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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1) 들어가면서

엘아라 2019. 10. 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금요일날 뭔 시리즈를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새로운 시리즈를 쓰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프랑스 혁명전쟁 더 하고 싶었는데 전쟁 이야기는 참 안 읽히더라구요 -0-;;;

사실 다른 시리즈를 생각해둔것이 있는데 여덟개 정도 밖에 안나올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좀더 오래할수 있는 이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0-;;;


유럽의 통치 가문들...(1) 들어가면서


유럽은 오래도록 군주제를 유지했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유럽의 군주들이 통치하던 영지는 상속제도에 따라서 상속받던 곳이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럽 여러나라들이 서로 통혼하면서 복잡하게 얽혀서 영지를 상속받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유럽 역사에서 제일 유명한 통치 가문의 사람들중 가장 유명한 인물들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그의 아내인 마리 드 부르고뉴 그리고 둘의 아들과 손자들과 손녀사위.


이들은 남성 후계자를 위주로 상속을 했습니다만 여성 계승자에게도 상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한 가문이 엄청난 영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합스부르크 가문 같은 경우 오스트리아 산지에서 출발한 가문이었지만 통혼을 통해서 영지들을 상속받았고 그 결과 유럽 최고의 통치 가문이 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살리카법을 강력하게 지지한 이후 프랑크인 계열의 국가들이었던 독일쪽 역시 살리카법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그 결과 여성 상속자의 상속이 배제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네덜란드의 빌헬미나 여왕

그녀는 세미살리카법을 따르던 네덜란드는 계승했지만, 살리카법을 따르던 룩셈부르크 대공령은 계승할수 없었으며 나사우 가문 조약에 따라서 친척인 나사우 공작이 룩셈부르크 대공이 됩니다.

 


사실 유럽의 많은 통치 가문들은 사실 작은 세력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점점 성장해나가면서 현제의 국가를 형성하거나 아니면 그 지역에 그대로 머무르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중세시대 봉건제도를 거쳐서 이후 시대에 이르게 되면서 통치군주와 그 군주의 신하들로 재편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특히 프랑스나 에스파냐 ,잉글랜드 같이 중앙집권제를 성공했던 나라들은 한명의 군주에 나머지 영주들은 그의 신하가 됩니다. 반면 19세기에 들어서야 통일국가로 중앙집권제를 이룬 이탈리아나 독일 같은 곳에서는 작은 영지를 통치하던 영주들도 모두 독립 군주로 인정받기도 했었습니다. 



리페 가문의 문장

리페 가문 역시 크지 않은 가문이었지만 통치 군주 가문으로 인정받던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같은 큰 규모의 변동이 일어나는 전쟁이 일어난뒤 독일등의 지역은 다시 개편되었으며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이 일어나게 되면서 작은 지역을 통치하던 군주들의 지위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통치군주로 인정받기도 했었지만 영지를 잃은 통치가문의 군주들이 생겨나게 된것이었죠. 하지만 이들의 경우 영지를 잃었어도 계속 통치 가문의 지위를 인정받기도 했는데 이것은 복잡한 독일의 결혼제도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의 경우 동등한 결혼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통치 가문의 출신의 남자나 여자는 통치 가문 출신의 여자나 남자와결혼해야한다는 것이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상속권등을 배제당할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치 군주 가문이 몇개 되지 않는다면 결혼할수 있는 상대가 너무나 줄어들게 되기에 결국은 이전의 통치가문들중에 일부는 영지를 잃었어도 통치 군주 가문으로 인정받게 되기도 합니다.



파르마의 마지막 통치 군주였던 로베르토 1세

그는 사보이 가문 중심의 이탈리아 통일 이후 자신의 통치 영지였던 파르마의 군주지위에서 물러나야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후손들은 여전히 통치군주가문 출신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여기서는 유럽의 통치 가문들중 사라진 가문과 남아있는 가문들 전체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어떤 가문이 어떤 시기에 어느지역을 다스렸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