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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25)프레데군드 : 킬페리크 1세의 왕비 (첫번째)

엘아라 2019. 11. 2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브루느힐드만큼이나 말많은 사람인 프레데군드를 할차례네요 아하하 =-=



프랑스의 왕비들...(25)프레데군드 : 킬페리크 1세의 왕비 (첫번째)



프레데군드

Fredegund or Fredegunda 

FredegundisFrédégonde

(died 8 December 597) 

킬페리크와 함께 있는 프레데군드



프레데군다 또는 라틴어로 프레데군디스나 프랑스어로 프레데공드 등으로 알려진 프레데군드는 킬페리크의 아내로 오래도록 시게베르의 아내인 브르누힐드와의 투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프레데군드는 원래 낮은 집안 출신이었지만 그녀가 국왕인 킬페리크의 눈에 들면서 자연히 지위가 바뀌게 된다고 합니다. 아마 그녀는 킬페리크의 아내였던 아우도베라의 시녀였지만 결국 아우도베라를 축출하는데 기여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프레데군드나 아우도베라가 궁정에서 나간것은 서고트의 공주와 결혼하기 위헤서 킬페리크가 이전의 집안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할수 있을 듯합니다. 



킬페리크와 갈스윈다의 결혼식을 지켜보는 프레데군드

19세기 그림


하지만 프레데군드는 수녀원으로 들어갔던 아우도베라와 달리 킬페리크가 갈스윈다와 결혼한 뒤에도 여전히 그를 만났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킬페리크가 아내인 갈스윈다를 살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여겨집니다.  갈스윈다는 프레데군드를 만나지 말라고 했지만 킬페리크는 이를 거부했었으며 결국 갈스윈다를 살해하게 이르게 된것이었죠. 그리고 갈스윈다의 자매로 역시 메로빙거 가문의 국왕에게 시집왔던 브루느힐드가 프레데군드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갈스윈다를 살해하는 킬페리크와 그를 지켜보는 프레데군드



이 사건은 아마도 킬페리크와 그의 이복형인 시게베르 사이의 큰 불화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시게베르와 킬페리크는 전쟁을 했었으며 시게베르가 유리한 상황이 됩니다만, 킬페리크와 프레데군드가 보낸 암살자에 의해서 시게베르가 암살당하면서 킬페리크는 도리어 승기를 잡았었죠.



시게베르의 살해를 명하는 프레데군드

19세기 그림


이 사건이후 프레데군드는 더욱더 확고한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아마도 그녀는 킬페리크의 아내이자 정치적 동반자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자녀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아마도 킬페리크와 아우도베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심하게 견제했었으며 아마도 아들인 메로비크가 아버지인 킬페리크에게 반대해서 반란을 일으키려한 결정적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580년경 첫번째 아내인 아우도베라나 아우도베라의 또다른 아들인 클로비스가 살해당하거나 아우도베라의 딸인 바신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서 수도원으로 들어간것 역시 모두 프레데군드가 저지른 일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프레데군드의 아들들이 영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가면서 프레데군드나 킬페리크는 신의 벌이라고 여겨서 교회등에 많은 기불르 하는 등의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레데군드는 아들인 클로타르를 낳았으며 킬페리크의 유일한 후계자가가 되죠.


킬페리크는 584년 9월 사냥을 갔다가 살해당하게 됩니다. 아마도 킬페리크를 암살한쪽은 프레데군드와 킬페리크의 숙적이었던 브루느힐드쪽이었다고 추측된다고 합니다. 프레데군드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연대기 기록자였던 투르의 그레고리는 프레데군드의 아들인 클로타르가 무려 4개월이나 조산으로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녀가 부정한 행위로 아들을 얻었다고 이야기하죠.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 아이의 백부였든 군트람이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이름을 쓰는 것을 허락하므로써 가문의 자식으로 인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킬페리크의 암살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