이기도 합니다.) 

 

리카르디스는 862년 동프랑크의 국왕 루도비쿠스 게르마니쿠스의 아들인 카롤루스와 결혼을 합니다. 아마도 이 결혼 역시 정치적 목적이 강했을 듯합니다. 하지만 리카르디스와 카롤루스 사이에서는 자녀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881년 남편인 카롤루스가 황제 카롤루스 3세로 대관식을 올렸을때 리카르디스 역시 남편과 함께 황후로 대관을 했엇습니다.

 

리카르디스의 남편 카롤루스의 씰

 

그녀의 남편인 카롤루스는 "비만왕"이라는 별명이 있을정도로 뚱뚱했었으며 아마도 이것은 그의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시켰을 것입니다. 게다가 바이킹이 침공을 시작하면서 그는 제국내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되죠. 이것은 그에게 여러가지 영향을 미쳤으며, 후계자 문제에 집착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카롤루스에게는 아내인 리카르디스와의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여성에게서 아들 베르나르두스를 얻었습니다. 그는 이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하게 됩니다. 하지만 베르나르두스를 적자로 인정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교황의 허락을 받을수 있으리라 겨겼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었죠. 

 

카롤루스 "비만왕"

 

887년경 카롤루스의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실제로 통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리카르디스는 남편을 대신해서 섭정으로 통치를 하려했었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그녀의 정적들이 많아지게되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그리고 악화되는 건강 때문에 점점 더 판단력이 흐려지던 카롤루스 역시 리카르디스에게 적의를 갖게 됩니다. 그는 아마도 자신에게 후계자를 낳아주지 못하는 아내가 미웠을 것이며 어쩌면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모두 아내의 탓이라 여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카롤루스의 적의는 아내를 쫓아내고 싶어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궁정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했었기에 아마도 리카르디스는 여러 대신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롤루스는 이것을 빌미로 아내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내와 결혼을 완성하지 않았기에 결혼을 무효로해야한다고 주장하기까지하죠. 이런 그의 행동은 사실상 그의 치세 말년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리카르디스의 친정은 매우 세력있는 가문이었으며 이런 가문을 적으로 돌린다는 것은 결국 이 가문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리카르디스는 남편의 이런 주장에 박반했으며 심지어 부정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불의 시련"을 통과하므로써 그녀의 결백을 입증했었습니다. (불의 시련은 간통등의 범죄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뜨거운 물건에 손을 넣고 빼거나 아니면 뜨거운 불길위를 몇발자국 걷는 등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불의 시험을 받는 리카르디스

 

리카르디스는 부정하지 않았다고 입증을 했지만 남편인 카롤루스는 이를 승복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궁정내에서 그녀를 몰아내려는 세력이 확고했었던듯합니다. 게다가 황제가 끝까지 주장했었구요. 이런 상황은 결국 리카르디스가 궁정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가족의 보호아래 궁정을 떠나서 자신이 세웠던 수녀원으로 들어가게 되죠.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사망합니다. 물론 남편인 카롤루스는 그녀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망합니다.

 

아마도 이런 리카르디스의 상황은 정치적인 문제와 남편인 카롤루스의 상태와 맞물렸을듯합니다. 그녀가 성공적으로 섭정으로 일을 했었다면 죽어가던 카롤루스가 그녀를 쫓아내려했었더라도 정치적으로 강하게 맞섰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어가던 황제가 그녀를 몰아내는 것에 지지하는 신하들이 더 많았다는 것은 그녀가 정치적으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듯합니다.

 

리카르디스는 불의 시련을 이겨낸 여성이었기에 점차 그녀에 대한 전설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전설에서는 그녀가 매우 정숙한 아내였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끊임없이 의심했기에 결국은 불의 시련까지 이겨냅니다. 그후에 리카르디스는  궁정을 떠나서 숲으로가서 은거하는데 숲에서 우연히 죽은 새끼를 보고 슬퍼하고 있던 엄마곰을 만나게 됩니다. 리카르디스가 새끼곰을 만지자 새끼곰이 되살아났으며, 이후 엄마곰과 새끼곰은 리카르디스 곁에 머물면서 그녀를 따르고 그녀를 지켜줬다는 이야기였죠.

 

곰과 함께 있는 성 리카르디스의 상

 

이것은 대충 기적의 이야기가 점차 부풀려진것이 아닐까합니다. 이를테면 리카르디스가 은거한 곳은 그녀가 세운 수녀원이었으며 거기에는 곰이 없어진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리카르디스를 미화하면서 이야기들이 점차 더 커졌고 이런 전설이 생겨나게 된듯합니다. 그리고 중세시대에 이런 "죽은것을 되살리는 기적"은 당연히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는 것으로 그녀에 대해서 점차 공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결국 1049년 교황 레오9세에 의해서 리카르디스는 성인으로 시성되게 됩니다. 성 리카르디스는 그녀가 은거했던 수녀원이 있던 안들라우(Andlau)의 수호성인이며 화재에서 지켜주는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성 리카르디스는 불의 시련을 겪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황후나 수녀복장으로 나타납니다. 또 그녀의 상징중에 하나는 전설에 나타나는 곰이라고 합니다.

 

성 리카르디스와 남편 카롤루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