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집니다. ㅠ.ㅠ
정부들과 그 후손들...(273)머리 백작 제임스 스튜어트 : 제임스 5세의 아들(두번째)
제임스 스튜어트
1대 머리 백작
James Stewart, 1st Earl of Moray
(c. 1531 – 23 January 1570)
머리 백작은 다시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으며 여왕의 중요한 조언자의 지위를 유지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리경이 죽었을때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뒤에는 프랑스에 갔었기에 메리 여왕이 보스웰 백작과 결혼하는 일련의 상황에 연결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머리 백작이 프랑스에서 에든버러로 돌아온것은 1567년 8월로 이때는 이미 메리 여왕이 퇴위를 강요당해서 퇴위하고 갓난 아들인 제임스 6세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였습니다.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머리 백작은 갓난 아기인 국왕의 가까운 친척이자 핵심 권력자중 한명이었기에 제임스 6세의 섭정이 되었습니다.
제임스 6세의 섭정이 된 머리 백작은 이제 이복 여동생인 메리 스튜어트와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됩니다. 메리는 연금되어있던 성을 탈출했으며 한때 메리의 섭정이었던 샤텔로 공작 제임스 해밀튼을 중심으로 메리를 지지하는 이들이 왕위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죠. 이에 머리 백작은 샤텔로 공작의 군대와 맞서서 결국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때 메리는 결국 잉글랜드로 가게되죠. 결국 머리 백작의 승리는 의회와 교회 모두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머리는 잉글랜드와의 평화협상을 하면서, 스스로가 스코틀랜드의 섭정으로 정당한 통치자이며 메리 여왕을 비난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코틀랜드에서는 메리 여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메리가 왕위를 되찾기 위해 군사적 행동을 했으며 이것은 스코틀랜드 내에서 내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머리는 이런 메리의 지지자들을 차례로 굴복시켰으며 스코틀랜드의 대부분의 가문들은 머리의 권력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지위에 오른 머리 백작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개신교도인 머리 백작이 메리 여왕을 몰아내고 섭정으로 제일의 권력자가 된것에 많은 이들이 불만을 품게 됩니다. 가톨릭 신자들과 메리 여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머리 백작을 미워하게 됩니다. 결국 1570년 머리 백작은 메리 여왕의 지지자에 의해서 총으로 암살당하게 됩니다.
머리 백작은 1561년 또는 1562년에 마셜후작의 딸이었던 애그니스 키스와 결혼했고 세명의 딸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뒤 머리 백작 지위는 그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와 그 후손에게 이어지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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