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늘도 웁니다 ㅠ.ㅠ
진짜 매일 밤마다 이렇게 글쓰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네요 흑
[새해특집]두 왕의 아내, 두 왕의 어머니 : 노르망디의 에마, 잉글랜드의 왕비 (13) 미묘한 균열
에마와 크누트의 결혼은 완전히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아마도 둘은 서로의 역할에 대해서 매우 만족스러웠을 것입니다. 잉글랜드에서 크누트는 좀더 기독교화된 국왕이 되었으며 이것은 에마를 비롯한 그의 조언자들의 충고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잉글랜드에서 에마와 크누트는 교회와 잘 지냈으며 교회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 권위에 기대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자신들이 헌납한 금 십자가와 함께 있는 크누트와 에마
하지만 아마도 크누트가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차지하면서 에마와 크누트 사이의 조화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잉글랜드에서 에마의 지위나 영향력은 매우 확고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덴마크나 노르웨이에서는 사정이 달랐죠. 이 북유럽 지역을 통치하는 상황에서 에마의 존재는 잉글랜드에서의 보다 훨씬 미약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에마의 선조들조차도 그들의 기독교 아내외에 다른 여성이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크누트의 첫번째 아내인 노샘프턴의 앨프기푸나 그녀의 아들들의 존재도 상당히 중요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1030년 크누트는 노르웨이를 장악했으며, 노르웨이의 통치자로 자신의 아들인 스웨인(스벤)을 보내게 됩니다. 미성년인 아들을 보내면서 그 어머니인 노샘프턴의 앨프기푸를 섭정으로 함께 보냈었습니다. 노샘프턴의 앨프기푸와 그녀의 아들들은 크누트가 에마와 결혼하기전 덴마크로 보내졌었습니다. 크누트가 에마와 결혼하면서 그녀와 결별한것이 아니라 단지 떨어져 지낸것뿐이었을 듯합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아들에게 노르웨이 국왕의 지위를 부여하면서 그녀에게 섭정이라는 정치적 권력을 부여했을 듯합니다.
아마도 에마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아마도 자신의 지위를 우위에 둘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친정인 노르망디 가문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려는 것이었을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도리어 나쁜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1020년대 크누트는 자신의 누이인 아스트리드 스벤스다테르의 남편이자 덴마크의 통치를 맡겼던 울프Ulf를 살해하게 됩니다. 아마도 덴마크내 울프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기에 그를 살해한 것일듯합니다. 이렇게 아스트리드가 과부가 되었는데 에마는 아마도 자신의 조카이자 노르망디 공작령의 상속자였던 로베르와 그녀를 결혼시켜서 크누트의 가문과 자신의 친정인 노르망디의 결속을 다지려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는데 로베르와 아스트리드는 곧 헤어졌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것은 두 나라간에 모두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던 상황이었을 것으로 덴마크 쪽에서는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아스트리드 스벤스다테르
크누트의 누이
덴마크의 국왕 스베인 2세의 어머니
스베인 2세의 아버지는 울프Ulf였습니다.
로베르는 형인 리샤르 3세가 아들없이 사망하면서 그의 뒤를 이어서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1세가 되는 인물로 바로 정복왕 윌리엄의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로베르가 노르망디를 상속받는 상황에서 아스트리드와의 혼담이 진행되었던듯합니다만 이것은 어쨌든 로베르가 크누트를 반대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됩니다.
노르망디에서 에마의 두 아들들인 에드워드와 앨프레드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딸인 고드지푸는 외삼촌의 결정에 따라 정략결혼했었죠. 로베르는 사촌인 에드워드가 정당한 잉글랜드 국왕이라는 주장에 동조했으며 그가 잉글랜드의 영지를 되찾는 것을 도우려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노르망디 공작이 크누트가 통치하는 잉글랜드를 침공할수 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크누트와 노르망디 사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일이었으며 에마에게는 매우 난처한 일이 아닐수 없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국왕 앙리 1세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1세
아마 로베르와 크누트는 서로 일전을 준비해야하는 것을 예감했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1035년 여름 로베르 1세는 성지순례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망했고 노르망디는 로베르 1세의 "사생아"아들인 여덟살의 기욤(윌리엄)이 상속받게 됩니다. 이것은 노르망디 내부의 권력 다툼을 예고하는 것이었기에 잉글랜드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는 것도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갈등이 일단 가라 앉게 되었으며, 이것은 에마에게도 한숨 돌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안심하기는 일렀습니다. 왜냐면 1035년 11월 12일 그녀의 남편인 크누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30대 중후반정도였던 크누트는 아마도 자신이 그렇게 빨리 죽을줄 몰랐었을 것입니다. 이때문에 그는 자신의 제국을 누구에게 물려줄지 명확히 하지 않았었습니다.
크누트의 죽음은 이제 크누트의 아내로 잉글랜드의 왕비라는 에마의 지위를 위태롭게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아들은 잉글랜드에 있지도 않았었죠.
크누트와 두 아들인 하르샅크누트와 해롤드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