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째 하다보니 두개로 나뉘네요 =-=
두개할만큼 자료가 없는데 완전 늘리기인듯합니다.
나바라의 인판타들...(41) 나바라의 레노오르 : 블란카 1세의 딸(두번째)
나바라의 레오노르
푸아 백작부인
Eleanor of Navarre
(Basque: Leonor and Spanish: Leonor)
(2 February 1426 – 12 February 1479)
레오노르의 남편인 푸아 백작 가스통은 샤를 7세와 관계가 매우 좋았으며 이때문에 장남인 가스통을 샤를 7세의 딸인 마들렌와 결혼시킬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나바라 왕위계승문제에도 매우 좋게 작용했는데 장남인 가스통이 결혼할때 레오노르는 왕위계승자로 선포되었었지만 언니인 블란카가 살아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프랑스 공주와 결혼했고 이것은 프랑스와의 동맹을 바라던 레오노르의 아버지인 아라곤의 후안 2세에게는 좋은 일이었을 듯합니다.
1464년 레오노르의 언니인 블란카가 죽고 난뒤 레오노르는 이제 완전한 합법적인 나바라의 왕위계승자였으며 레오노르의 아버지인 후안은 레오노르에게 이미 나바라의 섭정 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권력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레오노르는 아마도 아버지의 눈밖에 나는 일을 잠시 했었던듯합니다. 이에 1468년 후안 2세는 레오노르의 조언자를 죽이는 것으로 답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레오노르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을 듯합니다. 하지만 1471년 후안 2세는 다시 레오노르를 나바라의 섭정으로 인정했으며 그가 죽을때까지 딸의 지위를 유지했었죠. 이것을 보면 아마도 이후 레오노르는 다시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을 듯합니다.
나바라의 섭정으로 레오노르가 지위를 굳혀가고 있을때 그녀의 남편인 푸아 백작 가스통 4세는 프랑스에서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샤를 7세가 죽고 루이 11세가 즉위하면서 가스통 4세는 루이 11세와 마찰을 빚게 되죠. 특히 1471년 레오노르가 나바라의 왕위계승자로 섭정권리를 인정받았을때, 루이 11세는 푸아 백작령을 나바라의 국왕이 상속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전에 푸아 백작들은 비록 프랑스 국왕의 강한영향력을 받고 있었지만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라기 보다는 독립된 군주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스통 4세는 샤를 7세와 적극적으로 협력관계가 되면서 그의 신하가 되었었습니다. 이렇기에 가스통 4세는 루이 11세가 푸아 백작령의 상속을 가로막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 여기게 됩니다. 결국 그는 루이 11세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했고 1472년 나바라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레오노르는 아버지의 뜻에 거슬리지 않고 자신이 국왕의 권리를 가져야한다고 주장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나바라를 통치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나바라의 섭정으로는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었을 듯합니다만 가정적으로는 비극을 겪게 되죠. 장남인 가스통이 1470년 사망했고 남편인 푸아 백작이 1472년 사망하죠.
레오노르의 아버지인 아라곤의 후안 2세는 1479년 1월 20일 사망합니다. 그리고 레오노르는 아버지가 죽은 지 한달되 되지 않은 1479년 2월 12일 사망하죠. 이때문에 레오노르는 여왕으로써 몇주간을 지내지 못했었습니다.
그녀가 죽고나서 왕위는 손자인 프란시스코 페보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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