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두 왕의 아내, 두 왕의 어머니 : 노르망디의 에마, 잉글랜드의 왕비 (16) 마지막 나날들

엘아라 2020. 1. 1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책을 다 읽었습니다. 물론 대충 읽었지만 말입니다. ㅠ.ㅠ


[새해특집]두 왕의 아내, 두 왕의 어머니 : 노르망디의 에마, 잉글랜드의 왕비 (16) 마지막 나날들


하르사크누트는 이미 잉글랜드를 침공할 준비를 갖췄었지만 이복형인 해롤드 헤어풋이 사망하면서 자연스럽게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그는 1040년 어머니인 에마와 함께 준비한 병력을 이끌고 잉글랜드로 갔으며 잉글랜드의 국왕이 됩니다. 하르사크누트는 비록 손쉽게 왕위에 올랐지만 그가 준비한 병력들은 당연히 돈을 줘야했으며 이것은 잉글랜드내에서 무거운 세금의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하르사크누트는 인기가 떨어지게 되죠.



하르사크누트의 동전


하르사크누트가 잉글랜드로 오면서 그의 어머니인 에마는 국왕의 어머니이자 강력한 조언자로 권력의 핵심인물중 한명이 됩니다. 오래도록 정치일선에 있었으며 아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었던 에마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에마는 국왕들의 재산을 관리했었으며 그녀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할수 있는 배경이 됩니다. 그리고 아마 하르사크누트는 당연히 어머니인 에마가 권력을 휘두를수 있도록 용납했었습니다.


하르사크누트는 부유한 잉글랜드를 장악했으며 이제 다시 덴마크로 돌아가서 숙적인 노르웨이와의 관계를 재고하려했습니다. 이때 그는 한번도 본적이 없던 이복형인 에드워드를 노르망디에서 부릅니다. 에드워드는 노르망디에서 왔으며 동생의 궁정에서 높은 지위를 얻었으며, 아마 하르사크누트는 자신이 덴마크로 떠나있는 동안 형인 에드워드가 잉글랜드의 섭정으로 통치하길 바랬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마도 에마의 조언이 컸을 듯합니다.



에드워드

하르사크누트의 이부형

에마의 장남



하지만 1042년 젊은 하르사크누트는 귀족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갑작스럽게 쓰러진후 사망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술을 너무 과하게 마셔서 죽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20대였던 그가 갑작스럽게 죽었기에 후대 사람들은 그가 살해당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배후로는 형인 에드워드와 신하였던 고드윈을 지목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런 추정을 하는 것은 에드워드가 어머니인 에마에 대한 행동때문에 그럴수 있었습니다.



하르사크누트의 죽음



하르사크누트가 죽은뒤 잉글랜드 왕위계승문제가 애매해집니다. 하르사크누트의 사촌이며 덴마크를 대리 통치하고 있던 스베인 아스트리드손은 자신이 덴마크와 잉글랜드를 계승해야한다고 주장했고 덴마크 왕위는 얻죠. 하지만 잉글랜드에는 에마의 아들이자 앨프레드 대왕의 직계후손인 에드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 내 귀족들은 이런 에드워드를 지지했으며 결국 에드워드가 왕위를 잇게 됩니다. 에드워드는 1043년에 대관식을 올리게 되죠.


이때 에마는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엇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인 에드워드는 귀족들과 함게 어머니를 끌어내리게 됩니다. 에마는 여전히 국왕들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에드워드와 그의 핵심 귀족들은 에마에게서 이런 재산을 모두 가져가버립니다. 그리고 그녀의 측근 주교들을 좌천시키는 등의 일을 했었습

니다.어쩌면 에드워드는 여전히 권력을 누리려는 어머니를 몰아내고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려했을수 있습니다. 



"참회왕" 에드워드의 즉위


에마와 에드워드의 갈등중 하나는 아마도 고드윈에 대한 것일듯합니다. 고드윈은 에드워드가 국왕이 되는 것을 지지했었으며 이에 에드워드는 그와의 결속을 강화했고 그에게 큰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에마는 아마도 앨프레드의 죽음에 고드윈 역시 어느정도 관계가 되어있다고 여겼을 것이며 고드윈과 손을 잡은 에드워드에 대해서 못마땅했을것입니다. 어쨌든 에마는 아들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고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마가 고난을 겪은 것은 한두번이 아니었으며 이 상황 역시 극복하게 됩니다. 에드워드는 곧 다시 어머니와 어머니의 최측근들을 불러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많고 이미 아들에게 권력을 내놔야했던 에마는 더이상 대중에게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게 됩니다. "왕비"라는 그녀의 역할은 이제 며느리이자 고드윈의 딸이었던 이디스에게 넘겨줘야했었죠. 에마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아들 에드워드의 결혼식에 참석한 기록이라고 합니다. 이후 에마에 대해서는 죽기전까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친 에마는 당대 많은 과부인 왕족들처럼 수도원에 들어갔을수도 있을것입니다. 아니면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늘 교회의 후원자였던 에마는 경건한 삶을 살았을수도 있습니다.



에드워드와 이디스의 결혼

이디스는 고드윈의 딸이자 해롤드 고드윈선의 누이이기도 했습니다.



에마에 대한 기록이 없는 동안 잉글랜드의 궁정은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에드워드는 오래도록 노르망디에서 살았고 노르만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때문에 노르만인들이 에드워드의 궁정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존의 잉글랜드의 세력에 위협으로 다가왔는데 특히 고드윈은 이런 노르만세력에 반대하는 정점에 서있게 됩니다. 


그리고 1052년 에마는 사망했으며, 그녀는 윈체스터에서 남편인 크누트와 아들인 하르사크누트 곁에 묻혔습니다. 



윈체스터 대성당에 있는 유골함

청교도 혁명시기 의회세력에 의해서 윈체스터 대성당에 묻혀있던 국왕과 왕비들 그리고 주교들의 유해가 모두 파헤쳐져서 바닥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후에 이 유해들을 수습해서 저렇게 하나의 상자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