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벌써 알렉산드르 3세쪽이군요. 물론 방계 가문을 나중에 할거라서 좀더 해야하긴한데 다음 시리즈를 고민해야될 시점이기도 하네요 아하하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25) 덴마크의 다우마 :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첫번째)
덴마크의 다우마
러시아의 마리야 표도로브나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
Maria Feodorovna
Princess Dagmar of Denmark,
(26 November 1847 – 13 October 1928)
황태자비 시절
러시아에서 마리야 표도로브나로 알려지게 되는 덴마크의 다우마는 1847년 코펜하겐에서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9세와 그의 아내인 헤센-카셀의 루이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다우마는 덴마크 공주가 되긴 했지만 사실 태어났을때 그녀의 아버지는 덴마크 왕위계승자로 완전히 인정받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다우마의 부모
크리스티안 9세와 헤센-카셀의 루이제
1840년대
덴마크의 국왕이 되는 크리스티안 9세는 사실 덴마크 왕가의 직계후손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덴마크 왕가의 방계 가문중 하나였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데르부르크-그뤽스부르크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오래전에 덴마크 왕가에서 분가한 가문으로 조상은 16세기 덴마크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3세의 아들이었던 요한의 후손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분가한지 300년정도나 되는 가문 출신이었기에 사실 그가 태어났을때는 덴마크 국왕이 될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덴마크 국왕이 된것에는 바로 19세기 유럽 최고의 난제였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가 연결됩니다.
유틀란드 반도
덴마크 왕가는 올덴부르크 백작 출신이었던 크리스티안 1세가 15세기 덴마크 국왕이 되면서 이후 19세기까지 직계후손으로 계속 왕위가 이어졌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가 되면서 직계 계승자가 점차 줄어들게 되면서 왕위계승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왕위계승자가 될만한 후보를 찾아야했는데 크리스티안 1세가 일명"세미살리카법"이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덴마크를 계승했기에 역시 다른 후보도 이런 방법으로 왕위계승자를 찾을수가 있을 것이었습니다. 세미살리카법이라는 것은 여성후손의 영지 계승을 완전히 배제하는 살리카법과는 달리 가장 가까운 여성 후손의 남성 후계자를 후계자로 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덴마크 본토와는 달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의 상속의 경우 살리카법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덴마크 왕가에서 만약 가까운 여성후손을 왕위계승자로 지정하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이 덴마크 왕국에서 분리될수도 있는 상황까지 이르게 될수 있는 것이었죠.
19세기 무렵의 덴마크 왕가의 가계도
굵은 글자들이 다 덴마크 왕위계승 문제에 연결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은 매우 복잡한 계승문제에 직면해있었습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사실 두개의 영지인 슐레스비히 공작령과 홀슈타인 백작령으로 구성된 지역이었습니다. 슐레스비히 공작은 덴마크 국왕의 봉신이었지만 홀슈타인 백작은 신성로마제국의 봉신이었습니다. 결국 이 영지를 크리스티안 1세가 물려받으면서 두개는 하나의 영지로 묶였으며 덴마크 왕국의 일부가 아니라 덴마크 국왕이 따로 상속받는 영지로 19세기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세기가 들어서면서 각각의 나라에서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이 공작령이 덴마크에 편입되어야하는가 독일에 편입되어야하는가의 문제가 대두되게 되었습니다.
사실 덴마크 측에서 간단히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의 상속권을 가진 방계 왕가 출신을 덴마크 공주와 결혼시켜서 왕위를 잇게하는 것이었죠. 이 공작령의 상속권을 가진 덴마크 왕가의 두 분가는 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과 그뤽스부르크 가문 두 가문이었습니다. 그중 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이 더 우선 순위가 높았죠.
그런데 일이 더 복잡해지는 상황이 일어나는데 덴마크 측에서는 이 기회에 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은 덴마크 왕국의 일부로 포함시키려고 시도합니다. 그렇게 되자 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에서 이에 대해서 반발하게됩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작이었던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2세는 스스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을 이어받아야한다고 주장했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이 공작령은 독일측에 머물러야한다고 주장하면서 프로이센의 지지를 얻어냅니다. 결국 이런 상황을 빌미로 이미 이 공작령을 노리고 있던 프로이센은 공격을 시작했으며 이것이 바로 제 1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이 됩니다. 이 전쟁은 덴마크의 승리로 끝났으며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작은 자신의 상속권리를 포기해야했었죠.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작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그는 1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을 일으킨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었고 그가 독일을 지지하므로써 그의 덴마크 왕위계승 가능성은 사라졌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이전에 이미 덴마크 궁정에서 그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기에 그가 덴마크 왕위를 기대할수 없다고 판단했을수도 있긴합니다.
문제는 덴마크 왕가의 직계가 단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왕가와 가장 가까운 여성 후손의 후손을 왕위계승자로 찾게되면서였습니다. 여기에 세 가문이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과 글뤽스부르크 가문 그리고 헤센-카셀가문이었습니다. 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은 사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을 이어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가문이었을뿐만 아니라 덴마크 공주의 후손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작의 행동은 덴마크에게는 매국노나 다름없었기에 그는 왕위계승에서 완전 배제되게 됩니다.
그리고 헤센-카셀 가문이 있었습니다. 이 가문은 독일 가문이었지만 전통적으로 덴마크 공주들과 결혼했었기에 여성후손의 후손으로는 가장 강력한 순위에 있던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덴마크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이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뤽스부르크 가문이 있었습니다. 글뤽스부르크 가문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게승 순위에서는 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에 밀렸고, 여성후손의 후손 계승에서는 헤센-카셀에 밀렸었습니다.
글뤽스부르크 가문은 두가문에 비해서 뒤떨어졌지만 그들은 덴마크인이라는 강점이 있었습니다. 특히 덴마크에서 성장했으며 덴마크 군인으로 1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에 참전하기까지 했었던 크리스티안은 누가봐도 왕위계승자가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크리스티안은 헤센-카셀의 루이제와 결혼하면서 아내의 권리를 통해서 자신의 왕위계승권리를 더 굳건하게 했으며 매국노인 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 출신의 사람을 받아들일수 없었던 덴마크는 결국 1852년 크리스티안을 추정왕위계승자로 승인하게 되었고 이후 그는 덴마크의 확고한 왕위계승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1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때를 묘사한 그림
오른쪽에 땅에 서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크리스티안 9세를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때 왕위계승자도 아니었던 상황이었기에 그냥 덴마크 군인으로 참전했었고 아마 이때문에 그림에서 말탄모습이 아니라 저렇게 묘사되는듯합니다.
물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후에 크리스티안 10세가 덴마크의 국왕이 되자 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의 수장이었던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살리카법에 따라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공작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었으며 역시 아버지처럼 프로이센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프로이센은 이때 이전과는 달리 독일의 다른 지역들 특히 오스트리아 제국을 끌어들였을뿐만 아니라 러시아나 영국같은 강대국들이 중립을 지키도록 외교작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제 2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은 이전과 달리 덴마크의 패배로 돌아갔으며 이것은 덴마크 경제상황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다우마는 사실상 외가나 많은 친척들이 독일 출신이었음에도 독일에 대해서 매우 큰 적개심을 가지게 되죠.
그리고 제 2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이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다시 독일내 패권 다툼인 7주전쟁(오스트리아-프로이센전쟁)_을 했으며 결국 프로이센이 승리하면서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통일을 달성하게 됩니다.
독일제국의 성립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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