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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33) 레이디 랜돌프 처칠 (제니 제롬) : 에드워드 7세의 정부

엘아라 2019. 6.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 에드워드 7세는 연애질 한 여자들이 정말 많거든요. 귀족들도 정말 많은데 이 때문에 예전에 읽은 글에서 어디 귀족 부부가 이혼할때 법정에 나가야했었다는 이야기도 봤었다죠.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이 더 싫어했대나 어쩐대나...) 그 사람들도 하고 싶은데 자료 찾기가 귀찮네요 아하하..-0-;;


그냥 지나가는 연애 관계였던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말입니다. 게다가 아내인 알렉산드라의 건강때문에 더이상 아이를 낳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은후부터는 대놓고 연애질을 해대서 더하다죠 -0-;;;;


하여튼 일단 그냥 나오는대로 좀해볼까합니다만 제니제롬 한명만하고 그냥 릴리랭트리, 앨리스 캐펄 이렇게 끝낼수도 있습니다. -0-;;;


정부들과 그 후손들...(233) 레이디 랜돌프 처칠 (제니 제롬) : 에드워드 7세의 정부



제니 제롬

제니 스펜서-처칠

레이디 랜돌프 처칠

Jennie Jerome

Jennie Spencer-Churchill 

Lady Randolph Churchill

( 9 January 1854 – 29 June 1921)



영국의 수상인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로 미국 출신이었던 제니제롬은 당대 영국 사교계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편의 지위에 따라서 레이디 랜돌프 처칠이라고 불렸던 제니 제롬은 미국의 금융가인 레널드 제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제니라는 이름은 스웨덴 출신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제니 린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고 합니다.


제니 제롬은 어려서부터 당대 미국 상류층 여성들처럼 뉴욕과 파리등을 오가면서 어린시절을 보냈었습니다. 제니 제롬은 매우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이라고 알려져있기도 합니다. 그녀는 잡지의 편집자 일을 하기도 했었죠.



레널드 제롬, 제니 제롬의 아버지



제니제롬은 20살때는 1874년 파리에서 영국의 외교관이었던 랜돌프 처칠경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말버러 공작의 아들로 유능한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랜돌프 처칠은 말버러 공작의 둘째아들로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을 처지가 아니었으며 이런 경우의 많은 이들처럼 상속녀와 결혼하려했을 것입니다. 제니 제롬의 아버지인 레널드 제롬은 매우 부유했었지만 제니 제롬이 결혼할 무렵에는  재정 상태가 나빠졌었다고 합니다만 딸의 혼수정도는 해줄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비록 이런 관계여서 둘의 결혼은 돈때문에 한 정략결혼처럼 보이지만 둘은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것이었습니다. 랜돌프 처칠의 부모인 말버러 공작 부부는 아끼는 둘째아들이 미국인과 결혼하는 것에 처음에는 탐탁치 않아했고 약혼기간이 길어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혼할 때 쯤의 랜돌프 처칠 경과 제니 제롬



제니 제롬은 결혼후 두 아이를 낳습니다. 윈스턴과 존이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두 아이 모두 조산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당대에 사고를 치고는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났어도 조산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었고 제니 제롬 역시 이런 시선에서 자유로울수 없었습니다. 특히 둘째아들인 존의 경우 모두들 존의 친아버지가 랜돌프 처칠이 아니라고 쑤근댈 정도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아이들 모두가 아버지인 랜돌프 처칠을 너무나도 많이 닮아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두 아들인 윈스턴과 존과 함께 있는 제니 제롬



똑똑하고 어린시절부터 자신감이 넘쳐흘렀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던 제니 제롬은 결혼후에도 영국 사교계에 잘 적응했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어려보이는 외모와 채치있는 말솜씨로 많은 이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는데 이것은 남편인 랜돌프 처칠이나 그녀의 아들인 윈스턴 처칠이 정치를 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녀의 남편인 랜돌프 처칠경은 당시 웨일스 공이었던 에드워드 7세의 측근이었으며 이때문에 그녀 역시 웨일스 공의 주변 인물이 됩니다. 그리고 아마도 에드워드 7세는 물론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도 연인관계가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그리 많이 척을 지지 않았었는데 특히 알렉산드라 왕비는 제니 제롬이 자신의 남편과 연애질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와 함게 있는 것을 즐거워할 정도였었다고 합니다.




제니 제롬, 1890년대


1895년 남편인 랜돌프 처칠이 사망한뒤 제니는 과부로 더욱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녀는 여전히 에드워드 7세 주변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으며 그녀를 사모하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었죠. 그녀는 곧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조지 콘윌리스-웨스트로 제니의 장남인 윈스턴 처칠과 동갑으로 윈스턴 처칠보다 겨우 26일 더 빨리 태어났다고 합니다. 더 재미난 것은 조지는 에드워드 7세의 정부중 하나였다고 알려진 팻시 피츠패트릭의 아들이기도 햇었습니다. 둘은 결국 1900년에 결혼하죠. 하지만 재정적 문제가 시작되자 제니와 조지의 사이는 불화가 심해졌으며 특히 조지는 제니가 후원했던 배우였던 패트릭 캠벨 부인과 바람을 피우면서 결국 둘사이튼 파국을 맞습니다. 1912년 둘은 별거를 시작했으며 1914년 둘은 결국 이혼하게 되죠.



조지 콘윌리스-웨스트, 제니 제롬의 두번째 남편



제니 제롬은 191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영국 장교였던 몬태규 포치와 세번째 결혼합니다. 그녀의 세번째 남편은 아들인 윈스턴보다 3살이나 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결혼은 1921년 제니 제롬이 죽을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