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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74) 머리 백작 가문

엘아라 2020. 5.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거 하려니 애매해서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아하하..-0-;;;

 

 

정부들과 그 후손들...(274) 머리 백작 가문 

 

머리 지방은 스코틀랜드의 중요한 지방중 하나였으며 11세기부터 머리 지역을 통치하던 통치자들은 나름 스코틀랜드에서 힘이 있는 귀족들이었습니다. 특히 14세기 토마스 랜돌프가 처음으로 머리 백작이 된 이래 머리 백작령은 나름 중요한 영지중 하나이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랜돌프 가문에서 던바 가문으로 머리 백작령은 이어지게 됩니다만 15세기 던바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였던 엘리자베스 던바가 죽은뒤로 상속문제가 애매하게 됩니다. 

 

머리 백작으로써의 랜돌프 가문의 문장

 

16세기에 제임스 4세는 자신의 사생아 아들이었던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머리 백작 지위를 부여합니다만 그는 후손없이 사망했습니다. 이 머리 백작이 죽고 난뒤 제임스 4세의 외손자였던 헌틀리 백작 조지 고든은 자신이 외삼촌인 제임스 스튜어트의 머리 백작 지위를 상속받아야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위는 헌틀리 백작이 아니라 제임스 5세의 사생아 아들이자 메리 여왕의 이복 오빠였던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메리 여왕은 자신의 주된 조언자인 이복오빠에게 이 머리 백작 지위를 부여한것이었죠. 이것은 결국 헌틀리 백작이 반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만, 헌틀리 백작은 여왕과 머리 백작의 군대에 굴복했었으며 헌트리 백작은 죽었으며 아들중 한명도 처형됩니다. 이것은 훗날 헌틀리 백작 가문에서 머리 백작가문에 원한을 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복 여동생인 메리 여왕에게서 머리 백작 지위를 받은 제임스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개신교도들의 중심 리더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여동생이 쫓겨난뒤 조카인 제임스 6세의 섭정이 되었으며 이제 이복여동생인 메리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싸워야했죠. 이 내전에서 그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만, 결국 메리 여왕을 지지하는 사람에 의해서 암살당하게 됩니다.

 

머리 백작 제임스 스튜어트

 

머리 백작이었던 제임스 스튜어트가 죽고나서, 작위는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에게 이어지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머나먼 친척인 스튜어트 가문 출신인 도운 경 제임스 스튜어트의 아들인 제임스 스튜어트와 결혼합니다. 도운 경은 로버트 2세의 아들인 알바니 공작의 후손으로 알바니 공작 가문이 반역죄로 처형당했을때 서자 출신이었던 조상은 살아남을수 있었고 이들이 가문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도운 경은 섭정이었던 머리 백작의 지지자였으며 아마도 같은 가문이라는 것과 이런 지지자라는 것때문에 머리 백작의 상속녀와 아들을 결혼시킬수 있었던듯합니다. 실제로 머리 백작의 친구들은 도운 경의 아들이 엘리자베스에게 쳐지는 조건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알바니 공작 머독 스튜어트의 문장, 2대 백작은 이 알바니 공작의 후손입니다.

 

엘리자베스는 남편인 제임스 스튜어트와의 사이에서 적어도 다섯아이를 낳습니다만 1591년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제임스 스튜어트는 숙적이었던 헌틀리 백작에게 1592년 살해당하게 되죠. 

 

3대 머리 백작이 된 엘리자베스와 제임스 스튜어트의 아들인 제임스 스튜어트는 아버지를 죽인 헌틀리 후작(이전에 헌틀리 백작) 조지 고든의 딸인 앤 고든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머리 백작 제임스 스튜어트, (위키에서는 2대 백작이라는데 제 생각으로는 복식이 2대 백작은 아닌거 아닌가 싶거든요. 손자인 4대 백작이라고 표기하기도 하던데 자료가 없네요.)

 

5대 백작인 알렉산더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의 정치가였으며 찰스 2세부터 제임스 7세&2세 시기에 스코틀랜드의 중요한 정치가중 한명으로 제임스 7세&2세처럼 가톨릭을 지지하는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현재 머리 백작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와 그녀의 남편인 제임스 스튜어트의 후손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