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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29) 마리아 안나 만치니(두번째)
마리아 안나 만치니
부이용 공작부인 마리 안
Marie Anne Mancini,
duchesse de Bouillon
(1649 – 20 June 1714),
마리 안과 그녀의 남편인 부이용 공작은 서로 사이가 매우 좋았습니다. 부이용 공작은 아름답고 재치있는 아내를 사랑했으며 마리 안의 형부들과 달리 아내에게 매우 너그러웠습니다. 이를테면 마리 안 역시 궁정에서 연애질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었으며 이때문에 그의 집안에서는 마리 안을 수녀원으로 보내버리라고 부이용 공작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이용 공작은 이를 거부했었죠. 심지어 한번은 마리 안의 연애질이 만천하에 드러나서 시집식구들이 두려워서 스스로 수녀원으로 도망갔었는데 부이용 공작은 아내에게 수녀원에서 나와서 자신에게 돌아와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이런 마리 안과 부이용 공작 사이에서는 일곱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마리 안
마리 안은 수많은 귀족여성들이 연루된 "독살사건"에 연루됩니다. 그녀의 죄명은 그녀가 조카인 방돔공작과 결혼하기 위해서 남편을 죽여달라고 청탁했다는 것이었죠 --;;;; 언니였던 올랭피아는 체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외국으로 도망갔었지만 마리 안은 다르게 행동합니다. 그녀는 법정에 남편과 "연인"이라는 조카를 양쪽에 끼고 대동하고 나타납니다. 마리 안은 법정에 나올 생각은 없었지만 국왕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조카와 결혼하기 위해 남편을 죽여달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죠. 그러면서 조카를 대동하고 온것은 만약 재판관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믿는다면 당연히 방돔공작도 심문해야한다고 생각해서 데려왔다고 큰소리까지 칩니다.
마리 안의 조카
방돔 공작
어쨌든 이 사건은 증거부족으로 결론났으며 마리 안은 풀려납니다. 하지만 이미 독살사건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치를 떨었던 루이 14세는 마리 안을 지방으로 추방해버립니다. 물론 마리 안은 결국은 다시 파리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에게 매우 환영받는 인물이 됩니다. 그녀는 매우 위트있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그 무시무시한 "독살사건"에 연루되었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변론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뒤끝많은 국왕이었던 루이 14세는 여전히 마리 안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이후 그녀를 다시 한번 지방으로 추방합니다. 하지만 결국 1690년 루이 14세는 마리 안이 돌아오는 것을 허락했는데 마리 안은 궁정에 나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뒷끝 많은 루이 14세의 심리 상태를 알아차렸을 듯합니다. 차라리 자신이 안보이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일 것이라 판단했을 것입니다.
마리 안 부이용 공작부인
마리 안의 일곱아이들중 첫째 아들만 제외하고 나머지 여섯아이들은 모두 어머니보다 오래살았습니다. 마리 안은 1714년 사망했으며 그녀의 남편인 부이용 공작은 그녀보다 7년을 더산 1721년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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