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56) 헤센의 엘리자베트 : 알렉산드르 2세의 며느리 (네번째)

엘아라 2020. 5. 27. 06:00

 

헤센의 엘리자베트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성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Princess Elisabeth of Hesse and by Rhine

Elisabeth Alexandra Luise Alix

Grand Duchess Elizabeth Feodorovna of Russia 

Елизавета Фёдоровна Романова, Elizabeth Feodorovna Romanova; 

Holy Martyr Elizabeth Feodorovna

(1 November 1864 – 18 July 1918) 

 

 

엘라는 동생인 알릭스와 시조카였던 러시아의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사이를 지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알릭스가 니콜라이를 사랑했지만 정교회로 개종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을때 알릭스를 설득했다고도 알려져있습니다. 결국 알릭스는 1894년 러시아의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와 결혼해서 러시아의 황후가 됩니다.

 

엘라는 남편인 세르게이 대공과 조카들이자 남편이 입양했던 마리야와 드미트리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뭐 조금씩의 문제가 있었지만 어느정도 평온한 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황족들에 대한 테러가 점점 더 심해졌었으며 특히 세르게이는 모스크바에서 매우 인기없는 총독이었기에 그에 대한 위협이 더 했었습니다. 그리고 1905년 세르게이는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2세와 마찬가지로 폭탄테러로 사망합니다.

 

1903년 가장무도회때 엘라와 세르게이

 

엘라는 남편이 폭탄테러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현장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폭탄으로 인해서 심하게 훼손된 남편의 시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엘라는 그 끔찍한 현장에서 남편의 시신을 수습했었다고 합니다. 조카인 마리야 여대공은 훗날 회고록에서 이때 백모가 하얗게 질린 모습으로 자신을 안았고 그녀의 소매에 묻은 붉은 피를 보았었다고 합니다. 엘라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었습니다만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기에 모두가 걱정스러워할 정도였습니다. 모두가 엘라가 회복하지 못할까봐 걱정했지만 엘라는 슬픔에서 회복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뒤 엘라는 아마도 더이상 세상살이에 미련이 없었을 것이며 아마도 종교에 귀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책임이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조카들이자 양자양녀였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이었습니다. 어쨌든 두 아이들은 엘라의 자녀들이었으며 이 아이들을 성인이 될때까지는 책임져야했습니다.

 

상복을 입고 있는 엘라 그리고 마리야와 드미트리 

 

사실 드미트리는 백모인 엘라를 잘 따랐으며 엘라 역시 드미트리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이가 되면 황실 전통대로 군대에 갈것이며 이후는 알아서 자립할수 있을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야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마리야는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추방당한뒤 매우 예민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마리야는 폭풍의 사춘기를 맞이하는데 사랑해줬던 백부의 죽음은 마리야의 예민함을 더 심하게 만들었을듯합니다. 마리야는 백모인 엘라에게 반항적이었으며 황실가족들이 자신과 아버지를 떨어뜨려놨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리야가 점차 더 자기 연민에 빠지게 만들었을 듯합니다.

엘라는 이런 마리야를 사실상 감당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당한 남자와 결혼시키려했죠. 훗날 마리야는 백모가 자신을 쫓아내려고 서둘러 결혼시키려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모든것이 불만이었던 마리야는 이제 종교에 심취해있던 백모를 떠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실제로 마리야의 약혼 사진을 보면 뭐랄까 표정이 다릅니다. 희망을 보는듯한 느낌이랄까요. )

 

엘라와 마리야

 

엘라는 마리야 여대공에게 적당한 남편감을 찾아주는데 그가 바로 스웨덴의 빌헬름 왕자였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구사타프 5세의 둘째아들이었는데 매우 온화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엘라는 온화한 빌헬름 왕자가 마리야에게 좋은 영향을 줘서 폭풍우치는 마리야의 성격이 온화해지길 바랬다고 합니다. 그리고 1908년 마리야는 스웨덴의 빌헬름 왕자와 결혼하죠. (...마리야 여대공에 대해서는 다음에 하겠지만 뭐랄까 자기 연민이 너무 강한느낌이랄까요. 자신의 불행을 좀 주변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리야와 빌헬름 왕자

 

 

마리야를 시집보내고 드미트리도 군대로 보낸뒤 엘라는 이제 자신의 모든 세속적 의무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엘라는 이제 더이상 세속의 삶에 미련이 없었죠. 그녀는 1909년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정리합니다. 보석이나 예술품을 팔거나 친척들에게 주면서 재산을 정리하죠. 엘라의 가족들은 엘라가 수녀가 될 생각인것을 알았습니다만 일단 엘라를 말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엘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결국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수녀원을 설립했고 이제 수녀로써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