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책을 진짜 휙휙 읽고 있습니다 ㅠ.ㅠ
[새해특집]두 왕의 아내, 두 왕의 어머니 : 노르망디의 에마, 잉글랜드의 왕비 (11) 두번째 결혼
1016년 두명의 잉글랜드 국왕들이 사망했습니다. 1016년 초에는 에마의 남편인 애설레드 2세가 사망했고, 1016년 말에는 애설레드의 아들이었던 에드먼드 2세가 사망했죠. 이 상황은 잉글랜드의 상당부분을 통치하고 있던 크누트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으며 이제 그는 잉글랜드의 나머지 부분을 정복하려합니다.
에마는 런던에서 두 아이들인 앨프레드와 고드지푸와 함께 남아있었습니다. 그녀의 장남인 에드워드는 1016년말 형이 죽은뒤 상황이 악화되면서 1016년말 외삼촌이 있는 노르망디로 갔었습니다. 에마는 노르망디에서 돌아온 뒤 쭉 런던에서 머물서 왕가에 충성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만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의 패배로 수도 런던은 크누트의 손에 떨어지게 됩니다. 크누트가 포위공격을 하는 동안 에마는 런던 사람들과 함께 고초를 겪었으며 아마도 구심점이 필요했었던 런던 사람들에게 이런 왕비는 매우 호의적인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1017년 크누트는 잉글랜드를 완전히 장악했으며 잉글랜드 사람들은 크누트를 국왕으로 인정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에마는 크누트에게서 결혼 제안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말이 제안이지 거의 강요나 다름없을것이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에마가 이 결혼을 스스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크누트
크누트가 에마와 결혼하려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노르망디 공작의 누이로 노르망디와 호의적관계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될수 있었을 것이며 또 하나는 이제 자신이 통치할 잉글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랠 필요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무력으로 왕위를 쟁취했지만 이전에 대관한 잉글랜드의 왕비와 결혼하므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더 강조하려는 것이었죠. 게다가 에마는 20여년동안 잉글랜드 궁정에서 머물렀으며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 역시 상당했기에 그녀와 결혼하는 것은 그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에마가 크누트와의 결혼을 원치 않았다면 비록 강요했을지는 몰라도 충분히 벗어날 방법은 있었습니다. 왜냐면 에마의 노르망디 가족들은 그녀가 크누트와 결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루앙의 대주교였던 오빠 로베르는 에마가 크누트와 결혼한것에 매우 격렬한 반응을 보냈었다고 추정합니다. 왜냐면 크누트는 이미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출신의 고위 귀족의 딸인 "앨프기푸"였죠. (에마의 잉글랜드식 이름과 같은 이름입니다.) 비록 바이킹 출신이었지만 에마나 에마의 형제들은 좀더 기독교화 되었으며 특히 루앙의 대주교였던 로베르의 눈에 이것은 "부끄러운 결혼"인것이기도 했었습니다.
루앙의 대주교 로베르 2세
에마의 오빠
하지만 에마는 친정 식구들의 반응에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그녀가 크누트와 결혼하는 것은 그녀는 물론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유리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에마의 딸은 괜찮지만 아들인 앨프레드는 정당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였습니다. 이것은 크누트에게 위협이 될수 있는 상황이었죠. 에마도 아마 크누트가 아들의 목숨을 노릴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크누트와 결혼한다면 자녀들은 안전히 친정인 노르망디로 보낼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입니다. 실제로 크누트는 웨식스 왕가의 계승권리를 가진 사람들을 죽이거나 죽이려고 시도했었습니다. 애설레드의 아들인 애드위그는 크누트에게 살해당했다고 알려져있죠. 또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의 어린 아들들은 잉글랜드 정서를 감안해서 스웨덴으로 보내서 살해하려고 했지만, 당시 스웨덴 국왕은 웨식스 왕가의 국왕들과 오랜 동맹관계였었고 이때문에 그는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멀리 떨어진 헝가리로 보내서 목숨을 구하도록 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에마가 크누트와 결혼하는 것은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자녀들은 영지없는 왕족들이었으며 만약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간다면 아이들의 처지는 아마도 오빠인 리샤르나 아니면 그의 후계자가 되는 노르망디 공작의 손에 좌우될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정치적 목적으로 이리저리 휩쓸릴수가 있었죠. 하지만 그녀가 잉글랜드 왕비로 굳건히 버티고 있다면 적어도 그녀의 자녀들에게는 버팀목이 하나는 있을수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에마는 크누트에게 아내가 있고 이미 아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에마와 크누트는 서로에게 정치적으로 부족한면을 채워줄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에마는 크누트가 그렇듯이 그를 정치적 파트너로 남편으로 맞아들였을 것입니다. 에마는 아마도 결혼할때 크누트에게 자신이 낳을 아들들에게 잉글랜드 계승권리를 우선으로 달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대관한 잉글랜드 왕비였으며 이런 그녀가 낳은 아들이야 말로 계승권리가 분명하다는 명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이해를 위해 결혼한 것이기에 크누트도 수용했을 것입니다. 물론 상황이야 언제든지 바뀔수 있으니까요.
1017년 이렇게 에마는 크누트와 결혼했으며, 다시한번 잉글랜드의 왕비가 됩니다.
천사에 의해서 대관되는 크누트와 "앨프기푸"(에마)
아마 크누트의 전처 이름 역시 앨프기푸였기에 오래도록 이 그림은 에마가 아니라고 여겨졌었다고 합니다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역시나 잉글랜드에서 앨프기푸라고 불렸던 에마일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가 정식으로 대관하는 모습을 묘사한것이고 에마가 크누트의 정치적 파트너인 왕비였기 때문일듯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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