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라 베르나르트는 굉장히 유명한 배우라서 에드워드 7세와의 관게는 그냥 잠시 지나가는 것이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 됐는데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0-;;;;
그런데 읽을것 너무 많아서 고민하다가 그냥 대충 적당히 줄여서 쓰기로 했습니다. 아하하 -0-;;;;
그나저나 사진 정말 많네요..ㅎㅎㅎ
정부들과 그 후손들...(232) 사라 베르나르트 : 에드워드 7세의 정부
사라 베르나르트
앙리에트-로신 베르나르
Sarah Bernhardt
Henriette-Rosine Bernard,
(22 or 23 October 1844 – 26 March 1923)
19세기 가장 유명한 배우로 알려졌으며 후에 초기 영화 배우로도 알려졌으며 이때문에 수많은 남성들과 연애관계였으며 역시 에드워드 7세와도 연애관계였다고 알려져있다고 알려진 사라 베르나르트는 1844년 앙리에트-로신 베르나르라는 이름으로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네덜란드 출신의 유디트 베르나르트로 미홈모 상태로 사라 베르나르트를 낳았다고 합니다. 사라 베르나르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부유한 사람으로 아버지 집안에서 교육비와 성인이 된후 어느정도 재산을 물려주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라 베르나르의 어머니는 코르티잔으로 활동했으며 딸을 주로 보모에게 맡겨두었으며 후에는 기숙학교로 보내서 교육을 받게 했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사라 베르나르트
사라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를 다니고 있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는 파리 최고의 코르티잔으로 성장했으며 수많은 상류층 사람들과 예술가들과 교류를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사라는 배우로써 살수있는 기회를 얻게 되죠. 특히 그녀의 어머니의 후원자중 한명은 나폴레옹 3세의 이부동생인 모르니공작이었습니다. 모르니 공작은 나폴레옹 3세 당시 정치인으로 활동했었죠. 사라는 수녀가 되려했지만 수도원의 규율을 지키지 않았으며 결국 그녀가 그다지 수녀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죠. 그리고 이런 그녀에게 모르니 공작은 배우가 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으며 그녀가 배우가 될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특히 모르니는 아버지 뒤마와 친분이 있었으며 이런 연결고리를 통해서 사라는 아버지 뒤마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며 뒤마는 그녀에 대해서 "나의 작은 스타"라고 이야기할정도였다고 합니다.
모르니 공작, 샤를 드 모르니
사라의 어머니의 후원자였던 그는 사라 베르나르트가 연기의 길로 갈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후 사라는 프랑스에서 정식 연극 교육을 받았으며 데뷔도 하게 되죠. 하지만 그녀의 불같은 성격은 문제가 됩니다. 불같은 성격의 사라는 사람들과의 마찰을 빚게 되었으며 결국 극장을 그만 둬버리기도 합니다. 이후 그녀는 잠시 브뤼셀로 가서 다시 연극을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죠. 8대 리뉴공의 아들이었죠. 그리고 1864년 그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모리스 베르나르트를 낳습니다만 당대 많은 여배우와 귀족남성들의 관계처럼 아이는 사생아로 남게 됩니다. 사라는 이 관계에서 큰 상처를 입었던듯한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묻는 아들 모리스에게 그의 친아버지에 대해서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사라의 아들인 모리스는 배우가 되진 않았습니다만 대신 어느정도 나이가 되면서 어머니의 매니저나 극정관계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후에 사라가 매우 유명해진후, 모리스의 친아버지가 모리스를 찾아왔었으며 자식으로 인지해주겠다고 했을때 모리스는 자신은 사라 베르나르트의 아들인것으로 만족한다면서 거절했다고도 합니다.
사라 베르나르트의 아들, 모리스 베르나르트
아이를 낳은 후, 사라는 다시 무대에서 조그만한 역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명성은 점차 커져가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쫓겨나다시피 관둬야했던 극장으로도 복귀할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프랑스를 떠나 이제 런던을 물론 아메리카 대륙에까지도 가서 공연을 했으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로 알려지게 되죠. 그리고 그녀는 초기 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했었습니다.
영화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랑 Les Amours de la reine Élisabeth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역할로 출연 중인 사라 베르나르트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사라는 수많은 연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즐거운 나이트라이프를 즐겼다던 에드워드 7세 역시 그녀의 연인중 한명이었다고 알려져있죠. 하지만 사라는 188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리스 출신의 젊은 외교관인 아리스티드(자크) 다말라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사라보다 11살이나 어렸지만 둘은 곧 사랑에 빠졌으며, 다말라는 사라와 함께 하기 위해서 자신의 외교관 직업까지 포기하죠. 둘은 불같은 사랑을 시작했지만 곧 사라는 그가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를 위해 자신의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죠. 결국 결혼 그해 둘은 파경을 맞게 됩니다만, 후에 1889년다말라가 무일푼으로 다시 사라를 찾아왔을때 사라는 그를 다시 받아들여줫으며, 무대에도 함께 서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병이 악화된 상황이었으며 1889년 다말라는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사라는 그의 아내로 그를 마지막까지 간호했었다고 합니다.
자크 다말라, 사라 베르나르트의 남편
사라는 나이가 든 뒤에도 은퇴하지 않고 연극과 영화에 활발한 출연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1923년 연극 리허설을 하던 도중 쓰러져서 결국 사망했었습니다.
사라 베르나르트, 1862년, 데뷔때
사라 베르나르트, 1876년
사라 베르나르트 ,18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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